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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 장하준 런던대 교수 인터뷰
“관세전쟁 미국, 돌아올 수 없는 강 건너”
국내 정치권 ‘감세 경쟁’에도 쓴소리
“이재명, 감세로 대통령 돼도 5년 뒤 ‘제2 윤석열’ 나올 것”
장하준 영국 런던대 경제학과 교수가 지난 4일 경향신문과 화상인터뷰를 하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전쟁’ 등에 관해 발언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전쟁’으로 전 세계가 충격에 휩싸인 가운데 장하준 영국 런던대 경제학과 교수(62)가 한국에 “미국에서 빠져나오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조언을 내놨다.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어 미국산 제품 대부분에 관세를 철폐한 한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지난 2일(현지시간) 상호관세 발표로 하루아침에 25%의 ‘관세 청구서’를 받아들게 됐다. 이후 중국 외 나머지 국가의 상호관세 유예 선언이 있었으나 철회된 것은 아니다. 철강·자동차에 이은 반도체 등의 품목 관세도 예정돼 있다.

장 교수는 지난 4일과 11일 경향신문과의 화상·전화 인터뷰에서 “미국의 (상호관세 등) 조치는 장기적으로 다른 나라들에 ‘미국 없는 세계경제’를 생각하게 만들 것”이라고 평가하며 이같이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 ‘90일 유예’ 조치를 했음에도 장 교수는 “이미 신뢰는 무너졌다”면서 “미국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나라다”라고 잘라 말했다. 장 교수는 주류 경제학과 서구 자본주의의 위선을 지적해온 세계적 경제학자다.

장 교수는 특히 ‘미국 의존 축소’ 전략을 국가 차원에서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우리가 꼭 지켜야 할 산업은 뭔지 따져보고 산업정책을 재정비”하면서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국가별 수출 비중은 중국 19.5%, 미국 18.7%, 유럽연합(EU) 10%다. 2010년엔 중국 25.1% 미국 10.7% EU 10.3%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환심을 사는 것에 치중하는 협상 전략에 대해 재고가 필요하다는 견해도 내놨다. 장 교수는 “정부의 사고방식이 과거 1인당 국민소득 1000달러 시절에 머물러 있다. ‘어떻게 하면 미국 비위에 안 거슬릴까’만 궁리하고 있다”면서 “미국이 이렇게 나오는데 ‘더 드릴까요’ 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말했다.

장 교수의 전망은 트럼프 대통령의 도박이 미국의 ‘영향력 상실’로 귀결될 것을 우려하는 미국 내 목소리와도 맞닿아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상호관세 발표 직후인 3일 사설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들에 철퇴를 가하고 신뢰를 산산조각 내고 있다”면서 “미국이 소프트파워와 영향력을 잃을 경우 그 대가는 상당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장 교수는 앞다퉈 감세를 내세우는 국내 정치권에 대해서는 강한 우려를 표했다. 그는 “한국은 복지 지출을 늘리지 않아 사회가 점점 병들었다. 출생률은 세계 최저이고, 자살률, 노인빈곤율, 남녀임금 격차는 OECD 1위”라면서 “생각의 틀을 바꿔 ‘정부가 돈 써야 할 곳에 잘 쓰고 있느냐’를 얘기해야 하며, 이렇게 보면 오히려 증세를 논의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우클릭’ 중인 더불어민주당을 향한 쓴소리도 내놨다. 장 교수는 “과거 시민들이 ‘문재인 정부’를 만들어줬으나 윤석열을 택한 이유는 민주당 정권이 시민 행복을 증진시키는 정책을 펼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정책 전환 없이) 감세 같은 아젠다로 이재명 민주당 전 대표가 대통령이 돼 봤자 5년 후에 ‘제2의 윤석열’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미국, 싸고 질 좋은 물건 사놓고 ‘약탈당했다’고 주장”

-트럼프 대통령이 주요 무역상대 57개국에 최대 5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한국엔 관세 25%가 적용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를 어떻게 봤나.

“한마디로 코미디다. 미국 밖에서 싸고 질 좋은 물건을 들여오지 않으면 미국의 현재 경제체제는 유지가 안된다. 미국의 실질임금 중간값이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거의 안 올랐다. 임금을 억제해 기업 이윤을 많이 내고 그걸로 자사주 매입하고 CEO들에게 천문학적 봉급을 주는 체제가 미국에서 가능했던 이유는 소비재들을 미국 밖에서 싸게 들여올 수 있어서였다. 그렇게 해서 미국 엘리트들이 이득을 봐 놓고 이제와 무역상대국들을 향해 ‘당신들이 우리를 속였다, 우리의 것을 훔쳐갔다’고 말한다. 맛이 좋고 가격이 적절해 동네에 자주 가는 식당이 있다고 치자. 그 식당과 나의 관계만 보면 내가 그 식당에 돈을 갖다 바친 거다. 트럼프의 행동은 내가 그 식당에 갑자기 나타나 ‘당신이 나를 약탈해왔다’고 얘기하는 것과 유사하다.”

