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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정권 말 고질병으로 여겨지던 ‘알박기 인사’가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으로 빚어진 권력 공백 상황에도 어김없이 반복되고 있다. 윤석열 집권에 기여했거나 정권과 우호 관계를 유지해온 이들을 새 정부가 들어서기 전에 임기가 보장되는 권력기관이나 공공기관 고위직에 내려꽂기 위해 온갖 무리수가 동원된다. ‘대통령의 내란’으로 초래된 헌정 위기가 가까스로 수습되는 국면이란 점에서, 최근의 ‘알박기 인사’는 사실상의 ‘내란 연장’ 시도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알박기 금도’마저 깬 ‘한덕수의 난’

논란의 정점은 지난 8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헌법재판소가 파면한 윤 전 대통령의 측근인 이완규 법제처장을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지명한 일이었다.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주어진 ‘현상 유지적 권한 행사’의 범위를 넘어선 위헌적 행위라는 비판이 거셌다. 지난달 26일 ‘2인 체제’ 방송통신위원회를 이끄는 이진숙 위원장이 안팎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문화방송(MBC) 아나운서 출신 신동호씨를 신임 교육방송(EBS) 사장으로 임명한 것도 몰염치한 권한 남용이란 비판에 직면했다.

‘정권 차원 보은 인사’로 여겨지는 공공기관의 임원 인사도 집중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14일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를 보면, 12·3 비상계엄 하루 뒤인 지난해 12월4일부터 지난 4월11일 사이에 공시된 공공기관 임원 모집 공고는 모두 101건이다. 헌법기관과 권력기구, 공영방송 등의 고위직뿐 아니라, 정부 산하 공공기관의 대표, 상임이사, 감사직도 최종 임명권자가 바뀌기 전 서둘러 자리를 선점하려는 ‘구정권’의 주변 인물들이 경쟁적으로 몰려드는 탓이다.

대통령이 탄핵당한 권한대행 정부에서 ‘알박기 인사’가 여전히 횡행하는 데는 전임 윤석열 정권의 특수성이 자리잡고 있다. 임기를 3년밖에 채우지 못한 채 중도 하차하면서 미처 실행에 옮기지 못한 ‘보은 인사’의 수요가 많았던데다, 대통령이 스스로 내란죄 피고인이 되면서, 새 정권이 들어설 경우 ‘단죄와 청산’의 범위가 어디까지 확대될지 누구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일관된 발탁 기준, ‘정치 성향’과 ‘충성심’

최근 기관장에 선임되거나 내정설이 나돈 인사들을 보면, 대부분 윤석열 정권 출범에 기여했거나, 출범 뒤 대통령실에서 윤 전 대통령과 손발을 맞춰온 참모진, 국회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장 등 선출 공직 진출에 실패한 정권 주변 인사들이다. 이들이 진입을 희망하는 자리는 전임자의 총선 출마나 임기 만료 등으로 공석이 된 곳으로, 이들의 발탁 기준 역시 ‘전문성’과 ‘유관 경력’보다는 ‘정치 성향’과 정권에 대한 ‘충성심’이다.

대통령 탄핵심판이 진행 중이던 올해 초 경찰 인사에서는 ‘용산 출신 친윤 경찰’들이 대거 영전했다. 윤석열 정부 3년 동안 3계급 ‘초고속 승진’을 박현수 서울경찰청장 직무대리 임명이 대표적이다. 대통령 국정상황실에 파견됐던 남제현 치안감을 비롯해, ‘세관 마약 수사 외압’ 논란에 연루됐던 김찬수 대통령실 행정관, ‘채 상병 사망 수사 외압’ 연루 의혹을 받는 박종현 행정관 등도 무사히 진급했다.

지난달 17일 임기가 시작된 여성가족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원장에는 지난해 총선 당시 서울 중랑갑에 국민의힘 후보로 출마했다 낙선한 김삼화 전 의원이 임명됐다. 초대 양육비이행관리원장에는 대통령실 행정관 출신이자 지난해 총선에서 경기 구리시에 국민의힘 예비후보로 나섰던 전지현 변호사가 선임됐다. 앞서 1월20일에는 최춘식 전 국민의힘 의원이 한국석유관리원 이사장으로 취임했고, 대선 당시 윤석열 캠프에서 활동한 이주수 전 서울농수산식품공사 이사회 의장은 2월4일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 대표이사에 임명됐다.

