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의 시장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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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연합뉴스) 김동호 특파원 = "물가가 참 많이 올랐네요."
"2년 전과 비교하면 과일이 100% 올랐을 겁니다."
"인터넷 비용이 갑자기 3∼4배 올랐어요."
튀르키예에 사는 한국 교민들의 요즘 최대 화두는 장바구니 물가와 환율이다.
타향살이에 이골이 난 한 교민은 필자를 만날 때마다 "오늘이 제일 싸다"며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당장 사라고 권한다.
실제로 마트에 갈 때마다 장바구니 물가가 오르는 게 체감된다.
종종 사 먹던 고기가 1㎏에 1천리라(약 3만7천원) 넘는 가격표를 단 것을 보고 발걸음을 돌린 적도 있다. 1년 전쯤엔 500리라 정도였다.
이스탄불에 온 지 1년이 채 안 된 한 교민은 리라화 가치가 내려갔을 때 거액을 매수했다가 며칠 뒤 급락하는 것을 보고 땅을 쳤다.
환율이 움직이는 것보다 물건값이 더 가파르게 뛴다. 자동차나 부동산 가격도 하루가 다르게 변한다.
반면 임금 상승은 더디다 보니 구매력이 쪼그라든 튀르키예 서민의 삶은 갈수록 팍팍하다.
살인적인 물가 속 비싼 물건이 날개 돋친 듯 팔리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한다.
삼성·애플 스마트폰은 온갖 세금 때문에 100만리라(약 374만원)가 넘는데도 대학생들은 쌈짓돈을 모아 할부로 덥석 구매한다. 이 역시 오늘이 가장 싸고, 내일은 더 비쌀 것이라는 뿌리 깊은 인식 때문이다.
경제난의 가장 큰 원인으로 튀르키예가 한때 고집했던 비정통적 통화정책이 꼽힌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각국이 금리를 올려 유동성을 회수할 때 튀르키예 혼자 저금리를 유지한 탓에 벌어진 환율과 물가 폭등이 수년째 이어지고 있다.
중앙은행은 지난 2년간 기준금리를 무려 50.0%까지 끌어올리는 '정책 유턴'을 단행해 일부 효과를 보는 듯했고, 이에 작년 12월부터 세 차례에 걸쳐 금리를 다시 내렸다.
하지만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 여파에 튀르키예 국내 정치 불안정까지 겹치며 재차 인플레이션 신호가 오는 모양이다. 지난 17일 내수 수요가 잡히지 않는다며 기준금리를 42.5%에서 46.0%로 인상하고 통화 긴축으로 되돌아갔다.
극심한 경제난 속 치러진 작년 지방선거에서 튀르키예 유권자들은 이스탄불, 앙카라, 이즈미르, 부르사, 안탈리아 등 대도시 시장 자리를 전부 제1야당 공화인민당(CHP)에 안겨주며 집권 정의개발당(AKP)에 경고장을 날렸다.
여기에 지난달 CHP의 대권주자 에크렘 이마모을루 이스탄불 시장이 부패·테러 혐의로 체포된 데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져 반정부 여론에 불이 붙었지만,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노련한 정치력으로 이를 몇 주 만에 진화했다.
이제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집권 초기 7%에 육박하는 경제성장률을 달성했던 실력을 다시 입증해 내일에 대한 안정감을 주는 것이 등 돌린 표심을 되돌리기 위한 필요조건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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