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은 이날 오후 '의료정상화를 위한 전국의사궐기대회'를 열었다. 정부의 의대 증원을 비롯한 의료개혁 정책 중단,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의개특위) 해체 등을 요구하는 자리였다.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과 정부의 내년 의대 모집인원 '3058명 복귀' 결정에도 세(勢)를 과시하는 투쟁을 이어갔다. 의료계 내부에선 대안 없이 기존 입장만 반복한다는 비판도 나왔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이 20일 서울 중구 숭례문 일대에서 열린 '의료정상화를 위한 전국의사궐기대회'에서 연대사를 하고 있다. 뉴스1
이날 의협은 1년 2개월 넘은 의정갈등을 끝내려면 정부 측 사과와 의료 정책 원점 재검토가 전제라는 주장을 이어갔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의협 부회장)은 연단에 올라 "일방적으로 정책을 결정했던 건 정부다. 우리가 무엇을 그리 잘못했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왜 정책 실패와 예산 낭비를 인정하지 않느냐"며 "임기가 끝날 때까지 적극적으로 사태를 해결하라"고 요구했다.
20일 서울 중구 숭례문 인근 세종대로에서 대한의사협회가 연 '의료정상화를 위한 전국의사궐기대회' 참가자들이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과 의료개혁특별위원회 운영 등을 규탄하고 있다. 연합뉴스
참석자 발언도 어렵게 시동을 건 정부·국회와의 대화보다 '투쟁'이나 '문책'에 방점이 찍혔다. 이선우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 비대위원장은 "의대 건물에 맞춰 (인원을) 증원하겠다는 것은 탁상에서만 노는 문과 관료들의 태만과 무능력을 절실히 보여준다"면서 "보건복지부 박민수 차관과 조규홍 장관은 책임을 반드시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단 위원장은 병원·학교를 떠난 전공의·의대생에게 "이 길의 끝이 어디일지 잘 모르겠다. 우리는 그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걷고 있다"며 "각자 자리에서 각자 방식으로 끝까지 최선을 다하면 좋겠다"고 했다. 이를 두고 한 집회 참석자는 "'끝까지 가보자', '계속 버티자'는 주문을 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이날 집회는 정부가 내년 의대 모집인원을 3058명으로 되돌린 지 사흘 만에 열렸다. 의협은 애초 1만 명 집회 참가를 경찰에 신고했지만, 김성근 의협 대변인은 "최종 참여 인원은 2만5000명"이라고 말했다. 참가자의 상당수는 흰색 셔츠를 입은 의대생들이었다. 주최 측은 집회 도중 "학교 명예를 걸고 소리 쳐달라"고 전국 의대 이름을 호명해 대학별로 함성을 유도하기도 했다.
의협은 "후배들이 돌아올 수 있는 명분을 우리 손으로 만들어주는 자리"(김택우 회장)라며 정부 압박용 집회에 공을 들여왔다. 이날 집회를 끝내면서 "오늘 집회 성공했다"라고 외치기도 했다. 한 지역의사회장은 "모집인원 동결이라지만 (법적) 정원은 여전히 5058명이라 정부 발표를 말장난이라고 여기는 의대생이 적지 않다. 이 때문에 집회에도 많이 온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선우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장이 20일 서울 중구 숭례문 인근 세종대로에서 열린 '의료정상화를 위한 전국의사궐기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의료계 내부에선 이날 집회가 '보여주기'에 가깝다는 회의적 반응도 나왔다. 익명을 요청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번 집회로 해결될 게 없으니 사실상 한풀이에 가깝다. 의정갈등을 풀 대안이 없고, 대선 국면에서 뚜렷한 전략도 없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 사직 전공의는 "의대생에 동원령을 내려 집회에 많이 참석하도록 압박해 세 결집을 보여준 것"이라고 주장했다.
강경 노선에 치우치는 분위기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 다른 의료계 관계자는 "복귀를 원하는 전공의나 의대생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강경 투쟁만을 외치고 있다. 소수가 다수를 묵살해 억압하려는 시도"라고 비판했다. 한 의대 교수는 "필수의료를 돕겠다는 필수의료 패키지 정책을 무조건 폐지하면 의료계도 공멸할 수밖에 없다"라면서 "윤석열 정부가 이미 끝난 판에 허공에 주먹질만 하니 답답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