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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선종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해 11월 바티칸 성베드로 성당에서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AFP 연합뉴스

제266대 교황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21일(현지시각) 선종했다. 항년 88. 그는 교황의 명칭으로 선택한 성인 프란치스코처럼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을 위해 교회와 세계의 변화를 촉구한 지도자였다.

이주민의 아들, 해방신학자가 되다

“우리가 걸음을 옮기지 않는다면 우리는 멈추어 서게 된다.”(2013년 3월14일, 교황 취임 후 첫 미사 중)

본명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인 프란치스코 교황은 1936년 12월17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났다. 1929년 조부모와 아버지가 이탈리아 항구도시 제노바를 떠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이주한 결과였다. 교황 역시 어린 시절 전세계 이주민들이 겪는 차별과 고통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후 ‘불법 체류 이민자 추방’ 계획을 구체화하자, 교황은 2월10일 미국 주교들에게 “올바르게 형성된 양심은 비판적인 판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며 트럼프 2기 이주민에 대한 차별과 폭력에 저항의 목소리를 냈다.

사망 후 출간하려다 올해 희년을 맞아 출판한 자서전 ‘희망’에서 교황은 스스로를 ‘문제아’로 여겼다고 밝히고 있다. “교황직에 어울리는 성품을 타고나지 않았다. 수많은 잘못을 저지른 아이였다”고 돌아봤다. 삼촌의 결혼식에서 만난 여성에게 마음을 빼앗기기도 하는 평범한 청년이었다. 그래도 하느님으로부터 “부끄러움을 아는 수치심”을 선물로 받았다고 했다.

대학에서 화학을 공부했으나, 1969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 빈민 사목을 하며 가난한 사람들과 어울리고 축구를 즐겼다.

2001년 추기경에 서임된 뒤 2005~2011년 아르헨티나 주교회의 의장이던 그는 가톨릭에서 비주류인 해방신학을 수학했다. 가난한 사람의 편에서 사회 개혁과 교회 개혁을 강조한다. 대주교 시절에도 주교관 대신 아파트에서 지내고 대중교통으로 출근하고 음식을 만들어 빈민가를 찾아가 가난한 이들과 소통해왔다. 2005년 전임 교황인 베네딕토 16세가 교황으로 선출될 때 2위였다.

2014년 교황 방한 당시의 모습. 사진 공동취재단

친근하고 새로운 교황, 새로운 목소리에 환호

“새로운 현실에는 항상 새로운 응답이 필요하다.”(2000년 3월29일, 아르헨티나 주교회의 교육위원회)

프란치스코 교황은 새로운 교황이었다. 보통 종신직인 교황이지만, 전임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건강상의 이유로 은퇴하면서 2013년 3월19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즉위했다. 고령인 77살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주교였던 그는 은퇴를 고민하던 중 콘클라베에서 4번이나 투표를 거친 끝에 변방의 주교에서 세계 가톨릭교회 수장이자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로 덜컥 선출됐다.

그는 최초의 예수회 교황이며, 최초의 아메리카 대륙과 남반구 출신의 교황이다. 이탈리아인 부모를 둔 유럽계이지만 과거 가톨릭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지였던 신대륙 출신이자 비유럽 출신인 최초의 교황이었다. 교황 비오 10세 이후 바티칸 사도궁(교황 공식 거주지)에 있는 공식 교황 거주지 밖에서 사는 첫번째 교황이었으며, 가난한 이들의 복지에 관심이 있어 청빈과 순명의 상징인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성인’을 교황의 명칭으로 처음 사용했다.

스스로 낮은 곳에 자리하고자 한 교황에 대한 인기와 관심은 역대 교황 중 최고였다. 취임 첫해였던 2013년 말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올해의 인물’로 그를 선정했다. 경제지 ‘포천’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로 그를 뽑았다. 같은 해 12월 말 시엔엔(CNN)이 미국 가톨릭 신자 191명을 포함한 성인 1035명에게 전화 설문을 한 결과 86%의 응답자가 “교황은 현대 세계와 소통하고 있다”며 그를 지지한다고 답했다.

