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커버스토리] 시각장애인 부부
최영찬·손혜선씨가 꿈꾸는 미래
지난 9일 서울 강북구에서 만난 최영찬(오른쪽)·손혜선씨 부부. 시각장애가 있는 두 사람은 자신들처럼 앞을 잘 못 보는 자녀 2명을 키우고 있다. 이들은 "장애가 있지만 아이들에게는 무엇이든 해 주는 부모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최현규 기자

“모르고 낳았죠?”

시각장애인 부부인 최영찬(35)·손혜선(37)씨가 아이들을 데리러 유치원에 갈 때면 자주 듣는 말이다. 두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은 영유아 특수학교로, 학교 이름을 듣고 택시기사가 의아해하면 부부는 이렇게 설명한다고 한다. 아이들도 우리처럼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그러면 택시기사들은 곧장 안타까움이 섞인 질문을 쏟아내는데 그때마다 부부는 심란해진다.

“모르고 낳았다 하면 저희를 불쌍하게 보는 거로 끝나요. 하지만 아이가 장애가 있을 것을 알고 낳았다고 말하면 ‘미쳤냐’는 얘기도 듣곤 하죠.”(최씨)

부부를 만난 것은 장애인의 날(20일)을 11일 앞두고 있던 지난 9일 서울 강북구 한 카페에서였다. 두 사람은 아들 성민(4)군과 딸 하나(2)양의 하교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손씨는 앞을 아예 볼 수 없었고, 최씨는 눈앞 5㎝에 있는 물체의 명암과 색깔만 구분 가능한 상태였다. 문제는 아이들도 부부의 선천성 녹내장을 물려받아 장애를 안고 살아간다는 것. 두 사람은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게 어떤 것인지, 그런 삶을 살면서 마주한 편견과 장애 아동을 키우며 느낀 애환은 무엇이었는지 들려줬다.

두 아이 키우면서 겪는 보람과 애환

손씨는 태어날 때부터 장애가 있었지만 언제나 딸을 믿고 응원해준 어머니 아래에서 다복하게 자랐다. 하고 싶은 일도 다 해 왔고 사랑받고 또 사랑하면서 살아 왔다. 남편 역시 마찬가지다. 회사 동료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장애학생 교육에 관심이 많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하지만 만나자마자 연인이 됐던 것은 아니다. 손씨는 3년 가까이 최씨를 밀어냈다. 교제를 시작하고도 손씨는 1년 넘게 남자친구가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가족에게 알리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비장애인이던 형부도 뇌출혈로 쓰러져 장애인이 되는 일이 벌어졌다.

손씨는 “둘째사위가 될 수도 있는 남자 역시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엄마가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었다”며 “내가 흔들려도 남편은 동요된 적이 없었다. 남편은 항상 내게 믿음을 줬다”고 말했다.

백년가약을 맺은 두 사람에게 아이를 낳아 단란한 가정을 꾸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이가 장애가 있더라도 자신들처럼 잘 살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있었고, 무엇보다 이들에겐 서로가 있었다. 첫째 성민이가 태어난 날 마취에서 깨어난 손씨는 말했다. “이래서 다들 둘째를 낳나 봐.” 부부는 아이도 장애가 있을 확률이 높다는 걸 알았지만 출산을 포기할 생각은 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요즘도 사람들은 부부에게 묻곤 한다. 아이들 목욕은 누가 시키는지, 기저귀는 어떻게 가는지. 그때마다 부부는 답한다. 우리가 다 하고 있다고, 전부 할 수 있다고. 물론 하나하나 배우는 과정은 복잡했고 시간도 오래 걸렸다. 손씨는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빈틈이 생길 수 있다는 생각에 집에서 한 번도 편하게 낮잠을 자거나 누워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저희가 이기적인 부부인가요?”

사진=최현규 기자

부부는 최근 밀알복지재단에서 운영하는 장애 인식개선 유튜브 채널 ‘알티비’에 출연했다. 많은 이로부터 응원과 격려의 메시지가 답지했는데 그중엔 가시 돋친 말도 없진 않았다. 장애인 부부가 장애가 있을 것이 예상됐던 자녀를 출산해 기르는 것을 두고 ‘부모의 욕심’이라거나 ‘아이의 인생은 고민하지 않는다’ ‘도움받으면서 키워야 할 거를 알면서 왜 낳았느냐’ 같은 악플이 달렸다.

이런 반응에 대해 최씨는 “합리적인 생각”이라고 담담히 말했다. 최씨 본인도 다른 장애 가족을 보며 ‘어떻게 낳아서 키우려 하나’라고 생각한 적이 있으니까.