-미국은 관세를 높여 제조업을 다시 부흥시키겠다고 한다.

“트럼프가 말하는 것은 개괄적으로는 유치산업 보호(어린아이와 같은 산업이 국제적 경쟁력을 갖출 때까지 일시적으로 보호하는 전략)와 유사하다. 관세장벽을 올려서 기업에 숨 쉴 공간을 만들어주고 투자를 해서 생산성을 높인 뒤 나중에 경쟁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한국도 유치산업 보호를 했다. 자동차 산업을 키우려고 자동차 수입을 금지하고 정책금융을 해줬다. 그런 전략이 성공한 이유는 기업과 노동자들이 열심히 일해서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투자를 열심히 했기 때문이다. 과거에 제 아들 비유를 든 적이 있다. 6살 된 아이에게 지금 나가서 돈 벌어오라고 하는 게 당장 저에겐 이익이지만, 학교를 보내면 나중에 건축가도 의사도 될 수 있다는 얘기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을 이 비유에 대입해보자. 자기 아들이 쉰 살쯤 됐는데 사업한다고 왔다갔다하다가 잘 안된 거다. 그런데 부모가 갑자기 ‘아들을 보호해야겠다’고 나섰다. 유치산업 보호는 어린 기업, 약한 기업을 보호하는 것인데 다 늙은 아들에게 다시 돈 대주겠다는 격이다. 그 아들이 그간 빌빌거린 이유는 사업도 제대로 안 하고, 기업에 투자할 돈 다 빼서 놀러다녀서 그런 거다. 사실 그저 비유만은 아니다. 미국 금융시스템은 기생충화됐다. 미국 기업들은 1960~70년대까지만 해도 이윤을 내면 50%를 재투자했다. 그런데 이제는 주주들 힘이 너무 세지니까 배당률도 높아졌고, 빚까지 내서 자사주를 매입한다. 그런 식의 주주 환원비율이 기업 이윤의 90~95%다. 한마디로 미국 기업들은 투자할 여력이 없다.”

-외국 기업들이 미국에 들어가 공장 지어주고 일자리를 만들어준다면.

“그렇게 해서 (제조업을) 되살리기엔 이미 너무 늦었다. 미국은 지난 40년간 산업 기반을 파괴했다. 다른 나라들이 (자기들 나라에서) 모든 걸 다 빼와서 미국에 지어주기 전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말하는 제조업 문제는) 해소가 안 된다. 우리도 괜히 트럼프 전략에 부응하려다가 국내 산업 공동화가 일어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세계가 ‘미국 없는 세상’ 생각하게 만들어”

-한국은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할까. 현대차그룹은 31조원의 대미 투자를 발표하기도 했다.

“현대차의 경우 원래 하려고 했던 투자를 바탕으로 발표한 것이겠지만, 현대차를 비롯해 여러 나라의 많은 기업들이 겁을 먹어 알아서 투자를 약속했음에도 트럼프는 하나도 안 봐줬다. 미국과 한국은 자유무역협정(FTA)를 맺은 사이인데 일방적으로 25% 관세를 붙이는 게 말이 되는가. 이제 미국과는 적법한 과정을 통해 뭔가를 함께하는 것이 어렵게 됐다. 내가 기업인이라면 미국에 투자 안 하겠다. 미국의 조치는 장기적으로 다른 나라들에 ‘미국 없는 세상’ ‘미국 없는 세계경제’를 생각하게 만들 것이다.”

-미국 역할을 대신할 나라가 있을까.

