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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무대에 올라 연주를 앞둔 음악가의 손은 긴장으로 경직되기 마련이다. 전주곡(Prelude)의 역사는 여기에서 시작됐다. 본격적인 연주를 시작하기 전, 연주자의 손가락을 워밍업하면서 악기의 조율을 점검하기 위한 친절한 장르였던 것. 바흐는 이 전주곡을 푸가와 짝지어 모든 장조와 단조를 아우르는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을 작곡해 건반 음악의 정수를 이뤘다. 그런데 후대 작곡가들은 전주곡을 연주 전 몸풀기나 서론으로 단정 짓지 않았다. 독립적 장르로 진화시킨 것이다. 그 대표적 예가 쇼팽과 스크리아빈의 전주곡집이다.

음악학자 헨리 핑크(Henry Fink)는 이렇게 선언했었다. "지구상 모든 것이 파괴되고 단 하나의 피아노곡만 보존할 수 있다면, 나는 주저 없이 쇼팽의 전주곡을 선택할 것이다." 쇼팽에게는 그와 같은 곡이 바흐의 클라비어 평균율 곡집이었을지 모른다. 전주곡을 작곡했던 1838년, 마요르카 섬에서 혹독한 겨울을 견디면서 여행 가방에 챙겨온 바흐 평균율 악보를 영감의 원천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최초로 모든 장단조를 탐구한 이 걸작처럼 쇼팽도 전주곡에서 24개의 조성(調聲)을 관통하는 대장정을 펼쳐놓는다.

다만 서론의 역할에 한정됐던 바흐의 전주곡과 달리 쇼팽의 전주곡은 개별곡으로 연주가 가능할 정도로 독립적이고 자율적이다. 전주곡을 예술적 장르로 독립시킨 최초의 시도였다. 전곡의 연주시간이 45분에 이르지만 24곡 중 대다수는 1분이 채 넘지 않는다. 7번은 45초에 불과하고, 9번은 12마디에 축약돼 있다. 24개의 미니어처는 만화경처럼 다채로운 아이디어와 밀도 깊은 표현으로 반짝거린다.

스크리아빈의 전주곡은 쇼팽으로부터 태어났다. 24개의 모든 장단조를 탐구하면서 쇼팽처럼 그 순서를 5도권 상승으로 엮는다. 악보가 채 한 페이지를 넘지 않은 곡이 즐비한데, 평생 짧은 피아노곡에 애착을 드러낸 스크리아빈은 1분 내외의 덧없는 시간에도 섬세한 감각과 농축된 표현을 맘껏 투영했다. 그만큼 미니어처의 대가였다. 아름다운 선율선이나 과감한 분위기 전환은 쇼팽을 향한 깊은 영적 친밀감을 드러낸다.

쇼팽과 스크리아빈, 태생과 시대는 달라도 두 작곡가의 전주곡집은 강하게 결속돼 있다. 24개 장단조의 완결성, 세부로 구현한 거대한 전체가 그러하다. 각 조성이 지닌 독특한 음조는 짧은 시간에 압축된 시정, 멈춤과 휴식의 대비를 일으키며 건반악기 특유의 터치로 공명한다. 24개 장단조 조성을 순환하면서 청각적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조은아 피아니스트·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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