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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꾼’들이 있다
태양광 비리, 시민 공익 감사 청구로 수사
브로커, 뇌물 수수 대상자로 신영대 지목
검찰, 여론조사 조작 증거 휴대폰 등 확보
뇌물 수수 및 선거법 위반 혐의 재판 진행

편집자주

의심은 가는데 확신은 할 수 없다. 수상한 여론조사 얘기다. 민심의 바로미터라던 여론조사는 불법계엄 사태 이후 미심쩍은 결과물로 신뢰성에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과연 여론조사는 조작이 가능한 것일까. 한국일보는 지난 두 달 여론조사 시장의 실태를 파헤치며 정치권과 조사기관의 불법 편법 공생 관계를 확인해봤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지는 21대 대통령 선거가 6월 3일로 확정된 지금, 각종 여론조사의 결과를 다시금 경계하고 조사 이면을 냉철하게 들여다볼 때다.
2018년 전북 군산에서 열린 '새만금 재생에너지 비전 선포식'. 검찰은 태양광 사업 인허가 과정에서 신영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뇌물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해 4월, 전북 군산이 술렁였다.
전 군산시민발전주식회사(시민발전) 대표 서모씨가 전격
구속됐다
. 시민발전은 시민에게 태양광 사업 이익을 돌려주겠다며 군산시가 100억 원을 투자해 만든 특수목적법인(SPC). 서씨는 '새만금 태양광 발전사업' 민원 해결 청탁을 이유로 한국수력원자력 관계자로부터 1억 원을 받은 혐의를 받았다.

서씨는 군산에서 '나는 새'로 통했다. 강임준 시장의 오른팔이란 말이 돌 정도였다. 농업이나 안경점 운영 등 에너지 사업과 하등 관계없는 경력으로 2020년 6월 시민발전 대표 자리에 올랐고, 그 자체가 등등한 위세의 방증이었다.

정치권에선 힘 있는 '선거꾼' 중 한 명이기도 했다
. 강 시장 고교(군산고) 후배로, 2018년 지방선거에서 강 시장 선거를 도우며 성장했다. 2022년 지방선거 때는 전직 전북도의원에게 금품을 제공한 혐의로 시민발전 대표에서 물러났다. 사퇴 후에도 그는 태양광 사업 관련 행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며 영향력을 과시했다.

'
꾼'인 서씨의 '커넥션'은 우연히 드러났다.
검찰 조사에서 뜻밖의 이름을 털어놓으면서다. 강 시장과 함께 군산의 양대 권력으로 꼽히는 신영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뇌물 수수 대상자로 지목한 것이다. 서씨는 "신 의원에게 1억 원 가운데 3,000만 원을 줬고, 신 의원 지시로 남은 돈은 선거캠프 관계자들과 나눴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서씨 진술에 따라 신 의원의 지역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했는데, 여기서 100대 넘는 휴대폰 뭉텅이가 발견됐다.

태양광 비리 캐다 발견한 무더기 휴대폰



그 많은 휴대폰을 어디에 사용했을까.
2023년 11월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22대 총선을 다섯 달 앞두고 각 당은 경선 준비에 한창이었다. 신 의원은 전북 군산·김제·부안갑에서 재선 도전을 선언했다. 경쟁 상대는 김의겸 전 의원이었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대변인 출신답게 지역민 인지도가 높았다. 민주당은 여론조사 경선을 예고했다. 신 의원에겐 당의 결정이 반갑지 않았다.

신 의원 캠프가 강구한 건 '차명 휴대폰'이었다. 지지율이 김 전 의원보다 높아야 했다. 전현직 보좌관과 선거사무장이 모여, 여론조사 전화에 '신영대 지지' 버튼을 눌러 지지율을 높이자고 뜻을 모았다. 캠프 관계자들은 2023년 11월부터 12월 중순까지 휴대폰 중개상에게 현금 1,300만 원을 주고 중고폰 240대를 구입했다. 태양광 비리로 시작한 수사는 그렇게 여론조사 조작으로 확대가 됐다.

태양광 비리 의혹을 수사하던 검찰이 신영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휴대폰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사진은 연출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지방은 '브로커 놀이터'



한국일보는 지난 두 달간 여야 정치권을 비롯해 여론조사업, 선거 컨설팅업, 시민단체, 군소 언론사 등 종사자 40여 명을 만나, 선거 카르텔이 형성되는 과정을 추적했다. 관련 사건에 대한 판결문 30여 건도 함께 분석했다. 그 결과 크고 작은 여론조사 왜곡 시도가 은밀하게 벌어지고, 선거를 중심으로 한 이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압도적 지지 정당에 견제 세력을 찾기 어렵고, 혈연·지연·학연으로 똘똘 뭉친 지방일수록 현상은 심각했다.
'국회의원-시장(군수)-시의원(군의원)-브로커'가 쌓아놓은 성이 높고 견고해질수록
그늘 또한 짙을 수밖에 없었다.