“꼭 일극체제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국제무역에서 미국은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다. 미국 경제는 덩치가 커서 내수 중심이다. 세계 GDP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율은 25% 부근이지만 세계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이 ‘우방이 더 나쁘다’면서 함부로 대하고 있는데 하루아침에 (수출 구조를) 다 바꿀 수는 없으니 다들 당장은 굴복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그럼 미국에 안 팔지 뭐’ 하는 생각을 갖게 될 것이다. 한국의 경우 반도체, 자동차, 조선은 미국이 워낙 큰 시장이니 발을 빼긴 힘들 것이다.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미국에서 발을 빼는 게 좋다. 미국이 갑자기 돌변해서 정책을 바꿀지 모르는데 거기서 어떻게 비즈니스를 하겠는가. 2년 후에 기간산업이니 국유화하겠다 할 수도 있지 않겠나. 틱톡(중국 ‘바이트댄스’의 쇼트폼 동영상 플랫폼)의 경우에도 미국에 지분을 팔라고 하지 않는가. 경제공동체를 만드는 것까지는 먼 얘기지만 미국 외 나머지 다른 국가들 간 협력은 더 늘어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 발효 13시간 만에 ‘90일 유예’ 선언을 했다. 만약 상호관세가 철회된다면. 그래도 미국에서 발을 빼야 하나.

“발을 빼자는 얘기는 현재 20%에 가까운 미국 의존도(수출 비중)를 0%로 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법치주의를 포기한, 예측이 불가능한 나라가 됐으니 최대한 줄여보자는 얘기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금은 유예 선언을 했지만 한 달 후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하면 (상호관세를) 또 하겠다고 할 수도 있다. ‘우리가 잘못했으니까 없던 일로 하겠다’고 말한다 해도 신뢰는 이미 무너졌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미국은 이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나라’라고 생각한다.”

-미국에서 발을 빼는 것이 쉬울지 모르겠다.

“쉬운 일은 없다. 제가 태어날 때 1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이던 나라가 3만5000달러가 됐다. 중국 경제가 덩치가 커지고 소득이 높아졌으니 거기에 더 팔 수도 있고 EU에도 다른 큰 시장이 많다. 한국은 이미 미국보다 중국에 하는 수출이 더 많지 않은가. (수출·수입의) 다변화가 좋다는 것은 경제 상식이다. 다변화해야 안정되고 유연화된다. 쇠고기도 미국과 FTA 했으니 많이 들여오지만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 가서 사와도 된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고기가 미국 고기보다 질도 훨씬 좋다.”

“미국에 매달리면 봉변당할 수도…한덕수 대행, 나서지 말아야”

-미국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는 건가.

“매달릴 필요가 없다는 정도가 아니라 매달리면 봉변당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하루라도 빨리 비중을 줄여야 한다. 그걸 국가 산업정책 차원에서 해야 한다. 국가 입장에선 FTA가 파기된 것 아닌가. 국가 차원에서 뭔가 입장을 밝히고 대책을 내야 한다. 개별 기업이 ‘알아서 하라’ 하면 협상력도 떨어진다. 한국의 제조업이 옛날보다 많이 약화됐고, 산업 정책도 예전엔 꼼꼼하고 강력하게 하다가 이제는 대강하고 있는데, 이런 기조를 바꿔야 한다. 우리가 꼭 지켜야 할 산업은 뭐고, 없애야 할 산업, 옮겨야 할 산업이 뭔지 국가적 차원에서 준비해야 한다. (국가가 나서지 않고 기업들이 각자 알아서) 뿔뿔이 하면 산업생태계가 무너질 수 있고, (생태계 약화 현상이 여러 산업으로) 금방 번질 수 있다. 새로운 경제 전략을 바탕으로 산업정책을 재정비해서 지킬 건 지키고 버릴 건 버려야 한다.”

-그렇다면 굳이 협상에 골몰할 필요도 없는 건가.

“협상도 전략이 뚜렷해야 하는 거다. 전략 없이 트럼프를 상대하다간 어떻게 될까. 호랑이가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해서 떡 내주다가 결국은 잡혀먹히는 꼴이 될 수 있다. 약속을 지켜야 협상도 하는데, 트럼프가 하는 건 협상이 아니라 협박이다. 깡패들이 그냥 윽박질러서 빼앗아가는 것에 가깝다.”

-트럼프 대통령이 입장을 수시로 바꾸는 상황에서 한국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지금은 먼저 나서지 말고 가만히 있어야 한다. 동네 깡패들이 가게를 뒤집어 엎고 ‘그동안 내던 돈을 5배로 내라, 10배로 내라’면서 야구 방망이로 집기를 부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왜 그런 상황에서 나서서 ‘우리와 얘기 잘 해봅시다’ 하는가. 국민들이 뭘 원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이고 선거로 뽑히지도 않지 않았는가. 현직 대통령의 탄핵으로 권력 공백 상태인 점을 설명하면 되지 않나. 정부가 뭔가 구도를 잘못 잡고 있는 것 같다. 사고방식이 과거 국민소득 1000달러 시절에 머물러 있다. ‘어떻게 하면 미국 비위에 안 거슬릴까’만 궁리하고 있다. 한국이 얼마나 크고 중요한 나라가 됐는지를 정작 한국 스스로 모르는 것 같다.”

