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자유인’ 고 홍세화 선생 1주기 추도식
18일 오전 경기도 남양주 마석모란공원에서 열린 고 홍세화 선생 1주기 추도식에서 최우성 한겨레 대표이사가 추도사를 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18일 오전 11시 경기도 남양주 마석모란공원에서 노동당과 녹색당·기본소득당이 한 자리에, 소주·맥주와 막걸리·와인이 한 상에, 샹송과 가요와 투쟁가가 한 데 어우러진 대연대의 장이 펼쳐졌다. “소유에서 관계로, 성장에서 성숙으로”를 외치며 이 세상 가장 낮은 곳, 가장자리 곳곳에 인연을 쌓아두고 1년 전 우리 곁을 떠난 언론인이자 사회운동가 고 홍세화 선생을 저마다의 추억과 방식으로 기리는 자리였다. 아울러 살아있었다면 “누구보다 열심히 팔뚝질을 하고 윤석열 파면을 외치셨을”(이상현 녹색당 대표) 선생의 뜻을 기리며 ‘내란과 반동의 시대’를 헤쳐갈 시대정신과 다짐을 나누는 자리이기도 했다.
이상섭 전국금속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은 “홍세화 선생님께서 우리 곁을 떠나신지 1주기가 되는 날”이라며 “윤석열이 더 이상 대통령이 아닌 세상 14일 차의 아침인데, 선생님이 살아계셔서 오늘 아침 공기와 바람을 같이 맞을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참 좋아하셨겠다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선생님께서는 일생을 ‘깨어서 생각하는 사람’으로, ‘침묵을 넘어, 말하는 양심’으로 사셨고, 언제나 약자의 편에 서셨고, 불의에 맞서는 것을 주저하지 않으셨다”며 “선생님의 말과 글, 그리고 삶은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삶과 운동의 기준이 되고 있고, 그 가르침은 앞으로도 길이 되어 우리를 이끌어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상현 대표는 녹색당의 상징인 초록점퍼와 초록운동화 차림으로 마이크를 잡은 뒤, 고인을 “이중 당적자”로 호명하며 슬픔에 가라앉았던 현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이 대표는 “붉은 노동당 동지들 앞에서 노동당·녹색당 이중 당적을 가졌던 홍세화 동지를 당원 동지라고 부르려니 심장이 막 뛴다”며 “홍세화 동지는 정당법 독소조항 앞에서 당당히 이중 당적자임을 밝히셨고, 정당 간에 또 진보 세력 간의 연대가 중요함을 늘 말씀하셨다”고 회고했다. 이 대표는 이어 “광장에 나온 시민들이 자본과 권력, 차별과 혐오의 토대 위에 섰던 친일 쿠데타 수괴를 끌어내렸지만, 광장에서 끊임없이 외쳤던 평등과 연대의 정신을 앞으로 어떻게 이루어 갈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평등을 연대를 생태 평화의 세상을 더욱 힘주어 간절히 외치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붉은점퍼를 입은 이백윤 대표는 고인을 ‘척탄병’으로 추억했다. 기술이 발전하지 못했던 시절 쇳덩어리 같은 수류탄을 던지는 임무를 맡은 척탄병은 자기 온몸을 적에게 노출해야 했고, 수류탄이 멀리 날아가지 않으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홍세화 선생은 마치 척탄병처럼 2011년 노회찬·심상정 등 당의 얼굴들이 통합진보당으로 빠져나간 진보신당(노동당 전신)의 대표가 됐다. 이 대표는 “당시 홍세화 선생님 덕분에 흔들렸던 눈빛이 다시 초점을 잡고 혼란스럽고 불안했던 마음을 수습했다고 말하는 당원들이 여전히 많다”며 “낮은 곳으로 임했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았던 홍세화, 누구보다 날카롭게 이 세상을 논평하고 비평했지만 전선에 서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그 모습처럼, 오늘 당원 이백윤으로 척탄병이 되겠다는 다짐한다”고 말했다.
