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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상호관세 우선 협상국 지목
미 재무 “먼저 움직여야 이점” 압박
섣불리 속도 냈다가 국익 해칠 수도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이 14일(현재시각) 아르헨티나 경제부 청사를 나서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로이터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상호관세 협상에서 한국을 ‘우선 협상 대상국’으로 지목하면서 협상 타결을 재촉하고 나섰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등도 이에 발맞춰 조기 타결을 강조하면서, ‘관세 전쟁’을 벌였다가 궁지에 몰린 트럼프에게 탈출구만 열어주고 국익은 해치는 졸속 협상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미, 한국 협상판 들어오라 채근…스스로 들어가는 한덕수

관세 협상을 이끄는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14일(현지시각) 블룸버그 티브이 인터뷰에서 “지난주에는 베트남, 수요일에는 일본, 다음주에는 한국과 협상이 있다”며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일본이 ‘협상을 서두르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에 대한 질문에 “동맹국들은 먼저 움직이는 만큼 이점이 있을 것”이라며 “보통 거래를 처음 성사시키는 사람이 가장 좋은 조건을 얻는다”고 말했다. 앞서 미국 매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베선트가 한국·일본·인도·영국·오스트레일리아를 협상 타결의 ‘최우선 목표’로 삼았다고 보도했다.

한국 정부도 빠른 협상을 연일 강조하고 있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다음주 방미를 추진하고 있다. 한 권한대행은 전날 경제안보전략태스크포스 회의에서 “모든 분야에서 한·미가 협상 체계를 갖추고, 빠른 시일 내에 구체적인 내용을 도출하기 위한 협상을 시작할 것 같다”고 했다.

한국가스공사는 15일 액화천연가스(LNG) 개발과 관련해 미국 알래스카 주정부 쪽과 화상회의를 했다. 또 최남호 산업부 2차관은 한 강연에서 이 사업에 대해 “양국 간 실무 협상이 진행 중이며, 이를 위해 곧 (실무자들이) 알래스카 출장을 갈 계획”이라며 “자동차가 (관세 문제에서) 큰 혜택을 받을 수 있다면 (이 사업 참여는) 양보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도 말했다. 미국의 부름에 한국 정부가 적극 끌려들어가는 모양새다.

미국이 던진 알래스카 사업, 덥석 물기엔 위험 부담 커

미국 정부에 발맞춘 우리 정부의 협상 속도전은 자칫 미국이 전세계를 상대로 벌이는 관세 전쟁에서 성급한 결론으로 국익과 기업들의 이익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김양희 대구대 교수(경제학)는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의 관세정책이 확정됐느냐다”라며 “골대가 계속 움직이는데 볼이 어디를 겨냥하도록 놔둘지를 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트럼프의 정책이 수시로 급변하는 상황에서 협상을 서두르는 것은 실책이 될 것이라는 말이다. 김 교수는 우선 “미국이 뭘 하겠다는 건지, 뭘 원하는지를 알아내는 데 초점을 둬야 한다”고 했다.

짧은 기간 국정을 ‘대행’하는 체제가 장기적 국익이 걸리고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할 문제를 결정하는 것도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가 협상 카드로 언급한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 개발 사업을 두고 미국 전문가들은 약 1300㎞ 길이의 파이프라인과 수출 터미널 등의 설치에 5년 이상 걸릴 것으로 본다. 지금 사업을 개시해도 차차기 정부 때 천연가스 공급이 이뤄질 수 있고, 수익성은 그때 이후 에너지 시장 상황에 따를 수밖에 없다. 사업비가 440억달러(약 63조원)로 추산되는 이 사업은 최초로 석유가 발견된 시점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50년 동안 논의만 이뤄졌다. 트럼프 행정부 1기 때도 추진했지만 나서는 사업 주체가 없었다.

알래스카 사업 참여 논란에 대해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어차피 양 정상 간 이야기에서 액화천연가스 부분이 나왔기 때문에 검토는 안 할 수 없는 것”이라며 “섣불리 어떤 부분을 약속한다거나 국익에 위반되는 어떤 것을 의사 결정하는 단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 대행과는 온도 차가 있는 발언이다.


주력 수출품은 품목 보편관세 대상…협상 실익 희박

협상 실익이 얼마나 될지도 의문이다. 국책연구원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낸 ‘트럼프 2기 상호관세 조치의 주요 내용과 시사점’ 보고서를 보면, 미국이 대다수 무역 상대에게 일괄적으로 부과했거나 부과 예정인 보편·품목 관세 대상을 뺀 상호관세 대상은 한국의 지난해 수출액 기준으로 1315억달러 중 42%인 556억달러에 머문다. 반면 반도체·자동차·철강·전자제품 등 우리 수출의 주력 제품들은 상호관세 대상이 아닌 ‘보편 품목 관세’ 대상이거나 대상이 될 예정이다. 개별 국가 간 협상으로 세율을 낮출 수 없는 성질의 트럼프 관세에 우리 핵심 수출품이 걸려 있다는 뜻이다. 상호관세 역시 우리나라에 부과한 25% 세율 중 10%는 협상과 무관하게 적용되는 기본 관세라는 점도 협상의 실익을 크게 기대하기 어렵게 한다.

미 정부가 수시로 관세정책을 변경하는 등 오락가락하는 점도 협상 속도전에 우려가 나오는 또 다른 배경이다. 트럼프 쪽이 한·일을 묶어 거듭 거론하는 것도 한곳이라도 협상을 타결해 정치적 궁지에서 벗어나고 다른 국가들도 따르게 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한·일 등 동맹국들을 경쟁시키려는 모습에선 미 정부의 다급함도 읽힌다.

40년 전 일본의 패착 답습할까

장기적 시각으로 접근해야 하는 무역 관련 협상의 중요성은 일본이 1985년 미국의 압력에 굴해 맺은 플라자 합의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일본은 이후 급격한 엔화 평가절상을 했다가 ‘잃어버린 20년’으로 접어들었다. 아르헨티나를 방문 중인 베선트는 이번 인터뷰에서 상대에게 “최고의 제안을 가져오라고 하고 있다. ‘당신이 뭘 가져왔는지 보고 거기서부터 시작하겠다’고 말하고 있다”고 했다. 상대에게 줄 것은 제대로 제시하지 않은 채 무조건 높은 입찰가를 써내라는 식이다. 협상 타결을 서두르는 한국 정부도 미국이 짠 구도에 휘말릴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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