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사진=김범준 한국경제신문 기자
임기 2개월도 안 남은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상법 개정안 거부권이 행사되면 ‘직’을 내려놓겠다며 으름장을 놓더니 막상 거부권이 행사되자 침묵했다. “경제 상황이 엄중해 금융수장들이 만류했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 원장은 오히려 현안을 챙기며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공식 일정을 소화하는 것은 물론 중국, 스위스로 해외 출장도 갈 예정이다. 노출 채널도 다각화하고 있다. 공개 발언, 금감원 차원의 의견 보도자료 배포뿐 아니라 직접 방송과 라디오 인터뷰에 이어 유튜브 채널까지 나올 예정이다.
◆민간 CEO 거취부터 상법 개정안까지 선 넘는 관여도
이 원장은 지난 3월 13일 야당 주도로 통과된 상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직을 걸고”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개정안은 상장 여부와 무관하게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정작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4월 1일 거부권을 행사하자 공식 사표는 내지 않았다. 되레 라디오까지 나와 “윤석열 전 대통령은 거부권 행사 안 했을 것”이라고 발언해 월권 논란을 자초했다. 이 원장이 차고 있는 완장은 상법의 소관 부처가 아니다.
앞서 이 원장은 상법을 바꿔야 한다고 줄곧 얘기해 오다 지난해 11월 말부터 정부 입장에 발 맞추고 재계 볼멘소리를 반영해 자본시장법부터 개정하자는 쪽으로 선회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다시 상법 개정안에 찬성하는 모습으로 돌아서자 일각에선 이 원장이 거물급 변호사로 등판하기 전 밑작업이 아니냐며 발언의 순수성을 의심하는 지적도 나왔다. 상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경영진을 겨냥한 소송 수요가 늘어난다는 관측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간 이 원장은 민간에서 일하고 싶다는 의견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전에도 이 원장은 손바닥 뒤집듯 입장을 바꾸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해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의 친인척 관련 700억원대 부당대출과 관련해 “현 경영진이 책임져야 한다”는 식의 발언을 이어가며 임종룡 현 우리금융 회장을 질타했다가 비상계엄 사태 이후 윤 전 대통령과 선을 긋는 식의 모습을 보이더니 “임 회장이 임기를 채우는 게 좋겠단 생각이 든다”며 갑작스럽게 태세를 전환했다. 민간 금융사 CEO의 거취는 금감원장이 관여할 영역이 아니다.
◆스피커 광 이복현
이 원장은 취임 당시 ‘윤석열 사단의 막내’, ‘공인회계사 자격증 가진 특수통 검사’, ‘최초 검사 출신 금감원장’ 등 화려한 꼬리표에 관심을 받았다면 이후엔 스스로 이슈를 창출하며 관심을 끌었다. 레고랜드 사태, 태영건설 부실, 홍콩 주가연계증권(ELS) 사태 등 복잡한 경제 사건을 초기에 진화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홈플러스 사태 등 이슈에 대해 “MBK파트너스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저격하는 등 수위 높은 발언을 쏟아내거나 “지배주주만을 위한 합병에 투자자 실망”이라며 두산그룹을 재차 압박하기도 했다. 방산 기업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 유상증자 증권신고서 정정을 요구하며 제동을 거는 등 재계를 긴장하게 했다.
그만큼 이 원장은 상급자인 금융위원장보다 언론 노출이 잦았다. 지난 33개월 임기 동안 언론 앞에 100차례 가까이 섰다. 1주에 1번 이상 기자간담회나 백브리핑을 진행한 것이다. 같은 기간 김주현 전 금융위원장과 김병환 현 위원장이 각각 10여 차례 선 것과 비교하면 10배는 많이 언론에 노출된 셈이다.
금융권을 넘어 산업계와 정치권에선 “제발 발언 좀 자제하라”는 지적이 빗발친다. 한 산업계 관계자는 “금감원장 발언 하나하나가 시장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데 (금감원장이) 파장을 생각지 않고 말을 너무 많이 하지 않냐”고 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매번 시장을 당황스럽게 하는데 도대체 일관성이 없다”며 “오죽하면 금감원장 입이 리스크라는 말이 나왔겠냐”고 했다.
어쨌든 이 원장은 임기를 완주할 것으로 보인다. 2022년 6월 7일 취임한 이 원장의 3년 임기는 오는 6월 6일에 끝난다. 역대 금감원장 14명 중 3년 임기를 모두 채운 인물은 4명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