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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이사님'은 높은 분이죠. 과장님, 부장님보다 한참 위고, 사장님만큼은 아니어도 권한도 셉니다.

이사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사내이사(Inside Director)와 사외이사(Outside Director)입니다. 말 그대로입니다. 회사 내부 인사가 이사를 맡으면 사내이사, 반대로 외부 전문가가 이사로 선임되면 사외이사입니다.

굳이 사외이사를 왜 둘까요? AI '제미나이'에 물어보니 이렇게 답합니다. 다른 AI에 묻거나 포털에 검색해도 설명은 비슷합니다. 핵심은 '독립성'입니다.

"대주주나 경영진으로부터 독립된 외부 인사를 이사회 구성원으로 참여시켜 경영의 투명성과 객관성을 확보하고 소액주주를 포함한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균형 있게 반영하기 위한 제도입니다."

그래서 법도 이런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상법 382조는 사외이사의 결격 사유를 구구절절 정했습니다.

1. 회사의 상무에 종사하는 이사·집행임원 및 피용자 또는 최근 2년 이내에 회사의 상무에 종사한 이사·감사·집행임원 및 피용자
2. 최대주주가 자연인인 경우 본인과 그 배우자 및 직계 존속·비속
3. 최대주주가 법인인 경우 그 법인의 이사·감사·집행임원 및 피용자
4. 이사·감사·집행임원의 배우자 및 직계 존속·비속
5. 회사의 모회사 또는 자회사의 이사ㆍ감사ㆍ집행임원 및 피용자
6. 회사와 거래관계 등 중요한 이해관계에 있는 법인의 이사ㆍ감사ㆍ집행임원 및 피용자
7. 회사의 이사ㆍ집행임원 및 피용자가 이사ㆍ집행임원으로 있는 다른 회사의 이사ㆍ감사ㆍ집행임원 및 피용자


용어가 딱딱해서 한 눈에 안 들어올 텐데, 공통점은 '최대 주주와 이리저리 얽힌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전문성이 있어도, 최대 주주와 가까운 이는 사외이사로 부적합하단 뜻입니다.

역시 '독립성' 때문입니다. 법은 알겠고, 현실은 어떨까요?

KBS는 사외이사의 현실을 연속기획 <한국 주식 괜찮습니까>에서 집중 보도했습니다.

문제적 사례가 한둘이 아니지만, 두 회사에 집중했습니다. 역대 최대 유상증자로 논란의 중심에 선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지난해 합병 비율 논란을 일으킨 두산밥캣에 집중했습니다.

[연속기획] KBS 한국 주식 괜찮습니까
[뉴스9] ‘알박기’에 ‘이해충돌’까지…망가진 사외이사 (3월 27일)
[뉴스9] 3.6조 유상증자 ‘반나절’ 만에 찬성…사외이사가 일하는 법 (3월 31일)

KBS 연속기획 ‘한국 주식 괜찮습니까?’

■ 역대급 유상증자, 역대급 시장 반발

지난달 20일. 방산기업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3조 6천억 원이라는 역대급 규모의 유상증자를 발표합니다.

글로벌 방산 기업이 되려면 사업을 확대해야 하는데 투자금이 부족하다는 이유였습니다. 유상증자하면 늘어난 주식 수만큼 현금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회사는 좋습니다.

기존 주주들은 달갑지 않습니다. 회사 가치를 100명이 나눠 가질 수 있었는데 120명이 나누게 되면, 각자의 몫이 줄어드는 이치입니다. 회사가 확보한 현금으로 사업을 잘 키운다면 결국엔 해피엔딩일 수 있지만, 어쨌든 당장은 손해입니다.

실제로 시장 반응은 냉담했는데, 단순히 주주 가치 희석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석연찮은 구석이 더 있었습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분명 투자금이 부족하다며 3조 6천억 원을 유상증자했습니다. 그랬던 회사가 한 달여 전에 갖고 있던 현금 1조 3천억 원을 투자와는 무관한 곳에 썼습니다.

한화의 다른 계열사인 한화오션 지분을 사들였습니다. 그것도 하필, 김승연 회장의 세 아들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부사장에게서 사 왔습니다.

정리하면, 있는 돈은 회장님 아들들 주식 사주는 데 써놓고, 돈이 부족하다며 주주들에게 손을 벌린 겁니다. 앞뒤가 안 맞다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유상증자 직후 주식은 급락했습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주가 차트. 78만 원에 이르던 주가는 유상증자 발표 다음날인 지난달 21일 62만 원대까지 떨어졌다.(출처 : 네이버)

■ 역대 최대라면서 반나절 만에 도장 '쾅'

유상증자도, 한화오션 지분 매입도 최종 결정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이사회가 했습니다.

이사회는 김동관 대표이사를 포함해 총 7명입니다. 이 중 4명이 사외이사. 형식적으로는 '독립된' 외부 전문가가 더 많았습니다.

사외이사 4명 모두 두 안건 모두 찬성했습니다. 근거가 탄탄하고 논의가 충분했다면, 찬성 자체를 나무랄 순 없습니다.