-통상 당국은 미국산 LNG 수입 확대 등을 통해 대미 무역흑자를 줄여주는 협상 전략을 생각하고 있다.

“미군이 영토 내에 주둔하는 특수한 상황의 나라이기에 다른 나라들처럼 자유롭게 행동하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미국과의 관계를 최대한 줄이는 전략이 맞다고 본다. 캐나다를 보라. 미국과 경제가 통합적으로 굴러가는 나라이지만, 캐나다를 51번째 주로 만들겠다는 얘기에 반미 감정이 하늘을 찌른다. 한국에는 친미파 엘리트가 너무 많아서 미국에서 발을 빼는 전략을 생각하기 싫을 수도 있지만, 경제 규모가 세계에서 12번째로 큰 나라인데 미국에 가서 ‘뭘 더 드릴까요’ 하는 건 아니다.”

“현대차, 선제적 양보하고 아무것도 못 얻어”

-현대차 이외에 다른 기업들도 미국 투자를 검토 중이다.

“할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현대차는 ‘봐주는 게 있을까’ 해서 선제적으로 양보한 건데 아무것도 없지 않았나. 미국이 이렇게 나왔는데 ‘더 드릴까요’ 하는 게 맞을까. 비즈니스 하는 분들은 다르게 볼지도 모르지만 저는 현재 상황에서 (더 투자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바보짓이라고 생각한다.”

-상호관세가 현실화되면 보복을 검토해야 할까.

“보복하는 게 꼭 맞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보복해봤자 우리가 수입하는 물건들만 비싸진다. 보복을 한다면, 지금 얕보여서 나중에 더 큰 것을 잃을까봐 하는 것인데, 그렇게 시급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몇 달 뒤 새 정부가 들어서면 입장을 잘 정리해서 쳐낼 건 쳐내고, 보복할 건 보복하고, 슬그머니 받아들일 건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전반적으로는 미국에서 빠져나오는 전략을 짜야 한다.”

-미국의 관세 폭탄에 중국이 꽤 강력하게 반격하고 있다.

“중국은 지금 미국에 빌 나라가 아니다. 미국이 무서울 이유가 없다. 미국이 중국에 팔아야 할 것이 대두를 비롯해 얼마나 많은가. 애플 같은 기업은 중국에서 생산하는데 (관세로 가격이 폭등하면) 팔 수가 없다. 중국이 갖고 있는 미국 국채 규모 역시 상당하다. 중국은 미국이 자신들에게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미국이 제조업을 일으켜서 ‘우리는 중국 필요없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상황이면 모르겠는데, 앞서 말한 대로 미국은 제조업을 되살리기 어려운 나라가 돼버렸다.”

-일각에서는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하면, 미국 내 시장에서 한국산 제품이 중국산을 대체해 반사이익을 볼 수도 있다고 기대한다. 실제로 2017년부터 시작된 1차 미·중 무역전쟁 이후 한국 제품의 미국 수출이 늘었다.

“완제품 등의 미국 수출은 늘었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의 미국 수출이 줄어듦으로써 우리가 중국에 수출하는 부품, 소재, 기계 등은 줄었다. 그 두 가지를 같이 놓고 봐야 한다. 그리고 그건 8년 전의 일이다. 중국은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고 산업 구조도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막연하게 ‘과거에 우리가 반사이익을 봤으니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라고 볼 수는 없다. 수년간 중국 수출 비중이 꽤 줄어든 것은 사실 걱정해야 할 일이다. 중국이 이제까지 기계, 부품을 우리한테서 수입해서 만들었지만 이제는 자기들이 그걸 스스로 만들 능력이 생겼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미국, 중국 견제 성공 못할 것”

-미·중 대립 속에서 우리는 경제적 측면에선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하나.

“저는 미국이 중국 견제에 성공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첨단기술 등의 측면에서 이미 중국의 수준이 올라갔다. 문제는 중국 역시 그리 훌륭한 나라가 아니고, 우리가 따르고픈 나라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래도 어떻게 하겠는가. 대국에 낀 나라로서 줄타기를 잘 하며 지내야 한다. 물리적으로는 멀지만 미·중을 함께 견제할 수 있는 유럽 등의 ‘친구’도 잘 만들어야 한다.”

-미국에서 발 빼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는데, 그러면 중국과 가까워지게 되는 건가.

“아니다. 유럽도 있지 않은가.”

-트럼프 관세전쟁으로 통상질서는 어떻게 바뀔까.