신 의원 사례도 여러 꾼들의 이해관계가 빚어낸 결과다. 검찰은 공소장에 조직적인 여론조사 조작의 정황을 적시했다. 이에 따르면, 신 의원 캠프 관계자들은 지인이나 가족들에게 차명 휴대폰을 나눠주고, '총선 승리 핵심리더
모임' '총선 승리 시도의원
모임방' 등의 카카오톡방으로 사람을 모았다. '여론조사 전화가 오면 신 의원을 지지한다고 응답하라'는 구체적인 지시도 내렸다.


카톡방에는 신 의원도 있었다. "여론조사회사 꽃에서 돌리고 있다. 언론 발표 가능한 조사다. 적극 대응 바란다"고 독려했고, 카톡방의 여론조사 참여 답변에는 감사를 표했다. 보좌관 A씨는 "20대남(男) 여론조사 마감됐다. 참고해서 대응해 달라"며 허위 응답을 지시했다. 선거여론조사는 세대별로 표본 할당량을 채워 진행하는데, 20대 남성 표본은 마감됐으니 다른 나이와 성별로 응답하라고 권유한 것이다. 40대 여성 참여자는 실제 "저 받았어요^^ 20대 수송동 여자로 했습니다^^"라는 답을 남겼다.




신영대 의원과 선거 캠프 관계자들이 나눈 대화를 재구성했다. 그래픽=김대훈 기자 신영대 의원과 선거 캠프 관계자들이 나눈 대화를 재구성했다. 그래픽=김대훈 기자


휴대폰 뿌리고 카톡방 운영하고



그렇다면 휴대폰을 대거 개통하고, 카톡방에서 허위 응답을 독려하는 행위로 여론조사 결과를 바꿀 수 있을까. 서울북부지법은 지난달 관련 1심 재판 선고에서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군산의 유권자는 약 20만 명. 민주당의 경선 여론조사는 통신사로부터 5만 명의 가상번호를 받아 1,000명이 응답하면 조사를 마친다. 통상 경선 여론조사 응답률이 3~5%이기 때문에 전화를 받는 사람은 최대 2,500명이다.

재판부는 신 의원 캠프가 만든 단톡방에 주목했다. 참여자들은 이미 조사가 끝난 지역·성별·연령에 대한 정보를 정확하게 주고받았다. 신 의원 선거사무장이 "여론조사가 있는 날엔 다른 일은 아예 하지 않고 여론조사 전화를 받는 데만 집중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점도 감안했다.
재판부는 "선거 캠프에서 암묵적인 합의하에 여론조사에 대응하는 방식이 있었고, 여론조사 중요성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신 의원도 부분 범행에 가담했다"고 했다.



반복된 여론조작 시도도 또 다른 판단의 근거
다. 신 의원 캠프의 '총선 승리 핵심리더 모임' 멤버이자 휴대폰 100대를 갖고 있다가 적발된 브로커 A씨는 검찰 조사에서 "2018년 지방선거와 21대 총선 때도 같은 수법으로 여론조사에 대응했기 때문에 22대 총선 카톡방 참가자에게 다시 교육을 할 필요가 없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휴대전화 개통 자금을 조달했던 전직 보좌관 정모씨도 2018년 지방선거 군산시장 경선에서 유사한 방식의 여론조작 범죄로 처벌을 받았다.





선거 때마다 썼던 수법… 꼬리 밟혔다

지난해 11월 28일, 구속영장이 청구된 신영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체포동의안에 대한 억울함과 부결을 호소하고 있다. 체포 동의안은 찬성 93표, 반대 197표, 기권 5표로 부결됐다. 한국일보 다큐멘터리 오리지널 캡처


흥미로운 건 사건을 바라보는 정치권의 시선이다. 대구·경북에서 3선을 한 전 국민의힘 의원은 "휴대폰을 수백 대 개통하려면 돈도 많이 들고 정성이 많이 필요한 일이 아니냐"면서 "그 정도로 노력하면 충분히 당선될 만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불법을 '노력'으로 치부한 것이다. 경남에서 3선을 했던 전 국민의힘 의원도 "카톡방 운영을 하지 않는 의원은 찾기 어려울 텐데 (신 의원이) 걸려서 억울한 마음이 들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에서 20여 년 일한 보좌관은 "명태균처럼 아예 여론조사회사를 만들거나 결과 로데이터(원본)을 조작하는 간 큰 범죄는 아니고, 보좌관들이 영감(의원을 뜻하는 은어) 위해서 전화 더 받겠다고 '용쓰다가 망한' 케이스"라고 했다. 여론조사 지지율 부풀리기를 관행적으로 저질러왔다는 얘기다.

