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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보단 잿밥에 관심…“대선 출마 땐 단체장직 사퇴 제도화”목소리
지난 4월 15일 대구 서문시장에서 사람들이 물건을 둘러보고 있다. 이호준 기자


[주간경향] “임기 안 채우는 사람은 앞으로 출마 자격을 박탈했으면 좋겠습니다.”

동대구역에서 만난 김진명씨(59)는 “TK에 뭐 맡겨놓은 것도 아니고 아무나 왔다가 그만둬도 되는 곳이냐”며 혀를 찼다. 옆에 있던 일행도 “홍준표는 저번에도 그러더니, 또 그런다”며 “국회의원이나 하지 왜 시장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거들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으로 조기 대선이 확정된 뒤 광역단체장들의 출마 러시가 이어지고 있다. 4월 16일 기준 대선 출마를 선언한 광역단체장은 김동연 경기도지사와 유정복 인천광역시장, 홍준표 전 대구광역시장, 이철우 경상북도지사 등 4명이다. 출정식 전날 돌연 불출마를 선언한 오세훈 서울시장을 비롯해 김영록 전남지사 등 출마를 저울질하다 최종 포기한 이들까지 포함하면 당초 이번 대선에서 출마를 예고했던 광역단체장은 10명 가까이 된다.

■대선마다 반복되는 지자체장 출마 러시

국민의힘의 경우 유정복 시장과 홍준표 전 시장, 이철우 도지사가 지난 4월 16일 1차 경선 진출자에 포함되면서 이들은 4월 22일 2차 경선 진출자 4명이 가려질 때까지 경선 레이스를 지속할 수 있다. 국민의힘은 2차 경선에서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은 경우 5월 1~2일 당원투표 및 국민 여론조사를 진행해 같은 달 3일 전당대회에서 최종 대선후보를 결정한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대선에 출마하려는 공직자는 대통령선거일 30일 이전까지 공직에서 물러나야 한다. 대선이 열리는 6월 3일에서 30일을 역산하면 단체장들은 적어도 5월 4일까지는 사퇴를 해야 한다.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열리는 5월 3일은 공직 사퇴 시한을 하루 앞둔 날로, 사실상 현직 단체장들이 아무런 장애 없이 경선을 끝까지 마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후보자들로선 법으로 보장된 피선거권을 행사하는 것이지만, 단체장들의 출마 러시에는 곱지 않은 시선이 쏟아진다. 지역의 대통령인 도백들이 임기 중 더 많은 권력을 쥐겠다며 도정과 시정을 팽개치고 선거판으로 뛰어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4월 15일 대구 서문시장을 찾은 사람들의 모습 / 이호준 기자


공직선거법 위반은 아니지만 국민의힘 경선에서 보듯이 적게는 몇 주, 길게는 몇 달씩 단체장이 업무에서 손을 놓게 된다. 민생 현안은 뒷전으로 밀리고, 행정은 부시장이나 부지사에게 형식적으로 위임되는 상황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특히 대구시장과 경북도지사가 동시에 경선에 뛰어든 TK 지역에서는 곱지 않은 시선이 적지 않았다. 지난 4월 15일 서문시장에서 만난 한 상인은 “산불이 나가지고 다 죽겠다고 하는데 이철우 도지사가 출마한다고 며칠 전에 시장에 왔다고 하더라”면서 “산불이 났는데 경북도지사가 대구에 왜 오냐”고 꼬집었다. 또 다른 상인은 “공항 이전이니 통합이니 뉴스는 실컷 나왔는데 3년 동안 아무것도 된 게 없다”면서 “저러고 다음에 또 (지방)선거에 나올 거 아니냐. 인물 참 없다”고 답답해했다.