손씨는 자신들을 이기적인 부부라고 단정 짓는 이들에게 “아이를 낳아 힘들지만 열심히 키워내겠다는 게 이기적인 건지 묻고 싶다. 고생하기 싫다는 이유로 아이를 안 낳는 게 이기적인 것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부부는 다른 부모들처럼 아이들에게 많은 경험과 추억을 선물해 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자식을 위해 시각장애인에겐 얼마쯤 힘든 일도 벌이곤 한다. 가령 최씨는 일부러 아들을 데리고 지하철이나 기차를 탈 때가 있다. 언젠가 성민이와 강원도 춘천 삼악산에 있는 케이블카를 타겠다는 계획도 세워놓았다. 최씨는 요즘 이런 상상을 해보곤 한다. ‘땅에서 떨어져 있는 이동수단’을 타 본 적 없는 아들이 케이블카를 타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삶을 행복하게 만든 육아의 기쁨

물론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이 장애 아동을 키우는 일이 쉬울 리는 없다. 키즈카페에 가는 것조차 벅찬 일이다. 장애인 활동 지원 서비스가 있지만 활동지원사들이 아이들 밥 먹는 걸 도와줄 순 있어도 함께 놀이동산에 가기란 사실상 어렵다.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은 봉사 시간을 인정받기 위해 ‘기관’만 찾기에 성민이네 같은 일반 가정은 도움을 받기가 쉽지 않다.

최씨는 “복지관에 장애 가정 소풍 프로그램이 있어서 문의하니 비용만 지원할 뿐 우리끼리 갔다 와야 한다고 하더라”며 “복지 서비스가 재정적 지원인 경우가 많은데, 인적 지원이 있으면 성민이와 케이블카를 타러 갈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인터뷰 말미에 부부에게 아이들 덕분에 행복한 순간이 언제였는지 묻자 두 사람은 “매일”이라고 답했다. 보이진 않지만 아이들의 행동이 자신들과 닮았다는 게 느껴질 때면 감동을 받는다고 했다.

손씨는 “아이들이 ‘나는 소중한 사람’이라고 느끼면서 자랐으면 한다. 좌절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잘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씨는 “아이들이 크고 작은 일을 떠나 내가 하는 일이, 혹은 나라는 존재 자체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았으면 한다”며 미소를 지었다.

국민일보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46257 한미 관세협상, 재무·통상 '2+2 형식' 진행 추진…"곧 발표할 것" new 랭크뉴스 2025.04.20
46256 “무서워도 길에서 자야죠”…이재민들은 지금 [미얀마 강진④/취재후] new 랭크뉴스 2025.04.20
46255 '달러=안전자산' 공식 깨졌다…트럼프 취임 후 10% 급락한 이유 [김민경의 글로벌 재테크] new 랭크뉴스 2025.04.20
46254 토허제 확대 지정 한 달···“가격상승폭 둔화·거래량 감소” new 랭크뉴스 2025.04.20
46253 “문과 수험생 이례적 증가…사탐 응시율 통합수능 이래 최고” new 랭크뉴스 2025.04.20
46252 친구 얼굴에 돌 던진 9살 초등생…法 "학생과 부모, 2200만 원 배상하라" new 랭크뉴스 2025.04.20
46251 수도권 지하철 요금 6월 150원 인상…‘왕복 3000원’ 넘어 new 랭크뉴스 2025.04.20
46250 ‘외출 때 뽑아야’…中서 충전기 과열 화재 잇달아 new 랭크뉴스 2025.04.20
46249 이재명 “발달·정신장애인 돌봄 국가책임제 실시할 것” new 랭크뉴스 2025.04.20
46248 "왕은 없다, 파시즘 안돼"…美 700여곳 50만명, 반트럼프 시위 new 랭크뉴스 2025.04.20
46247 숨진 아버지 장애인 주차표지 부정 사용…아들부부 ‘집행유예’ new 랭크뉴스 2025.04.20
46246 “돈 좀 빌려줘”···여성 7명 상대 4억6000만원 뜯어낸 30대 new 랭크뉴스 2025.04.20
46245 그래서 트럼프는 제조업을 살릴 수 있을까? new 랭크뉴스 2025.04.20
46244 이재명 부활절 메시지…“정치도 어려움 인내하고 도전 포기말아야” new 랭크뉴스 2025.04.20
46243 산업장관 “韓美 통상협상, 섣부른 타결보단 신중한 접근" new 랭크뉴스 2025.04.20
46242 29억짜리 집 사는데 28억 '아빠 찬스'…서울시, 불법·편법 거래 59건 포착[집슐랭] new 랭크뉴스 2025.04.20
46241 한국증시 밸류업 발목잡는 중복상장…대기업 논란에 파열음 계속 new 랭크뉴스 2025.04.20
46240 '백종원 착취설'에 '연돈' 사장 "지금도 큰 도움 받고 있어" 직접 부인 new 랭크뉴스 2025.04.20
46239 김문수 "65세 이상, 오전 9시~오후 5시 버스도 무료탑승" 공약 new 랭크뉴스 2025.04.20
46238 한미 관세협상, 재무·통상 '2+2' 형식 진행 추진…"곧 발표" new 랭크뉴스 2025.0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