가난과 전쟁 등 정치·사회 문제 피하지 않아

“사회 체제의 중심에는 돈이 아니라 사람이 있어야 한다.”(2013년 9월22일, 노동자들과의 만남 자리에서)

2014년 8월14~18일 한국을 방문해 북핵 문제를 대화로 풀어달라며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정의의 결과’”(14일 대통령·정부공직자·외교단과 만나는 자리)라고 했다. 18일 귀국길에 전세기에서 연 기자회견 중에는 “사람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 없다”고 말했다. 같은 해 일어난 세월호 참사 소식에도 희생자와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자고 먼저 제안했다. 교황은 ‘평화의 사도’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재임 시절 60개국을 방문했다.

교황이 특히 경계하자고 촉구한 것은 ‘규제 없는 자본주의’였다. 2013년 11월 발표한 자신의 연설을 모은 ‘사제로서의 훈계’라는 문서를 통해 “집 없는 노인이 유해한 환경에 노출돼 죽는 것은 기사가 안 되고, 주식시장에서 지수가 2포인트 떨어지는 것은 기사가 되냐”고 지적했다. 2020년 프랑스·아르헨티나·멕시코·파라과이·엘살바도르 재무장관들과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국제통화기금(IMF) 이사 등 세계 금융 전문가들이 모인 자리에서 교황은 점점 심화되고 있는 소득 불평등 문제를 해소하는 새로운 세계 금융 시스템을 설계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무관심의 세계화’를 경계할 것을 강조해왔던 교황은 2015년 남미를 순방하며 현대 물신주의의 심각성을 경고하며 “물신숭배는 ‘악마의 배설물’”이라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현실 정치권력에 굴종적이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 1기 당시 이민자 유입을 막기 위해 미국·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설치하자, 2019년 4월 “장벽을 건설하는 사람은 장벽의 포로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두번째 임기를 시작하자 “증오 없는 사회를 이끌어달라”고 요구하고, 트럼프 1기 이민 정책을 비판한 로버트 매켈로이 추기경을 워싱턴 디시(D.C) 차기 대주교에 임명했다.

교황은 2015년 ‘찬미받으소서’ 회칙을 통해 “공동의 집(지구)이 신음하고 있다”며 “환경 문제는 빈민층 사람들과 연결돼 있고 이를 해결한다면 가장 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가톨릭 공동체의 변화를 이끌었다.

2013년 3월 로마 바티칸에서 열린 즉위 미사에서 교황 프란치스코가 십자가를 든 채 미소를 짓고 있다. AP 연합뉴스

교회 내부 개혁에도 속도

“교회는 전 인류의 일치를 위한 밀알이 되어야 한다.”(2014년 8월15일 대전, 성모승천대축일 미사 중)

그는 교황이 된 뒤 줄곧 가톨릭교회가 동성애자,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를 포함한 모든 이에게 개방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2023년 12월 교황청은 동성애자 커플에 대한 사제의 축복을 허용한다는 공식 방침을 발표했다. 1993년부터 이민·난민, 여성인권 등을 담당해온 프란체스카 디 조반니 변호사를 2020년 1월 교황청 국무원 역대 최초로 외교부 외교차관에 임명했다. 차관 이상 고위직에 여성이 임명된 것은 처음이었다. 올해 1월에는 세계 가톨릭교회 안 모든 수녀와 수사의 종교생활을 책임지는 ‘봉헌생활회와 사도생활단부’ 장관에 시모나 브람빌라 수녀를 처음으로 임명했다.

2022년 2월 교황청 신앙교리성 구조를 개편하는 교서를 발표해 현대 과학과 사회의 변화에 발맞춰 생명·사회 윤리 분야에서 교회의 입장을 정리하도록 했다. 또 성직자의 성범죄를 엄중하게 다루기 위한 규율 부서를 따로 두기로 했다. 2023년 4월 가톨릭교회 역사상 최초로 여성과 평신도에게도 주교회의(시노드) 투표권을 부여했다.