실제 전화기를 다량 사들여 여론을 조작한 건 신 의원 사례가 처음이 아니다. 2018년 지방선거에선 이재만 전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최고위원이 한국당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서 아파트를 빌려 비밀 선거사무소, 즉 전화방을 차린 뒤 친인척 등의 명의로 일반전화 1,147대를 개설했다가 적발이 됐다. 휴대폰을 착신 전환해 선거 여론조사에 허위 응답을 지시한 혐의가 인정되면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22대 총선에서 여론 조작 사례 51건을 확인했다.

사모님 대역 불법 전화방까지… 진화하는 수법



꾼들의 수법은 경선 과정에서 더욱 교묘해진다. 경선이 본선보다 치열하기 마련인 거대 양당의 텃밭 지역구에선 더욱 심각하다. 지난 총선, 광주·전남에서는 전화방이 유행했다. 전화방을 차려 선거운동원을 고용해 홍보하는 방식이다.

광주 동남을이 지역구인 안도걸 민주당 의원은 2023년 12월부터 2024년 2월까지 사촌동생과 공모해 전남 화순에서 전화방을 운영하며 봉사자들에게 급여 명목으로 2,554만 원을 지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안 의원은 "A씨의 불법 홍보 문자메시지 발송 사실과 금품 거래를 전혀 몰랐다"는 입장이다. 광주 북구갑의 정준호 의원도 전화방에서 선거운동원을 고용하고 급여를 지급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기소됐다.

배우자 대역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하는 '사모님 전화방'도 유행이다.
후보자 배우자의 목소리까지 아는 유권자가 많지 않다는 허점을 노린 것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후보자 배우자 명의로 휴대폰을 여러 대 개통한 후 빌라를 빌린다. 배우자 역할을 할 중년 여성 아르바이트생을 모아놓고 지역민에게 '지지호소' 전화를 돌리면 된다. 해당 캠프에서 일했던 선거운동원은 "유권자들이 기계에 녹음된 홍보 음성을 들으면 전화를 바로 끊지만, 중년 여성, 특히 후보자 배우자라고 하면 마음이 약해져 호응을 잘해준다"고 설명했다. '사모님 대역'을 얼마나 쓸지는 캠프의 재력에 따라 정해진다. 캠프마다 열 명에서 스무 명씩 섭외를 한다고 한다.




"여론조작 사건의 뿌리는 '태양광 비리'"

전북 군산 수송동의 한 빌딩에 위치한 신영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사무실. 군산=김지현 기자


핵심은 왜 이렇게까지 하느냐다.
신 의원 사건 공익제보자 허모씨는 "마음이 맞는 국회의원과 시장, 시의원들이 그들만의 카르텔을 계속 유지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군산에 태양광 사업이 있듯 서로 봐주며 챙겨야 할 이권이 있다"고 꼬집었다.


신 의원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태양광 비리 의혹과 여론조작 사건이 얽혀 재판이 진행 중이다. 브로커 서씨는 최근 2심 재판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검찰은 서씨가 받은 돈이 신 의원에게 흘러간 것으로 의심한다. 신 의원 보좌관 정씨는 태양광 사업 청탁 명목으로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또 다른 재판에서 징역 1년 2개월을 선고받았다.

여론조작 사건도 지난 2월에야 1심 결과가 나왔다. 법원은 신 의원 선거사무소 사무장 출신의 강모씨에게 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전현직 보좌관에게 징역 1년 4개월을 각각 선고했다. 형이 그대로 확정되면 신 의원의 당선은 무효가 된다.
신 의원은 본보의 10차례가 넘는 확인 요청에 "재판 과정을 보면 어떤 게 실체적 진실인지 알게 될 것"이라며 "변호사들과 협의해 준비하고 있으니 재판을 직접 참관해 보라"는 입장을 밝혔다.




목차별로 읽어보세요

  1. ① 1화 검은 커넥션
    1. • "600만원이면 돌풍 후보로" 선거 여론조사 뒤 '검은 커넥션'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30516040002864)
    2. • 여심위, 불법 실태 파악 못한 채..."심증만으론 조사 어렵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31012300002753)
    3. • 美에서 퇴출된 ARS 여론조사 韓에선 대세...이유는?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31016240000592)
    4. • ARS 기관 대부분 연 매출 1억 남짓..."선거 물량 잡아야 산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30510400004131)
  2. ② 2화 '꾼'들이 있다
    1. • 태양광 비리 쫓던 檢, '여론조사 조작' 꼬리를 찾았다...무더기로 발견된 휴대폰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30719090000568)
    2. • '꾼'에게도 급이 있다...누가 당원 명부 최신판을 쥐고 있나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30918310004424)
    3. • 정치인 위 '상왕' 노릇 여론조작 브로커...고발해도 변한 게 없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30611420005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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