안효상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이사장은 “우리 시대 우리 사회에 딱 맞았다는 의미에서, 말하는 사람의 행함과 됨됨이와 어울린다는 의미에서” 모자람도 넘침도 없었던 선생을 ‘몸의 전사이자 말의 전사’였다고 기억했다. 안 위원은 고인을 향해 또 추모객들을 향해 “우리를 언제나 부끄럽게 만들고, 그럼에도 우리를 끊임없이 나아가게 만드는, 선생은 누구십니까? 우리를 때때로 고뇌에 빠뜨리고, 그럼에도 우리를 계속해서 살아가게 만드는, 선생은 누구십니까?”라고 질문을 던졌다. 그는 이어 “선생은 설사 여기에 있다 하더라도 스스로 답을 찾으라고 할 것이지만, 조용한 아침에 깨어날 때, 존엄한 인간의 삶에 대해, 사랑하는 벗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며 절절한 그리움을 전했다.
18일 경기도 남양주 마석모란공원에서 고 홍세화 선생 1주기 추도식이 열린 가운데, 차례상 앞에 소주와 맥주 막걸리와 와인이 함께 차려져 있다. 전정윤 기자 [email protected]
고인이 20여년간 기자로, 칼럼니스트로 인연을 맺었던 한겨레의 최우성 대표이사는 ‘선배’ 홍세화를 추억했다. 최 대표는 1년 전 장례식장에서 조문객의 신발을 정리하던 한 후배가 무심코 했던 말을 떠올렸다. “구두는 거의 없고, 죄다 운동화·활동화, 뒷굽이 두껍고, 꺾어 신고, 낡고, 닳고…홍 선배가 누구와 가까웠는지를 보여주네요.” 최 대표는 “그날 빈소에 가득했던 허름한 신발들은 그 흔한 학연과 지연, 나아가 운동권연과도 멀리 거리를 둔 채 늘 힘들고 낮은 현장을 마다 않고 찾아다니며 진보와 이성의 목소리를 전한 선배의 삶을 오롯이 보여주는 징표였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선배가 마지막 한겨레 칼럼에서 전했던 ‘성장에서 성숙으로’의 당부는 아직 이뤄드리지 못했지만, 방향을 잃고 헤맬 때마다 선배의 나지막하지만 매듭이 분명한 중저음의 목소리와 반짝이는 눈빛 떠올리며 다시 힘을 내겠다”고 다짐했다.
추모식에는 프랑스에 머물고 있는 유족을 대신해 사촌동생 홍은숙씨와 고인의 60년지기 친구였던 김세균 전 서울대 교수, 유홍준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사장, 임진택 명창이 참석했다. 또 정당과 단체, 언론사에서 함께 뜻을 모았던 동지·동료 등 100여명도 묘소를 찾았다. 김세균 교수는 “우리 홍세화 동지야말로 그야말로 엄청난 감성의 소유자 냉철한 지성과 감성 그리고 때묻지 않는 그런 성실한 마음 이런 것들이 결합돼 있는 사람으로서 한평생 우리 세상이 사람이 다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위해 노력하다 갔다”며 “그런 마음을 되새긴다면 우리도 좀 더 좋은 사회적 실천을 행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7시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다리소극장에서는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금속노조·노동당·녹색당·소박한 자유인, 장발장은행 주관으로 ‘고 홍세화 1주기 추모문화제-오늘의 시대정신은 무엇인가?’가 열린다. 추모문화제에서는 유홍준 이사장·채희완 전 부산대 교수, 정혜승 법무법인 반우 대표변호사, 김창곤 한국 지엠(GM) 노동자, 송경동 시인, 염종선 창비 대표이사의 추도사가 있을 예정이다. 또 더숲트리오 & 장경아, 봄날합창단, 짜노 한베평화재단 사무총장의 추모공연도 예정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