임기 안 끝난 대통령기록관장을 왜?

대통령기록관장 인사는 정치적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난 경우다. 윤 전 대통령 파면으로 대통령기록물 이관 등 중요 업무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현직 기록관장의 임기가 끝나기도 전에 후임자 인선 절차가 진행된 것이다. 대통령기록물 사정에 밝은 이들 사이에선 새 기록관장이 올 경우 비상계엄 관련 기록물의 유출이나 봉인 우려까지 제기한다. 행정안전부가 진행 중인 새 대통령기록관장 선임 절차는 최종 후보자 2명 가운데 1명이 윤석열 정권 임기 내내 대통령비서실에서 기록 담당자로 일한 행정관 출신이다. 심성보 전 대통령기록관장은 14일 “계엄 당시 대통령실 상황을 잘 아는 인물이 대통령기록관장이 되면, 어떤 기록을 숨겨야 하는지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제도를 악용해 기록물을 온전히 이관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감사원의 지난 4일 전보 인사는 ‘과거 청산 발목잡기’ 성격이 짙다. 장난주 국민제안감사1국장을 경기도 파주시에 있는 감사교육원 교수직에 발령했는데, 장 국장은 감사원이 애초 벌였던 대통령 관저 감사가 부실 논란에 휩싸인 뒤 국회 요구로 재감사가 실시되면서 투입된 실무책임자였다. 감사원에선 “감사청구 업무의 실무 경험과 전문성을 가진 가장 적합한 인사를 신임 국장으로 발령한 정당한 인사권 행사의 일환”이라고 강조했지만, 관저 부실 감사 논란 등으로 탄핵당했던 최재해 감사원장이 복귀 직후 시행한 인사라는 점에서 ‘보복 인사’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최소한의 ‘염치’와 ‘절제’마저 실종

영화계 역시 예외는 아니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대통령 탄핵심판이 진행 중이던 지난 1월6일 영화진흥위원회 신임 위원 6명을 임명했는데, 영화계 현장과 유리된 교수와 투자 전문가 등이 대다수였다. 문체부 산하 한국관광공사, 한국콘텐츠진흥원, 국립국악원과 인천국제공항공사 산하 인천공항보안도 기관장 공모 절차를 진행 중이다.

논란이 커지며 정권 말기나 권력 공백기에는 필수불가결한 인사가 아니면 자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권한대행 체제 정부에서 이를 중단하거나 보류하려는 분위기는 감지되지 않는다.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되고 ‘내란 정권’ 종사자들 사이에서 ‘정권교체 이후’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며 ‘절제’나 ‘염치’라는 심리기제가 작동할 여지가 사라져버린 탓이다. 문제는 이런 행태가 공적 기관의 정상 작동을 어렵게 하고, 조직에 장기적이고 심각한 후유증을 남긴다는 데 있다.

윤석열 정권이 주어진 5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3년도 안 돼 몰락하면서 미뤄온 보은 인사의 수요가 한꺼번에 몰린 특수성도 있다. 김철 사회공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재는 각 기관 임원 추천위원회나 공공기관 운영위원회 등을 윤석열 정권 친화적인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차기 정권에 넘겨야 한다는 고려 없이 막무가내로 절차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정권 임기-기관장 임기 일치가 답일까?

더불어민주당은 ‘정권 말기 알박기 인사’ 방지를 위해 대통령 임기와 공공기관장의 임기를 일치시키는 ‘공공기관 운영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공공기관장의 임기를 일괄적으로 정권 임기에 맞추는 건 과도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철 위원은 “업무의 특성상 정권 임기와 무관하게 기관장 임기를 보장해야 하는 공공기관도 있다. 기관 특성을 반영해 공공기관 운영법을 전면 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부)는 “인사권은 임명권자의 재량인 만큼 일일이 제도적인 통제가 어렵지만, 정말 일해야 하는 자리만큼은 정권이 바뀌어도 건드리지 않는다는 암묵적 관행이나 정치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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