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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연경 엘지(LG)복지재단 대표가 13일 오후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상속회복청구 소송 관련 입장을 밝히고 있다. 김혜윤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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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에서 ‘재벌 가족’이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경제의 중심인 대기업 집단을 일군 혈연 공동체이자, 대를 이은 승계에서 그룹 지배권과 경영권을 놓고 다투는 경쟁자라는 점에서다.

재벌 가족의 재산 분쟁은 사적 갈등을 넘어 공적인 문제로 여겨진다. 분쟁의 향배는 그룹 지배구조와 주주·노동자·지역사회 등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치는 까닭이다. 지난해 이혼 소송 2심 선고의 당사자였던 최태원 에스케이(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일제히 “국민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고개 숙인 이유다.

올해는 4대그룹 중 하나인 엘지(LG)그룹 구씨 일가의 분쟁이 재계를 흔드는 ‘태풍의 눈’이 될 공산이 크다. 구광모 엘지그룹 회장과 그를 겨냥한 모녀 가족들의 2조원대 상속 소송 1심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돼서다. 한겨레는 최근 소송 당사자인 구연경 엘지복지재단 대표(이하 연경씨)와 하범종 ㈜엘지 사장(경영지원부문장) 등 엘지 고위 임원들을 연이어 접촉했다. 연경씨가 언론을 직접 만난 건 최초다. 양쪽 주장의 명분과 쟁점을 짚었다.

엘지가에 무슨 일이?

구인회 창업회장(1대)·구자경 명예회장(2대)·구본무 선대회장(3대)·구광모 회장(4대)으로 4대째 이어진 엘지그룹 총수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가부장적 가풍에 따라 대대로 구씨 일가의 장자가 경영권을 물려받았다는 점이다. 고 구본무 회장은 1994년 친아들 원모씨를 사고로 잃자 2004년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친자인 구 회장을 양자(장남)로 입양했다.

2023년 2월 구 회장을 상대로 상속회복청구 소송을 낸 김영식 여사는 양자를 맞은 어머니, 연경씨와 동생 연수씨는 구 회장의 동생들이다. 이례적으로 2년 넘게 진행 중인 이 민사 소송은 오는 22일 올해 첫 변론준비기일(본격적인 변론에 앞서 재판의 쟁점과 증거를 정리하는 기일)이 열린다.

연경씨는 “(가문의) 전통이 법보다 앞서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2018년 5월 세상을 떠난 고 구본무 회장은 ㈜엘지 지분 11.28%를 포함한 재산 2조176억원을 남겼다. 이중 당시 상무였던 구 회장이 그룹 지배력 승계의 핵심인 ㈜엘지 지분 8.76%를 물려받았다. 세 모녀는 ㈜엘지 주식 일부(연경씨 2.01%, 연수씨 0.51%)와 부동산·금융상품·미술품 등 4950억원 규모의 재산을 상속받았다. 민법상 상속 비율(배우자 1.5, 자녀 1명당 1)과 무관하게 경영권 재산을 구 회장에게 몰아준 셈이다.

모녀들은 ‘장자 승계’라는 집안의 규범을 앞세운 구 회장 쪽에 속아서 2018년 10월 재산 분할에 합의한 것인 만큼, 법적 기준에 따라 유산을 다시 나누자고 주장한다.


‘유언장의 부재’로 싹튼 불신

소송의 중심엔 고 구본무 회장의 ‘유언’이 있다. 총수 일가 재산을 관리하는 금고지기로 통하는 하 사장 등 엘지그룹 재무팀(옛 재무관리팀)은 “고 구본무 회장은 유언장을 남기지 않았고, 대신 병상에서 그의 유지(고인의 뜻)를 받아 적은 메모만 존재한다”며 “김영식 여사가 이 메모를 봤고 모녀들도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반론을 제기한다.

고 구본무 회장 와병 당시 그의 유지(고인의 뜻)를 직접 들은 건 하 사장뿐이다. 구 회장과 세 모녀 등 가족들은 병실 밖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하 사장이 옮겨 적은 재산 분할의 핵심 근거인 유지 메모는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엘지 쪽은 “과거 수사기관 수사 등을 겪으며 서류를 일정 기간 지나면 폐기해온 터라 유지 메모 역시 상속이 마무리된 뒤 폐기했다”며 “모녀들이 당시 재산 분할에 직접 합의해놓고 뒤늦게 딴소리를 한다”고 강조한다. 실제 상속의 잣대가 된 ‘상속재산 분할 협의서’(상속 협의서)엔 연경씨 등의 인감 날인이 돼 있다.

