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ficial Intelligence Index Report 2025 / 자료 = Stanford University HAI
중국의 인공지능(AI) 기술력이 사실상 미국과 대등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분석이 나왔다. 반면 한국은 모델 개발, 민간 투자, 인재 확보 등 AI 핵심 지표 전반에서 뒤처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스탠퍼드대 인간중심인공지능연구소(HAI)는 4월 7일(현지 시간) 글로벌 AI 산업 동향을 담은 ‘AI 인덱스 2025’ 보고서를 발간했다. AI 인덱스 보고서는 미국·유럽연합(EU) 등 주요국의 정책 수립에 참고자료로 활용되는 보고서로 2017년부터 매년 발간되고 있다. ‘AI 인덱스 2025’의 주요 내용을 정리했다.
한국, 특허는 1위지만…‘주목할 만한 AI 모델’은 단 1개
한국은 인구 10만 명당 AI 특허 부문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성과를 냈다. 2023년 기준 인구 10만 명당 AI 특허 등록 건수는 17.3개로 집계돼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전년(10.26개)보다 증가한 것으로 2013년부터 2023년까지 특허 증가율도 1043%에 달했다.
하지만 AI 모델 개발 부문에서 한국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2024년 발표된 ‘주목할 만한(Notable) AI 모델’ 가운데 한국산 모델은 단 1개에 그쳤다. 미국이 압도적인 1위(40개)를 기록했고 중국(15개)과 프랑스(3개)가 뒤를 이었다. HAI는 △최첨단 기술을 사용했거나 △역사적으로 전환점을 만들었거나 △높은 인용 수를 기록한 모델을 ‘주목할 만한 AI’로 분류한다. 오픈AI의 GPT-4o, 엔스로픽의 클로드3.5가 대표적이다.
한국 AI 중 유일하게 이름을 올린 모델은 LG AI연구원의 ‘엑사원 3.5’였다. 지난해 같은 조사에서 한국 모델은 단 하나도 없었다. 정부와 기업은 “조사 대상에서 한국이 누락됐다”며 항의했지만 조사 대상에 포함된 올해에도 한국 모델은 단 1개만 뽑혔다.
민간 부문 투자 성적도 좋지 않다. 2024년 한국의 AI 민간 투자액은 13억3000만 달러(약 1조9600억원)로 세계 11위를 기록했다. 2022년에는 31억 달러(4조5600억원), 2023년 13억9000만 달러(2조463억원)였다. 지난해 글로벌 민간 투자가 증가한 것과 달리 한국의 AI 민간 투자는 2년 연속 감소하고 있다.
AI 인재 유출 상황도 드러났다. AI 인재 이동 지표에서 한국은 -0.36을 기록했다. 국내 유입보다 해외로 빠져나가는 인재가 더 많다는 의미다.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 프랑스, 독일 등 주요국들은 플러스(순유입)를 기록했다.
중국, 미국 턱밑까지 추격…0.3%포인트 차이
반면 중국의 AI 기술력은 미국을 턱밑까지 추격한 것으로 나타났다. LMSYS 챗봇아레나(Chatbot Arena)에 따르면 미국 최상위 모델 구글과 중국 최상위 모델인 딥시크의 성능 차이는 지난해 1월 9.3%에서 올해 2월 1.7%로 급격히 좁혀졌다. LMSYS 챗봇아레나는 사용자 투표 기반으로 AI 모델을 비교하는 플랫폼으로 실제 체감 성능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활용된다.
이는 주요 AI 성능 벤치마크에서도 드러났다. MMLU(대규모 멀티태스크 언어이해 능력 평가), MMMU(범용 인공지능 기능 평가), MATH(수학 풀이 성능), HumanEval(다중언어코드 생성 평가) 등 각종 평가에서의 격차가 줄어들었다. 2023년 기준 미국은 중국을 13.5~31.6%포인트로 크게 앞섰다. 그러나 2024년 말 양국의 격차는 0.3~8.1%포인트로 줄어들었다. 보고서는 “중국이 AI 기술의 질적 도약에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수량 면에서는 미국이 여전히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성능 측면에서는 대등한 수준에 도달했다는 분석이다.
HAI는 중국의 효율적 기술개발에 주목했다. HAI는 지난 1월 출시된 딥시크 R-1에 대해 “하드웨어의 일부만 활용해 뛰어난 성과를 만들어냈다”고 평가했다. 중국은 투자 비용도 효율적으로 사용했다. 작년 중국의 AI 투자액은 93억 달러(13조7500억원)였다. 미국은 1090억 달러(162조원)로 추산됐다. 미국의 투자액이 중국에 비해 12배가량 컸던 셈이다. 보고서는 미국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빠른 속도로 미국을 추격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어 “반도체 수출 통제 등 대중국 견제 조치의 실효성에 대해 의문이 든다”고 전했다.조심스레 고개 드는 AI 낙관론
보고서는 AI 인식 조사 내용도 담았다. AI에 대한 긍정 인식은 확산하고 있지만 개인정보 보호와 차별 우려도 증폭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여론조사 입소스(Ipsos)는 32개국 성인 2만3685명을 대상으로 AI 인식 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AI 기반 제품 및 서비스에 대해 ‘이점이 단점보다 크다’고 인식하는 비율은 2022년 52%에서 2024년 55%로 소폭 증가했다. 한국에서는 4%포인트 늘었다.
동시에 AI에 대한 우려도 함께 증가했다. ‘AI를 활용하는 기업이 개인정보를 보호할 것’이라고 믿는 비율은 전년보다 3%포인트 감소했다. ‘AI가 특정 집단에 대해 차별하거나 편향되지 않을 것’이라 믿는 비율은 2%포인트 줄었다.
AI가 일상에 미칠 영향력에 대한 인식도 확산했다. ‘AI 기술이 향후 3~5년 안에 일상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2022년 대비 6%포인트 증가했다. 보고서는 2022년 11월 챗GPT 출시 이후 촉발된 AI 붐과 관련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AI 의료산업은 급성장 중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AI 의료기기가 2015년까지는 6개에서 2023년 223개로 늘었다. 보고서는 “AI로 생성된 합성 데이터는 건강의 사회적 결정 요인을 더 잘 식별한다”며 의료 분야에서 AI의 역할이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24년 출시된 RE-Bench의 AI 에이전트도 낙관론에 힘을 실었다. 작업 시간이 늘어날수록 인간이 더 높은 점수를 기록했지만 짧은 시간(2시간)에서는 AI가 인간보다 4배 높은 점수를 기록했다. 보고서는 “특정 작업에서는 AI 에이전트가 이미 인간 수준의 전문성을 갖추고 있어 효율적이다”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