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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기업 역분화 줄기세포에 과감한 투자
세계 임상시험 3분의 1 일본서 진행
파킨슨병 치료 성과, 재생의학 우위 선점

일러스트=ChatGPT DALL·E 3


2000년대 초 ‘미래 의학의 꽃’이라는 줄기세포를 두고 세계 각국이 연구 경쟁을 벌였다. 한국은 출발이 빨랐다. 2004년 황우석 박사팀이 세계 최초로 복제 배아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 논문이 조작된 것으로 밝혀지면서 한국이 주저앉은 사이, 일본은 노벨상까지 받은 역분화 줄기세포에 집중 투자하면서 앞서갔다. 지난 20년간 한일 양국의 줄기세포 경쟁이 앞으로는 어떻게 진행될지 살펴본다.[편집자 주]

세계가 일본의 잇따른 줄기세포 치료제 연구·개발(R&D) 성과에 주목하고 있다. 일본이 집중 투자한 ‘유도만능줄기세포(iPS세포)’가 파킨슨병 같은 난치병을 해결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지난 20년간 일본 과학자들의 연구와 정부, 기업의 통 큰 투자가 결실을 맺을 날이 임박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日, 파킨슨병 치료 가능성 제시
파킨슨병은 뇌에서 도파민을 분비하는 신경세포가 망가져 운동 기능을 잃고 온몸이 떨리는 퇴행성 질환이다. 심하면 인지 기능도 떨어지지만 아직 뾰족한 치료법이 없다. 일본 과학자들이 iPS세포로 파킨슨병을 근본 치료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iPS세포는 다 자란 세포에 특정 유전자나 단백질, 또는 화학물질을 넣어 인체 모든 세포로 자랄 수 있는 배아줄기세포 상태로 역분화를 유도한 것이다. 배아줄기세포는 정자·난자가 만난 수정란에서 얻는데, iPS세포는 그렇지 않아 생명윤리 논란을 피할 수 있다. 환자 자신의 세포로 치료제를 만들 수 있어 면역억제제가 필요 없는 것도 장점이다.

일본 교토대 연구진은 파킨슨병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임상 1·2상 시험 결과를 담은 논문을 17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게재했다. 임상시험은 교토대병원에서 50~69세 환자 7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iPS세포를 도파민 신경세포로 자랄 전구세포로 분화시킨 다음, 환자 7명(저용량 3명·고용량 4명)의 뇌에 이식하고 24개월간 추적 관찰했다.

시험 결과, 안전성에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식한 세포가 과도하게 자라 종양이 되는 수준의 중대한 부작용은 나타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경증·중등도 수준의 이상반응은 73건으로 보고됐다. 자기공명영상(MRI)에서도 이식 세포의 과성장이 관찰되지 않았다. 일부 환자에서 떨림이나 강직 증상이 줄어드는 치료 효과도 확인했다.

교토대 연구진은 “동종 iPSC 유래 도파민 전구세포가 투여 후에도 생존하고 도파민을 생성하는 한편, 종양을 형성하지 않는다는 점을 입증한 것“이라며 ”파킨슨병에 대한 안전성과 잠재적 임상 유효성(치료 효과)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파킨슨병 환자에게 유도만능줄기세포로 만든 도파민 신경전구세포를 투여했다. 24개월 추적 관찰한 결과 별다른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았다. 파킨슨병 증상 완화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네이처

20년간 연구 릴레이… 임상시험 활발
교토대는 iPS세포 연구가 처음 시작되고 현재 세계 연구를 주도하고 있다. 교토대의 야마나카 신야 교수는 2006년 생쥐의 피부세포에 특정 유전자 4가지를 주입하면 아줄기세포와 유사한 iPS세포가 되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이 공로로 2012년 노벨상을 받았다.

이번 네이처 논문이 공개되자 학계에선 일본이 파킨슨병 iPS세포 치료제를 세계 최초로 정식 허가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네이처지는 이날 “일본이 줄기세포 분야에서 약 20년간의 노력과 시행착오를 거쳐, 줄기세포 치료제를 시장에 내놓을 ‘임계점’에 이르렀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고 평했다.

일본은 줄기세포 치료제 시장을 가장 빨리 열었지만, 정식 허가를 한 iPS세포 치료제는 아직 없다. 아직 대규모 임상시험에서 뚜렷한 치료 효과를 확인하지 않았고, 치료 비용과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201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야마나카 신야 일본 교토대 교수. 그는 다 자란 세포를 원시세포인 줄기세포 상태로 만드는 유도만능줄기세포(iPSc) 기술을 개척했다. 야마나카 교수는 1999년 나라(奈良)첨단과학기술대학원에 조교수로 응모했고 학교 측은 실적도 없이 전혀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겠다는 그를 채용했다. 그는 2004년 교토대학으로 옮겨 연구를 완성했다./일본 교토대

그럼에도 일본이 조만간 줄기세포 치료제 R&D의 결실을 거둘 수 있다고 보는 건 그동안 계속 연구를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네이처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에서 60건 이상의 iPS세포 치료제 임상시험이 진행 중인데 그 중 3분의 1가량이 일본에서 이뤄지고 있다. 임상시험에서 대체로 안전성을 확인했고, 일부에서 유의미한 치료 효과도 관찰되고 있다고 네이처는 전했다.

