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당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23일 대정부질문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기 위해 단상으로 향하고 있다. 당시 김 전 장관의 "문재인 정부 들어 집값은 11% 올랐다"는 발언은 문재인 정부의 통계 조작을 의심하는 단초가 됐다. 오종택 기자
‘문재인 정부 통계 조작 의혹’에 대한 감사원 감사 결과가 2년 7개월 만에 나왔다. 2022년 9월 착수해, 재작년 9월 전임 정부 청와대 및 내각 고위직 22명을 수사 의뢰했던 중간 감사 결과 발표 이후 나온 최종 결과다. 감사원이 17일 공개한 ‘주요 국가통계 작성 및 활용실태’ 공개문엔 문재인 정부 청와대와 국토부가 “부동산 조사에 정권의 명운이 달려있다”며 한국부동산원을 압박해 통계를 조작한 구체적 정황이 담겨있다. 소득주도성장의 부작용을 감췄던 소득과 고용 통계도 비슷한 압박 속에 조작된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통계를 건드렸다. 장하성 전 정책실장은 2017년 6월 정책 설계의 정교성을 높이겠다며 국토부에 이례적 지시를 내렸다. 부동산원이 주간 아파트 매매가격 확정치(7일간 조사 다음 날 발표)를 공표하기 전 주중치(3일간 조사 결과)와 속보치(7일간 조사 직후 결과)를 추가로 조사해 사전에 보고해 달라고 했다. 공표 전 통계 유출은 왜곡 우려 때문에 통계법상 엄격히 금지돼 있지만 개의치 않았다.
박경민 기자
집값 통계를 미리 받아본 청와대와 국토부는 2018년 1월 서울 재건축 단지(잠실·목동)을 중심으로 집값이 급등하고 여론이 악화되자 통계에 개입했다. 주중치와 속보치 변동률이 자신들이 원하는 수치보다 높으면 공표 전 재검토와 현장 조사를 요구하며 낮추라고 압박했고, 숫자 조작까지도 지시했다. 부동산원은 12번에 걸쳐 사전 보고의 위법성을 제기했지만 “예산이 없어져도 괜찮겠냐(김상조 전 정책실장)”는 청와대의 압박에 묵살됐고, 이같은 유출 및 조작은 이호승 전 정책실장 재임 때인 2021년 10월까지 최소 102차례에 걸쳐 이어졌다는 것이 감사원의 설명이다.
정부 주요 부동산 대책이 나올 때마다 압박은 거세졌다. 2018년 서울시의 용산·여의도 개발 계획 공개 뒤 급등하는 집값을 잡기 위한 8·27 대책 발표를 앞두고 청와대는 부동산원에 정책 효과를 미리 통계에 반영하라고 지시했다. 청와대 행정관 A씨가 2018년 8월 말~9월 초 부동산원 처장 B씨 집까지 찾아가 “나도 힘들지만, 부동산원이 협조를 해야 한다”고 부탁했고, 그 주 서울 매매 변동률은 0.67%→0.45%로 조정됐다.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사진)은 문재인 정부 부동산 통계 조작에 관여한 혐의로 검찰에 기소된 상태다. 김 전 실장은 부동산원의 반발에도 예산 등으로 압박하며 통계 사전 보고를 지시한 혐의를 받는다. 사진은 2020년 6월 21일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룸에서 일본수출규제 대응(소부장) 및 부동산 대책, 한국판 뉴딜, 추경 등에 관한 발표를 하던 김 전 실장으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2019년 6월 중순 문 전 대통령 취임 2주년과 맞물려 서울 변동률이 마이너스에서 보합으로 전환되자, 국토부 C과장은 부동산원에 “청와대가 예의주시 중인데, 저희 라인 다 죽습니다. 전주처럼 마이너스 부탁드린다”고 또 조작을 요청했다.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도 직원들에게 “보합은 절대 안 된다”고 닦달했다. 1주택자의 추가 매매 대출을 제한한 2018년 9·13 대책 효과로 하락세를 보이던 집값이 다시 상승하자 통계부터 건드린 것이다. 결국 부동산원은 “서울 보합세 전환”을 “서울 32주 연속 하락세”로 변경한 보도자료를 배포해야 했다.
조작이 일상화되며 윗선은 거침이 없어졌다. 부동산원이 6월 말 변동률을 다시 보합으로 전환하자 국토부 C과장은 “협조하지 않으면 조직과 예산을 날려버리겠다”고 협박했고, C과장 상사인 국토부 D실장은 그해 8월 김학규 당시 부동산원장에게 “사표 내시지요”라고 사퇴를 종용했다. 일주일 뒤 국토부 차관 E씨도 “당신과 정부 부동산 정책은 맞지 않는다”고 김 전 원장을 질타했다. 2019년 11월 부동산원 노조의 제보로 공직기강비서관실이 “부동산원 연락을 조심하라”고 국토부에 경고했지만, 이를 보고받은 김 전 장관은 “외부에서 소리가 나지 않게 잘하라”며 묵인했다는 게 감사원의 조사 결과다.
신재민 기자
2019년 12월 15억 원 초과 주택에 대한 담보대출 금지한 12·16 대책 뒤에도 상승세가 이어지자, 김 전 장관은 국토부 직원들을 불러 “대책 효과가 수치로 무조건 나와야 한다. 감정원(현 부동산원)을 챙겨달라”고 지시했다. 이후 매매 변동률은 또 하향됐다.
2020년 7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김 전 장관의 “문재인 정부 들어 집값이 한국감정원 통계로 11% 올랐다”고 한 발언은 여론에 불을 끼얹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에서 “상승률은 11%가 아닌 52%”라고 반박하자, 당시 코너에 몰렸던 김상조 전 정책실장은 “경실련 본부장이 날뛸 때 강하게 반박하라”고 국토부를 질책했다. 그 뒤 부동산원은 그해 8~10월 두 달간 서울 매매 변동률을 0.01%로 고정했다. 당시 민간 통계 상승률과 20배에서 최대 40배 이상 차이 나는 수치였다. 정권 후반부인 2021년 6월 국토부 직원 카카오톡 대화방에 “차관님 생각은 이 정권의 명운이 부동산원 조사에 달려 있다”는 글도 올라왔다.
감사원은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뿐 아니라 소득과 고용 통계도 조작했다고 지적했다. 사진은 2017년 6월 3일 당시 홍장표 청와대 전 경제수석이 가계소득 동향 관련 간담회를 하던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감사원은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등 소득주도성장의 부작용으로 가계소득이 줄고 비정규직이 급증하자 청와대와 통계청이 소득·고용 통계도 조작하거나 짜깁기했다고 지적했다. 2018년 5월 문재인 전 대통령의 “최저임금 인상 긍정적 효과가 90%” 발언도 최저임금과 무관한 통계에 기초한 것이었다. 감사원의 수사 의뢰를 받았던 검찰은 지난해 3월 김수현·김상조 전 정책실장과 김현미 전 장관 등 문재인 전 정부 고위 인사 11명을 통계 조작(통계법 위반,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했다. 지난 3월 열린 첫 재판에서 기소된 이들은 “검찰의 소설”이라며 무죄를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