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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지난달 서울 모처에서 음주 단속을 하는 모습. 기사 내용과는 상관 없음. 뉴스1
지난 2월 16일 서울 강남구에서 50대 여성 운전자가 차로 후진하다가 또 다른 차량과 접촉사고를 낸 일이 있었다.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목격자 증언에 따르면 사고 직후 해당 여성은 대화 상대방의 성별도 잘못 말할 정도로 횡설수설했고, 경찰의 현장 간이시약 검사에서 마약 양성 판정을 받았다. 이후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의 정밀 감정에서 여성은 향정신성의약품(향정)인 ‘클로나제팜’의 양성 반응을 보였다.

클로나제팜은 지난해 7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의료용 마약류’로 허가한 약물이다. 중추신경계의 흥분을 가라앉히기 때문에 뇌전증, 발작, 공황장애 등의 치료에 사용된다. 프로포폴, 펜타닐 등과 달리 의존증이나 환각 증세를 일으키지는 않는다. 하지만 과다복용하거나 컨디션이 저조할 때 복용하면 졸리고, 무기력증을 겪을 수 있다.

도로교통법상 술을 마시지 않았더라도 이렇게 약물의 영향으로 정상적인 운전을 할 수 없다면 운전을 해선 안 된다. 위반 시 인명피해를 일으키지 않았더라도 면허가 취소되고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을 수 있다. 해당 여성도 처방받은 클로나제팜을 복용한 데는 문제가 없었으나 경찰은 여성의 면허를 취소했고 도로교통법 위반(약물 운전)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면허취소, 3년 이하 징역형 처해질 수도
15일 경찰청에 따르면 약물 운전으로 운전면허가 취소된 건수는 2022년 80건에서 지난해 164건으로 2년 새 약 두배로 늘었다. 올 1~3월에도 면허가 20개 취소됐다. 지난해 동기(42개)와 비교하면 숫자가 작아 보일 수 있으나 아직 국과수의 정밀 감정 결과를 기다리는 사고가 있기 때문이라고 경찰은 설명한다. 실제로 지난 9일부터 이날까지 약 일주일 동안 국과수의 감정이 완료되면서 면허 5개가 추가로 취소됐다. 경찰 관계자는 “음주운전의 경우 경각심이 어느 정도 강해졌으나 약물 운전은 ‘의사 처방을 받았으니 괜찮겠지’란 안일함에 꾸준히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음주운전만큼이나 약물 운전도 위험하다. 2023년 서울 강남구 압구정에서 롤스로이스가 인도를 침범해 행인을 숨지게 한 사고도 20대 남성 운전자가 약물에 취해 벌인 일이었다. 수사 결과 해당 남성은 타인 명의를 도용하면서까지 수면유도제 등 향정을 상습 투약한 사실이 드러나 징역 2년을 추가로 선고받았다. 같은 해 제주에서도 20대 여성이 모친의 식욕억제제를 복용한 후 환각 증세를 일으켜 덤프트럭과 버스, 경찰차 등 6대를 들이받은 일이 있었다.

이렇게 비정상적인 방법이 아니라 의사의 정식 처방을 받고 약물을 복용했더라도 운전을 하면 위법이다. 2023년에는 한 간호사가 처방받은 수면제를 복용한 후 교통사고를 내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2023년 서울 강남구 압구정에서 벌어졌던 롤스로이스의 인도 침범 사고 현장. 운전자 20대 남성이 약물에 취해 벌인 일이었다. SBS 뉴스 캡처



검사 거부해도 처벌할 근거 없어
약물 운전은 음주운전과 달리 단속이 어렵다. 음주운전은 5초 안에 끝나지만 약물은 간이 검사도 약 15분이 소요된다. 음주 단속과 달리 검사를 강제, 거부 시 처벌할 근거도 없다. 지난해 11월 서울 강남에서 40대 남성이 약물 운전으로 한차례 교통사고를 낸 뒤 경찰의 검사 요구에 불응하고 다시 차를 몰다가 두 번째 사고를 일으킨 일이 있었다. 해당 남성은 현재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국회에는 약물 검사를 거부할 시 처벌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계류돼 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경찰관들은 의사·약사의 복약지도가 강화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경찰청 관계자는 “간이검사의 결과가 나오기까지 긴 시간이 걸리는데 길을 막고 검사할 수도 없고, 경찰이 운전자의 향정 복용 정보를 열람할 수도 없기 때문에 현재로써 약물 운전을 현장에서 단속할 뾰족한 수는 없다”며 “의료계가 ‘운전하면 안 된다’고 적극적으로 안내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교통사고 전문 정경일 변호사는 “음주운전 단속과 달리 운전자들이 약물운전 단속은 목격한 적이 없기 때문에 심각성을 모르고 운전을 할 수 있다”며 “하지만 사고가 한번 벌어지면 피해가 클 수 있으니 의사·약사가 복약지도 시 운전의 위험성을 충분히 경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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