신야 교수가 iPS세포 연구로 노벨상을 받은 뒤부터 일본 정부와 학계는 이 분야에 집중 투자했다. 성과도 이어졌다.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 다카하시 마사요 박사는 2014년 세계 최초로 iPS세포를 배양해 만든 망막세포를 환자에게 이식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이식된 세포는 10년 넘게 살아남아, 환자의 시력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자가 세포로 치료제를 만드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비용도 많이 들어 상업화에 어려움이 있었다. 마사요 박사는 네이처에 “다른 사람 세포로 iPS세포 치료제를 만드는 방식을 개발 중”이라며 “일본의 재생의학은 매우 빠르게 진전 중”이라고 말했다.

이번 파킨슨병 iPS세포 치료 연구를 이끈 다카하시 준 교토대 신경외과 교수는 기술 상용화를 위해 일본 제약사 스미토모제약(Sumitomo Pharma)에 기술을 이전했고, 지금은 뇌졸중 iPS세포 치료제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왼쪽 사진은 2013년 1월 11일 아베 신조 총리가 교토대와 손을 잡고 연구하는 이화학연구소를 방문한 모습. 줄기세포 연구로 노벨 의학상을 받은 야마나카 신야 교토대 교수, 2001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노요리 료지 이화학연구소 이사장이 함께했다. 오른쪽 사진은 2011년 나루히토 일본 왕세자가 교토대 iPS 세포 연구소를 방문해 현미경으로 심근세포를 보는 모습. /조선일보DB

日 정부 과감한 투자…신속 승인 제도 도입
일본 연구자들이 이런 연구 성과를 계속해 ‘장거리 달리기’를 할 수 있는 건 정책·제도적 토양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2013년부터 재생의학 연구에 약 1100억엔(한화 약 1조원)을 10년간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이 예산은 대부분 교토대 iPS세포연구소 같은 연구기관을 지원하는 데 사용됐다. 10년 투자 기간이 지난 2023년 이후에도 매년 약 90억엔(약 895억원)씩 지속적으로 투입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과감한 지원을 하자 민간에서도 대규모 투자가 이어졌다. 과학자들은 임상시험 연구에 도전하고 스타트업 창업에 나섰다. 대형 바이오 기업들은 세포치료제 제조시설에 대대적인 투자를 했으며, 일본과 해외 환자들을 맞이하기 위한 의료시설을 열었다.

2020년엔 의류업체 유니클로를 운영하는 패스트리테일링의 야나이 다다시 회장이 암 면역과 줄기세포, 코로나 바이러스 연구를 위해 100억엔(당시 한화 약 1123억원)을 교토대에 기부했다. 스미토모제약은 2018년 세계 최초로 iPS세포 치료제 생산시설을 완공했다. RIKEN의 마사요 박사는 AI 로봇을 활용해 800명 이상에게 치료할 수 있는 iPS세포 기반 망막세포를 4개월 안에 생산하는 시스템도 구축했다.

일본 줄기세포 연구 거점. /조선일보DB

일본은 투자와 함께 지원 제도도 마련했다. 일본은 2013년에 안전성이 확인되고 효과가 예상되는 경우 조건부로 줄기세포·유전자 치료제를 사전에 활용할 수 있도록 승인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의약품, 의료기기는 임상시험을 거쳐 효과와 안전성을 입증하고 정식 승인을 받아야 상용화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마땅한 치료 대안이 없는 질환에 대해서 임상시험을 다 거치지 않아도 신속히 환자 치료에 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유전자·줄기세포 치료제 등 재생의학 치료제에 대해 공공보험 급여도 적용해 줬다. R&D가 매출로 이어질 수 있는 시장을 연 것이다.

네이처는 “전체적으로 볼 때, 일본은 줄기세포 치료의 상용화 시대에 가장 앞서 나아가고 있으며, 향후 몇 년 안에 iPS 기반 치료가 실제 환자들의 삶을 바꾸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평했다.

☞줄기세포(stem cell)

다양한 인체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일종의 원시(原始)세포. 성인의 골수나 지방 조직에서 추출한 것을 ‘성체줄기세포’, 불임 치료 후 남은 수정란에서 얻은 것을 ‘수정란 배아줄기세포’, 다 자란 세포와 난자를 융합해 만든 복제 배아에서 얻은 줄기세포는 ‘복제 배아줄기세포’라고 한다. 유도만능줄기세포(iPS세포)는 다 자란 세포에 특정 유전자를 집어넣어 배아줄기세포 상태로 만든 것이다.

참고 자료

Nature(2025) DOI: https://doi.org/10.1038/s41586-025-08700-0

NEJM(2017) DOI: https://www.nejm.org/doi/10.1056/NEJMoa1608368

Nobel prize(2012) https://www.nobelprize.org/prizes/medicine/2012/press-release/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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