모녀들의 주장은 정반대다. 연경씨는 “하 사장은 아빠의 유지가 광모(연경씨는 동갑인 구 회장을 ‘광모’라 부름)가 승계하는 것이라며 엄마(김영식 여사)가 받을 ㈜엘지 지분을 다 포기하고 광모에게 줘야 한다고 했다”면서 “처음엔 유언장이 있다고 했다가, 나중엔 승계 메모와 쪽지라고 하고, 이조차 파쇄했다며 말을 계속 바꿨다”고 말했다.

관건은 고 구본무 회장 사망 직후인 2018년 말 구 회장과 모녀들이 작성한 상속 협의서의 적법성이다. 이 합의가 하자 있는 ‘무효’라는 걸 연경씨 쪽이 증거로 뒷받침해야 한다는 뜻이다. 양쪽이 가족 사이에 오간 문자와 편지·녹취록 등을 내밀며 법정 공방을 펼치는 배경이다.

재벌들의 독특한 가족주주 재산 운용

눈길을 끄는 건, 소송 과정에서 드러난 재벌 가족들의 독특한 재산 운용 방식이다. 예컨대 구 회장과 그룹 재무팀은 구 회장이 물려받은 ㈜엘지 지분이 총수 일가로 구성된 ‘가족 주주단’이 구 회장에게 의결권 행사를 위임한 경영권 유지 목적의 재산이라는 주장을 편다. 가족 기업의 승계자인 장자를 위한 가문의 공동 재산인 만큼 쪼개서 나눠가질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논리다.

그룹 재무팀은 가족 주주들의 인감 등을 받아 재산을 대신 관리하며 배당금 배분·세금 납부·운용 등을 대리하고, 총수의 지배력 유지를 떠받치는 버팀목 구실을 한다. 과거엔 고 구본무 회장이 연 1회 주주단 회의를 열어 가족 주주들에게 현금으로 배당금 일부를 주기도 했다. 모녀들이 상속 재산 분할 합의 4년여 만에 뒤늦게 소송을 제기한 것도 이처럼 관행적인 위임·위탁 구조가 불합리하다고 여겼기 때문으로 보인다.

연경씨는 “2021년 말 백화점에서 친구 결혼 선물을 사기 위해 할인 혜택이 있는 신용카드를 만드는 과정에서 나도 모르는 주식담보대출이 있다는 걸 알게 됐고, 발급이 거절됐다”면서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해 그때부터 저와 엄마, 동생 계좌 수십 개를 확인하며 이상한 출금 내역을 보고 마지막으로 (㈜엘지 재무팀에) 상속 협의서를 보고 싶다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대출은 상속세 납부를 위해 그룹 재무팀이 설정한 것이었는데, 연경씨는 이를 몰랐다고 항변한다. 채무 총액이 많으면 카드 발급은 거절된다. 이에 대해 엘지 재무팀은 담보 설정과 관련해 연경씨에게 사전 보고했다고 맞서고 있다.

구연경 엘지(LG)복지재단 대표가 13일 오후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상속회복청구 소송 관련 입장을 밝히고 있다. 김혜윤 기자 [email protected]

능력검증 없는 유교식 승계, 취약성 드러나



이번 재판 결과에 따라 엘지그룹 총수인 구 회장의 지배력이 약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재 그룹을 지배하는 핵심 회사인 ㈜엘지의 개인 최대주주는 구 회장(지난해 말 기준 15.95%)이다. 그러나 연경씨와 연수씨 등 구 회장 친인척 24명도 지분 21.79%를 각각 나눠갖고 있다. 세 모녀가 승소하거나 친·인척 일부가 이들을 지지하고 나서면 구 회장의 그룹 지배력도 흔들릴 수 있다는 의미다.

양쪽의 명분 싸움도 치열하다. 엘지그룹 쪽은 “세 모녀가 고 구본무 회장의 사위인 윤관 블루런벤처스 대표와 함께 구씨 가문이 일군 엘지그룹 경영권을 빼앗아가려 한다”며 지배권 침탈론을 편다. 반면 연경씨는 “제가 경영을 하겠다고 말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맞받으며, 장자 중심의 승계라는 엘지 가문의 전통이 불합리하다는 주장을 편다. 김영식 여사는 지난해 11월 구 회장을 상대로 기존 입양 관계를 해소하는 소송을 낸 상태다.

구 회장은 2004년 엘지그룹 총수 가문의 제사를 맡아지낼 장자로 입양돼 14년 만인 2018년 만 40살에 그룹 회장에 올랐다. 가문 내 불화를 초래하지 않을 선한 인품을 가진 남성이라는 점이 그룹 후계자로 낙점된 핵심 이유였다는 게 엘지 쪽 인사들이 내놓는 설명이다. 재벌그룹 엘지에서 벌어지는 가족 간 다툼은 이처럼 취약한 기반과 터전을 가진 기존 재벌의 전통적 승계 방식이 시대 변화에 따라 거센 도전에 직면했다는 걸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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