유상증자가 결정된 지난달 20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이사회 의사록

KBS는 사외이사들에게 직접 물었습니다. 찬성한 이유가 뭔지? 어떤 점을 고민했는지? 얼마나 논의했는지? 꼬치꼬치 물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회사는 사외이사 4명에게 역대 최대 유상증자 안건을 이사회 당일에 알렸습니다. 더 정확히는 이사회 개최 두 시간여 전에 알렸습니다. 그리고 찬성 '몰표'가 나왔습니다.

"이사회 한 두어 시간 전에 (유상증자) 설명을 듣고 이사회를 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다른 안건은 보통 일주일 전에 설명하는데 이 건은 그렇게 못했다고 했습니다. 충실히 설명했고 회계 전문가, 주관사 이런 분들이 말씀을 많이 했습니다." - A 사외이사 -

한국 주식시장 역사에 남을 역대급 규모 유상증자가 두 시간 만에 결정한 겁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측은 '보안'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유출되면 시장 혼란이 생길 정도의 큰 사안이기 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

"일반적인 안건이면 사전 설명해 드리는데, 유상증자는 미리 알려드릴 수가 없어요. 유출되면 시장 혼란이 생기기 때문에요. 내부에서도 굉장히 제한적인 인원만 알고 있었습니다. 사외이사라고 해서 예외는 아닌 거고요. "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관계자-

이런 논리라면, 중요한 안건일수록 사외이사는 '초치기'로 결정해야 합니다. 중요도가 덜 한 일상적 안건은 충분히 논의할 수 있는데 말이죠. 씁쓸한 역설입니다.

시장 반발이 커지자,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한발 물러나긴 했습니다. 유상증자 규모를 2조 3천억 원으로 줄이기로 했습니다. 이번에는 사외이사들에게 두 차례 사전 설명했다고 합니다. 이때는 보안 필요성이 덜했던 걸까요.

"회장님은 주인 의식 많은 분"

지난해 비슷한 논란을 일으킨 대표적 회사는 두산입니다.

건설기계 제조사인 두산밥캣과 산업용 로봇을 만드는 두산로보틱스는 지난해 7월 합병 계획을 내놓습니다. 그런데 합병 비율이 문제였습니다.

적자만 내는 로보틱스 주식 가치를 1, 연간 1조 원 이상도 버는 밥캣을 0.63으로 잡은 겁니다. 두산밥캣 주주들의 손해가 컸습니다.

합병안은 영업이익 1조 원이 넘는 두산밥캣의 가치는 0.63으로 본 반면, 적자기업인 두산로보틱스의 가치는 1로 책정해 특히 두산밥캣 주주들의 공분을 샀다.

이 합병안에 두산밥캣 사외이사 4명은 모두 찬성표를 던집니다. 논란이 거세지고, 한 달 뒤 합병 철회 안이 올라오자, 사외이사들은 또 전원 찬성합니다. 논란 속에 합병은 결국 무산됐습니다.

사외이사 4명은 '합병하자' 안건도 찬성, '합병말자' 안건도 찬성이었습니다.

취재진은 두산밥캣 사외이사 4명에게 이유를 물었습니다.

4명 중 3명과 연락이 닿았고, 아래와 같이 밝혔습니다.

사외이사 A : "기업 전반적인 전략, 재무 상태, 위험 관리 등 기본적인 걸 파악하는 사외이사들은 많지 않을 겁니다. 코스피 200 기업들도 그렇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지배주주의 의견이 많이 관철되는 게 꼭 나쁘다고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주인의식을 그 사람들만큼 많이 가진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외이사 B : "(합병안이) 주주들의 이익에 반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외이사 C : "KBS의 취재에 공식적으로 응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사외이사 A 씨의 경우 두산 사례가 아님을 전제로 "대주주는 지분율이 높은 만큼, 책임감도 커서 회사에 더 유리한 결정을 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습니다. 단기 배당보다 미래 비전에 입각한 장기적 관점의 의사결정에 더 유리하다고 보는 경영학 이론도 있다면서, 기업 특유의 문화나 가치를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일리 있는 말입니다. 경영학 이론에 실제 그런 유력 학설이 있고, 사주가 책임 경영을 통해 회사를 살린 사례도 많습니다. 다만, '독립적'인 사외이사의 입에서 나올 얘기로 적절할까요.

그런데 국내는 이런 사외이사가 압도적입니다. KBS와 리더스인덱스가 최근 2년 동안 10대 그룹 상장사 이사회의 의결 안건을 조사한 결과, 부결 안건은 14건에 불과했습니다. 사외이사 개개인이 던진 반대표도 51표에 불과합니다.


KBS가 연락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두산밥캣 사외이사 8명 가운데 대면 인터뷰에 응한 사외이사는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이사회 멤버지만 중요한 안건은 정작 늦게 알고, 주주를 대신해 회의록에 직인은 찍지만, 자신의 의견을 당당히 밝힐 수는 없는 존재.

2025년 한국 사외이사의 자화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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