■휴가 내고 참여 ‘현직 프리미엄’까지

대통령선거가 임박해서 자치단체장들이 대권 레이스에 뛰어드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방자치법에 따라 현직 시·도지사는 직을 유지한 채 경선에 참여할 수 있고, 선거운동 등으로 자리를 비우면 행정부지사가 도지사 역할을 대행할 수 있다. 때문에 2017년 19대 대선에서는 홍준표 당시 경남도지사와 김관용 경북도지사, 안희정 충남도지사, 이재명 성남시장, 최성 고양시장, 남경필 경기도지사 등 무려 6명의 지자체장이 사퇴하지 않고 각 당에서 치러지는 경선에 참여했다.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021년 제20대 대선 경선에서도 경기도지사직을 유지한 채 경선에 참가, 민주당 최종 후보로 확정된 뒤에야 지사직에서 물러났다. 직을 유지한 채 경선에 참여한 결정을 두고 당시에도 “양심의 문제”(이낙연 전 총리), “마음이 콩밭에 있다”(이상민 전 민주당 의원) 등 비판이 쏟아졌다. 하지만 이 전 대표는 “경선을 위한 사퇴냐, 도지사직 유지냐를 두고 선택하라면 경선을 포기하겠다”며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역시 이번 조기 대선에 출사표를 던진 김문수 전 장관도 2012년 제18대 대선 당시 새누리당 경선에 출마하면서 경기도지사직을 유치한 채 경선을 치러 같은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지난 4월 11일부터 시장 대행체제로 전환된 대구시 산격청사 정문 모습 / 이호준 기자


이번에 경선에 나서는 광역단체장들의 경우 경선에서 탈락하든, 본선에 진출한 뒤 탈락하든 위험 부담이 거의 없다. 휴가를 내고 경선에 참여한 뒤 탈락하면 그대로 업무에 복귀할 수 있고, 본선에 진출해 낙선하더라도 자신을 대체할 보궐선거가 치러지지 않는다. 공직선거법상 보궐선거는 4월과 10월 두 번 열리는데 4월 보궐은 시기가 지났고, 10월이면 제9회 지방선거가 열리는 내년 6월 3일까지 1년이 채 남지 않기 때문에 10월 보궐선거도 열리지 않는다. 보궐에서 새로운 ‘현직’이 탄생하지 않는 만큼 사실상 ‘현직 프리미엄’을 잃지 않는다.

대구시의 경우 홍 전 시장의 사퇴로 지난 4월 11일부터 김정기 행정부시장의 시장 권한대행 체제로 전환됐다. 대구시는 앞으로 내년 지방선거가 열리는 6월 3일까지 1년 넘게 권한대행이 시 살림을 맡아 운영하게 된다. 휴가를 내고 경선에 나선 단체장들 역시, 본선 진출 시 해당 지자체는 권한대행 체제로 넘어가게 된다. 시민과 도민들 입장에서는 최소 몇 주에서 최장 1년여까지 사실상의 행정 공백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무엇보다 단체장들의 선거 활동은 휴가 기간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대선 출마 시 출마 선언 전부터 대선을 염두에 둔 행보를 피하기 어려운 데다 정무직들의 사임과 인사, 포퓰리즘 행보 등 행정에도 크고 작은 영향을 주게 된다.

반면 출마 단체장들은 경선, 본선에 나가 낙선하더라도 피해가 거의 없다. 당초 역대급 출마 러시가 예고됐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반대로 얻을 수 있는 것들은 적지 않다. 경선 기탁금 1억원이 적은 금액은 아니지만, 당 안팎의 인지도 강화는 물론 단체장 연임용 경력과 ‘대선주자’라는 간판을 대가로 얻을 수도 있다.

시민사회단체에서는 차제에 광역단체장들이 대선에 출마할 경우 단체장 직을 사퇴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18개 시민사회단체들로 이뤄진 참여자치지역운동연대는 “단체장 직 사퇴를 하지 않고 대선에 출마한 단체장들은 직을 이용해 내년 지방선거 재출마를 하기 위한 사전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 셈”이라며 “최소한의 책임감이 있다면 단체장 직을 바로 사임하거나 내년 지방선거 불출마를 약속하고 대선에 뛰어드는 것이 도리”라고 지적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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