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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와줬구나. 선거가 끝날 때까지는 괜찮으실 거야. 돌아가시지 않을 거야.”
대문이 열리고 “향자에요” 소리가 들리자 백발의 하마다 요시에(濱田芳枝·98) 여사가 지팡이를 떨궜다. 양향자(58) 전 국회의원을 부둥켜안은 하마다 여사는 연신 눈물을 훔쳤다. 20일 일본 도쿄(東京)도 히가시야마토(東大和) 자택을 찾은 양 후보 역시 굵은 눈물을 떨궜다.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 중 '반도체 아버지'인 하마다 시게타카(100) 박사의 위독 소식에 20일 일본을 급거 방문한 양향자 후보. 양 후보가 일본 하마다 박사의 히가시야마토 자택에 들어서자 하마다 요시에(98) 여사가 부둥켜 안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현예 특파원
대선을 향한 국민의힘 당내 경선을 제쳐두고 양 후보가 일본을 찾은 건 그의 ‘반도체 아버지’ 하마다 시게타카(濱田成高) 박사 때문이었다. 지난 19일 100세가 된 하마다 박사는 최근 대장암을 선고받았다. 급작스레 상태가 위독해지자 양 전 의원은 경선을 뒤로 하고 비행기에 올랐다. 그는 “16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하마다 박사님이 아버지가 되어주셨는데, 경선 때문에 안 온다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고 했다.

지난 2022년 5월 일본 도쿄 히가시야마토시 자택에서 삼성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이 선물한 삼성의 64K D램 개발 성공(1983년) 기념품을 들어 보이는 하마다 시게타카 박사.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도쿄대 출신의 하마다 박사는 삼성 창업주인 고(故) 이병철 회장의 반도체 기술 자문을 담당한 인물로, 한국 반도체 사업의 숨은 조력자로 꼽힌다. 양 전 의원과의 인연은 37년 전인 198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 회장이 야마다 박사 부부를 서울올림픽에 초대했는데 통역이 필요했다. 이때 통역을 맡아 닷새간 안내한 사람이 양 전 의원. 하마다 여사는 “그때 내가 60대였는데 계단을 내려가는데 손을 잡아주더라”며 활짝 웃었다. “일본에 놀러 오라”는 하마다 박사의 초대에 일본을 찾기 시작하면서 국적 다른 세 사람은 가족이 됐다.

자녀가 없던 하마다 박사 부부는 한글을 공부해 편지를 보냈다. 37년간 쌓인 편지는 수백통. 양 전 의원이 결혼해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부부에게 또 다른 행복이 됐다. 양 전 의원이 스마트폰에 저장한 ‘손주’ 영상을 틀자 하마다 여사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여사는 “여행 가면 사람들이 우리더러 닮았다고들 한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하마다 요시에(98) 여사가 20일 양향자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에게 깜짝 선물한 이병철 자개함. 삼성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이 하마다 시게타카 박사의 전무 승진을 기념해 자필 축하 메모와 함께 선물한 것이다. 김현예 특파원
하마다 여사가 “옛 물건을 하나 찾았다”며 종이를 건넸다. 이병철 회장의 친필 메모였다. 하마다 박사의 전무 승진을 기념해 보낸 자개함에 들어있던 것으로 ‘축 삼성물산주식회사 회장 이병철’ 글씨가 또렷했다. 여사는 “남편이 늘 향자는 한국에서 온 딸이다, 언젠가는 대통령 선거에 나갈 거라고 했다”며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자개함을 안겼다. “할 수만 있다면 나라도 한표를 주고 싶다. 한국에 가져가 좋은 곳에 쓰라”면서다. 자개함을 받아든 양 전 의원은 눈물을 또 한 번 쏟았다.

위독한 상태인 '반도체 아버지'인 하마다 시게타카(100) 박사가 입원해 있는 세이부주오병원 앞. 20일 이곳을 찾은 양향자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가 면회가 불발되자 안타까운 마음에 굳게 닫혀있는 병원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김현예 특파원
하마다 박사를 보기 위해 차량으로 10여분을 달려간 세이부주오(西武中央)병원. 굳게 닫혀있는 병원 문 앞을 서성이다 전화를 걸었다. “눈이라도 마주치게 해줄 수 없느냐” 사정해 봤지만, 면회는 할 수 없었다. 병원 관계자는 “한국에서 달려온 사정은 딱하지만 사전에 예약하지 않으면 면회는 안 된다”며 미안한 표정으로 들어갔다.

하네다 공항으로 가는 길에 양 전 의원은 “하마다 박사는 일본이 가능한 것은 한국도 가능하다며 반도체에 확신을 갖게 해주신 분”이라며 “‘밤낮없이 일하는 것은 안타깝지만 그게 삼성’이라고 용기를 줬다”고 했다. 그는 “하마다 박사는 한·일 반도체의 가교(架橋) 역할을 하신 분”이라는 말을 남기고 김포행 비행기에 올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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