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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지역에 땅을 미리 사둡니다. 개발이 시작됩니다. 사업을 반대합니다. 보상금을 줘야 나가겠다고 버팁니다. 그리고 결국…

누군가 부자가 됐다더라는 전언, 적어도 한두 번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속칭 '알박기'입니다.

알을 미리 낳아놓고 자리를 차지한다는 의미로, 주변이 바뀌어도 꿈쩍도 않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최근 입길에 올랐던 대표적 사례가 전광훈 목사의 '사랑제일교회'입니다. 서울 성북구 장위10구역에서 거액의 보상금을 요구하며 철거를 거부했고, 사업은 10년 가까이 지연됐습니다.

그런데, 알박기 논란 부동산만일까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사외이사' 제도에도 이런 문제가 숨어 있었습니다.


■ 14년째 일편단심…왜?

현대홈쇼핑은 2012년 세무조사를 받습니다. 그해 말쯤 부가세 5백40억여 원이 추징됩니다.

세무조사가 진행됐을 무렵, 회사는 전직 지방국세청장 A 씨를 사외이사로 선임합니다.

현대홈쇼핑은 과세가 부당하다며 적부심사를 냅니다. 1년여의 심사 끝에 추징금은 7억 원으로 줄어듭니다.

이후 현대홈쇼핑에는 눈에 띄는 흐름이 생깁니다. 마치 할당이라도 한 듯, 국세청 출신 인사를 고정적으로 사외이사로 선임한 겁니다.


올해까지 14년째, 일편단심입니다. 사외이사 3~4명 중 국세청 출신만 고정입니다. 마치 알박기처럼 말입니다. 같은 기간 다른 사외이사들은 변호사, 교수, 공무원 등 출신 경력이 수시로 바뀌었습니다.

■ 30대 그룹 탈탈 털어보니...

이게 한 회사만의 문제일까.

KBS는 30대 그룹 상장사 290여 곳의 사외이사 850여 명을 모두 분석했습니다.

선임 시기, 출신, 성별, 임명 사유까지 모두 조사했습니다.

보통 3년인 사외이사 임기를 3회 연속(총 9년) 국세청 전관이 꿰찬 기업들만 추렸습니다 현대자동차그룹 2곳·신세계 그룹 2곳·현대백화점그룹 3곳 확인됐습니다.


정상적인 선임 절차를 거쳤으니 불법은 아닙니다. 국세청 출신의 사외이사들이 특별한 문제적 행위를 했는지도 확인되진 않습니다.

다만, 이들 기업은 왜 유독 많고 많은 기관 중 국세청 출신 인사를 선호했을까요. 직접 물었습니다.

"계열사 13곳이 상장돼 있어 회계 전문 사외이사 수요가 많다"
"이해충돌을 피하려 주요 회계법인을 배제하다 보니 국세청 출신이 많아졌다"
[현대백화점 그룹 계열사 관계자]

"정책적 차원의 전문성이 높은 공공부문 출신의 사외이사를 선임한 것"
[신세계 그룹 계열사 관계자]

국세청 출신 전관이 세무나 회계에 전문적이니, 사외이사로 적임이라는 설명입니다. 쉽게 말해, '스펙'이 좋으니 사외이사로 뽑았다는 얘기입니다.

사외이사 중 1명이 감사위원 역할도 해야하는 점을 감안하면, 세무나 회계에 밝은 이가 적어도 1명 이상은 필요하다는 건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닙니다.

사외이사 본인들도 선임 배경에 대해 같은 생각일까? 역시 직접 물었습니다.

"내 후임자와 국세청 있을 때 같이 일한 적 있긴 하지, 그런데 나는 그 사람이 사외이사 후임으로 오는지는 몰랐어. 아무래도 국세청 출신들이 재무제표도 잘 보고 하니까."
[A 씨 / 현대백화점 계열사 전 사외이사]

"국세청 출신 사외이사가 기업 뒤를 봐준다? 그건 불가능합니다"
[B 씨/ 현대백화점 계열사 전 사외이사]

"사외 이사와 관련해서는 아무 말도 해줄 수 없습니다"
[C 씨/현대백화점 계열사 현 사외이사]

이외 상당수는 자신의 후임자로 같은 회사인 국세청 출신 인물이 온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다고 설명했습니다.

■ 몰랐다? 본인이 추천해놓고…

그런데, 사외이사를 선임하는 절차를 들여다보면, 고개가 갸웃해집니다.

사외이사 후보는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사추위)를 통해 정해집니다.

상법에 따라 회사는 사추위를 설치해야합니다. 이 사추위에는 누가 들어갈까요. 기존 사외이사가 참여합니다.

선배 사외이사가 후배 사외이사 후보를 고르는 구조인 겁니다. 그런데도 몰랐다고 합니다.

"본인이 참여하는 사추위를 통해 후보를 선정해놓고, 국세청 동료가 후임자로 오는 지 몰랐다는 말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박주근 /리더스인덱스 대표]


■ "국세청이 유독 끈끈합니다"

국세청 출신 전관들이 사외이사 자리를 알박기하듯 차지하는 현실, 진짜 배경은 무엇일까요?

오랜 기간 기업의 경영 구조와 사외이사 제도를 연구한 전문가는 이렇게 분석했습니다.

"국세청은 굉장히 폐쇄적인 조직입니다. OB(퇴직자)와 YB(현직자) 사이에 유대감도 끈끈합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국세청 출신 사외이사를 통해 국세청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기대를 하는 거죠"

"국세청 출신 임원 입장에서도 고액 연봉의 사외이사를 거절할 이유가 있나요 . 또 후배들은 나중에 선배처럼 사외이사로 갈 수 있겠다는 기대까지 하게 되는 것이죠"

[박상인/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사외이사가 주주의 이익을 지키라고 있는 자리인지, 특정 부처 출신의 전관 이익을 지키기 위해 있는 제도인지 헷갈려집니다.

올해로 도입된 지 28년째지만, 아직도 이런 논란이 반복되는 점이 씁쓸합니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기업 오너(대주주)의 말에는 "무조건 오케이!"를 외치는 거수기 논란부터…

기업의 일감을 받는 밀접한 로펌 소속 인사들을 사외이사로 선임하는 '이해충돌' 문제까지.

KBS는 연속 기획 <한국 주식 괜찮습니까>를 통해 삐그덕 거리는 사외이사 제도를 낱낱이 분석했습니다.

[뉴스9] ‘알박기’에 ‘이해충돌’까지…망가진 사외이사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212317
[뉴스9] 3.6조 유상증자 ‘반나절’ 만에 찬성…사외이사가 일하는 법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214891
“회장님은 주인 의식 많은 분” 누구의 말일까요?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226569
“참을 인 세 번? 뭐하러?” 소액주주가 달라졌다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226165
KBS 연속기획 ‘한국 주식 괜찮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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