2020년 11월 교황은 교황청의 핵심 부서인 국무원의 교회 기금 관리 기능을 박탈했다. 재무 구조의 투명성을 강화하고 부패를 근절하기 위해서였다. 1500억원이 넘는 영국 런던 첼시지역 고급 부동산 매매 비리 사건에 연루된 조반니 안젤로 베추 추기경을 2020년 9월 교황철 고위 직책에서 경질하고, 이후 추기경의 교황청 업무 관련 비밀 유지 의무를 해제했다.

2022년 초 프란치스코 교황은 캐나다 원주민 문화를 존중하지 않고 변화를 강요한 가톨릭의 과오를 인정하며 이름 없는 원주민의 무덤을 찾아 “분노를 느끼며 부끄럽고 슬프다”고 하며 조사를 약속했다.

고위 성직자 등 가톨릭 내 성 비위 문제 침묵 의혹·여성 사제도 허용 안 한 과오

“빈곤과 질병 등 사회 문제에는 진보적이나 교리 해석에는 온건 보수적”(영국 가디언 보도)

교황은 부인했지만, 아르헨티나 독재 시기(1976~1983년) 군사정권에 침묵해 그가 수장이었던 예수회 신부 2명이 군에 끌려가 가혹한 조사를 받을 때 방조했다는 의혹은 줄곧 그의 과오로 남아 있다.

일부 가톨릭 성직자들의 성 비위와 관련해 은폐했다는 논란 속에 공개 퇴위 요구를 받기도 했다. 2018년 8월 이탈리아 출신의 대주교가 한 가톨릭 매체에 서한을 보내 교황이 사제들의 성 학대 사건을 알고 있었지만 그들을 징계하지 않았다며 ‘은폐의 공모자’라고 비난하고 사퇴를 촉구했다. 당시 교황은 “선한 의지가 부족한 사람들, 분열과 파멸을 따르는 사람들, 설령 그런 사람들이 가족 중에 있다 해도 기도와 침묵만이 나아갈 길”이라며 침묵을 선택했다.

끝내 여성 사제를 허용하지 않는 점도 비판을 받고 있다. 교황은 “여성이 미사 중 성서를 강독할 수 있으나 사제는 될 수 없다”며 지난해 10월 여성 부제(부사제. 1년 뒤 사제 서품을 받을 수 있는 성직자)를 허용하기에는 이르다고 판단했다.

2024년 3월 스위스 공영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협상은 항복이 아니다”라며 “국민을 생각해 백기를 들고 협상할 용기가 있는 사람이 가장 강한 사람이라고 믿는다”고 말한 것에 대해 우크라이나의 항복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 발언에 대해 우크라이나와 유럽에서는 “러시아의 철수를 촉구하라”라며 비판받기도 했다.

교황의 말말말

“우리와 불의와 폭력에 무관심하거나 침묵할 수 없다.”(2014년 1월1일 삼종기도)

“우리는 모두 약하고 보잘것없는 질그릇이지만 우리 안에는 엄청난 보물이 담겨 있다.”(2013년 8월9일 트위터)

“짙은 어둠이 닥쳐와도 우리는 희망의 빛을 찾아야 하며, 다른 이들에게 희망을 전해야 한다.”(교황 취임 미사, 2013년 3월19일)

“더 나은 세상에 대한 희망을 잃지 마세요.”(삼종기도, 2014년 1월19일)

“조금이라도 권력을 더 가진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 더 많이 봉사해야 한다.”(2007년 8월7일 성 가예타노 축일 미사)

“만약 우리 모두가 뒷담화를 하고자 하는 욕구를 다스릴 수만 있다면, 마지막에 가서는 모두 성인이 될 것.”(삼종기도, 2014년 2월16일)

“그리스도인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일종의 ‘의무’”(2013년 6월7일 교사와 학생들을 만나)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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