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명품 브랜드,
업황 악화 불구하고 실적 선방
사라진 고객 빈자리,
가격 인상으로 메우며 외형 확장
요즘 분위기가 좋은 산업이 없습니다. 상호 관세에 치이고, 내수 부진에 치이고…. 업황이 악화하면서 채용도 줄었습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분기 20대 후반(25~29세) 취업자 수는 1년 전보다 9만8000명 줄었습니다. 전년 대비 10만3000천명이 감소했던 2013년 3분기 다음으로 가장 큰 감소폭입니다. 코로나 때보다 더 안 좋다는 뜻이겠죠. 희망퇴직을 안 받는 곳은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업황 악화 불구하고 실적 선방
사라진 고객 빈자리,
가격 인상으로 메우며 외형 확장
명품 산업 역시 분위기가 안 좋았습니다. 2023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성장 둔화 조짐을 보였고, 지난해 불황이 시작됐다는 말이 많았습니다. 백화점만 가봐도 달라진 분위기를 느낄 수 있죠. 주말에도 웨이팅 없이 입장 가능한 명품 매장이 늘어났습니다. 신세계 강남점, 롯데 잠실점 등 매출 상위권 백화점도 예외는 아닙니다. 젊은 고객 비중이 높은 더현대서울은 평일 저녁에 사람이 없기로 유명합니다. 주말에는 지하 1~2층과 식당가만 유독 붐빕니다.
오픈런 열풍이 불던 2~3년 전과 180도 달라진 모습입니다. 한때 에르메스의 주가수익률(PER)은 인공지능(AI) 주식에 맞먹는 수준으로 치솟았고, 글로벌 명품 기업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를 이끄는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은 처음으로 미국 IT 기업의 수장들을 제치고 세계 최고 갑부 자리에 오르기도 했었죠. 2022년, 일각에서 산업의 성장 둔화 우려가 나오자 LVMH의 최고재무책임자(CFO)가 "명품은 일반 경제의 대리인이 아니다(Luxury is not a proxy for the general economy)"라고 발언했지만, 대중을 고객으로 삼는 산업이 일반 경제와 다른 길을 걸을 순 없었던 겁니다.
그래서, 지난해 사업 성과가 나오는 4월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글로벌 명품 브랜드는 외감법(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에 따라 대부분 4월에 감사보고서를 공개하기 때문이죠. 주요 명품 브랜드는 물론이며 대부분의 매출이 줄었거나 수익성이 악화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과는 '대반전'이었습니다. 오히려 매출이 늘었더군요. 에르메스코리아 실적을 볼까요. 지난해 매출은 9643억원, 영업이익은 2667억원입니다. 영업이익률은 27.6%입니다. 전년 대비 매출은 21% 늘었고, 영업이익은 13.2% 증가했습니다.
루이비통코리아 실적을 볼까요? 매출은 1조7484억원, 영업이익은 3891억원. 매출은 5.9% 늘었고, 영업이익은 35.7% 급증했습니다. 샤넬코리아의 매출은 전년 대비 8.3% 증가한 1조8446억원이며, 영업이익은 지난해와 비슷한 2695억원을 냈습니다.
에루샤만 그럴까요? 아닙니다. 펜디코리아의 매출은 전년 대비 22.0% 줄어든 1188억원을 기록했지만 영업이익은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하며 36억원을 써냈습니다. 로에베는 반대입니다. 로에베코리아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조금 줄었지만 매출은 341억원에서 421억원으로 늘었습니다. 셀린느코리아는 지난해와 비슷한 매출 3033억원에, 영업이익은 18.0% 늘어난 201억원을 기록했습니다. 프라다코리아도 매출은 늘었습니다.
굵직한 브랜드 가운데 유일하게 실적이 고꾸라진 것은 디올입니다. 크리스챤디올꾸뛰르코리아는 지난해 9454억원의 매출과 2266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습니다. 매출은 9.6%, 영업이익은 27.4% 급감한 겁니다.
결론만 말하자면 이 어려운 시기에도 주요 브랜드들은 외형 확장에 성공하거나 수익성 개선을 해냈다는 겁니다. '선방'한 겁니다. 특히, 외형 확장을 의미하는 '매출 성장'에 성공했다는 게 놀라운 일입니다. 꾸준히 언급돼온 '명품산업 침체기' 우려와 달리 수요가 여전히 살아있다는 뜻으로도 해석되니까요.
이들의 성과가 불황을 이겨낼 만큼 명품의 가치가 인정받았기 때문일까요? 고객들이 브랜드의 역사와 전통을 좋아하고, 제품의 퀄리티를 인정해 경기 침체 우려에도 돈을 썼다는 의미일까요?
아니라고 봅니다. 명품 브랜드들은 매년 수차례에 걸쳐 가격 인상을 단행해 왔습니다. 샤넬은 매년 2~4차례씩 가격 인상을 이어왔습니다. 지난해 1월, 3월, 8월 등 세차례에 걸쳐 가격을 인상했습니다. 2021년부터 최근까지 총 11번의 가격 인상 결정을 내렸다. 샤넬이 본격적으로 출고가를 조정하기 시작한 2021년부터 최근까지 몇 번 가격 인상을 한 줄 아시나요? 무려 14번입니다.
통상 연 1회 가격 인상만 이어오던 에르메스조차 지난해에는 2번에 걸쳐 가격을 올렸고요. 루이비통도 2월과 7월 등 2번 가격을 인상했습니다. 이외에도 디올, 구찌, 펜디, 셀린느 등이 최소 1회 이상의 가격 인상을 단행했습니다. 결국, 사라진 고객들을 가격 인상으로 메우는 겁니다. 즉, 두사람 몫을 한 사람에게 부담하는 셈이죠. 충성도 높은 고객들의 부담은 더 커지는 거고요. 올해는 또 이탈 고객들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얼마나 가격을 올릴지 벌써 우려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