“미국은 남들이 결국은 자기들에게 복종하게 될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다. 하지만 (복종을) 꼭 할 필요 없어서 안 하는 나라도 있을 것이다. 여러 나라들이 아마도 장기적 관점에서 (복종이 아닌 다른 방향의) 행동을 할 것이기 때문에 (통상 질서가)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는 아직 모른다. 무조건적인 자유무역 지지자들은 미국이 이렇게 나오면 다른 나라들이 잇따라 관세장벽을 세워서 세계 경제가 과거 대공황 때처럼 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당시 세계 경제가 악화된 것은 관세는 2차적인 문제였고, 각국 경제위기로 인해 수요가 줄고 무역금융이 말랐기 때문이었다. 아울러 지금은 대공황 상황도 아니기 때문에 무역이 그런 식으로 갑자기 붕괴할 순 없다.”

“트럼프 틀렸다고 자유무역주의로 돌아갈 건 아냐”

-트럼프의 관세전쟁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그간의 자유무역주의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폐해에 대해선 다시 간과하게 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자꾸 양극화된 논리로, 트럼프가 틀렸으니 ‘자유무역주의로 돌아가야 한다’고 볼 것이 아니다. 여러 다양한 가능성이 있다. 최근 독일은 헌법을 바꿔서 (정부가) 돈을 더 빌릴 수 있게 했다. 그간 독일은 재정을 너무 보수적으로 운용해 사회간접자본이 약화됐었다. 독일의 변화를 기점으로 긴축을 지향했던 다른 나라들도 적극적인 재정을 모색할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그간의 행동을 바꾸거나 혹은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끼리 협력을 강화할 수도 있다.”

-한국은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이기 때문에 “자유무역만이 살 길”이라고 믿는 이들이 많다.

“한국은 자유무역 한 다음에 경제가 잘 안 된 나라 중의 하나이다. 성장 속도가 낮아졌고 불평등은 커졌고 계층 이동성도 떨어졌다. 한국은 창피한 통계에서 대부분 1등이다. 출생률은 세계 최저이고, 자살률, 노인빈곤율, 남녀임금 격차는 OECD 1위다. 복지 지출이 늘어났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니 점점 사회가 병든 것이다. 표면적으로 무역만 놓고 봐도 자유무역 해서 잘된 게 뭐가 있나. 미국 자유주의 교육을 받고 온 엘리트들이 너무 많아서 자유무역만 떠받드는 것이다. ‘세금 깎아서 기업하기 좋은 나라 만들면 된다’ ‘자유무역 하면 된다’는 이데올로기는 이제 철 지났다. 중요한 것은 보호주의가 늘 옳은 것도, 자유무역주의가 늘 옳은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다른 나라는 따르지도 않는데 우리만 (자유무역주의에) 매달릴 이유가 없다.”

-그간 자유무역주의에 힘입은 세계화 흐름 속에서 산업정책은 후진적인 것으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산업정책의 시대가 돌아왔다.

“2010년대 초반까지의 자유무역 체제에서도 힘센 나라들은 사실 할 건 다했다. 미국이 그간 산업정책을 펼치지 않은 것 같지만 국방연구 명목으로 기업들에 R&D 보조금을 많이 줬다. 실리콘밸리가 생긴 이유도 그 지역에 국방연구를 하던 대학 및 연구소들이 몰려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변방의 콤플렉스 같은 것이 있다. 선진국들은 어기는 게 유리하면 하면 쓱 어기는데, 우리는 미국보다 더한 ‘자유무역 수호자’다. 남미의 경우에도 (자유무역주의를 따르느라) 산업정책을 아예 폐기한 나라가 있다. 우리는 그래도 예전에 산업정책을 열심히 해왔기 때문에 그런 나라들보다는 많이 한다. 하지만 이데올로기적으로 ‘(산업정책은)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니까 적극적으로 못하는 상황으로 보인다. 어떤 애가 밤새 공부해놓고 친구들에게 ‘바보같이 공부하냐, 나가서 놀자’고 말한다고 치자. 남들 공부 못하게 해서 본인이 1등하면 그놈은 나쁜 놈이지만, 그 말 믿고 공부 안 한 사람이 바보다. 반도체나 AI 등 신기술도 중요하겠지만 새롭게 큰 시장이 열리는 재생에너지, 한국이 아직도 약한 소재·부품·장비 분야를 주목해 잘 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재명 감세 정책 우려…5년 뒤 제2의 윤석열 나온다”

-한국 경제에 대해 얘기해보자. 일단 12·3 비상계엄 사태가 일어난 지 4개월 만에 현직 대통령이 탄핵됐다. 어떻게 지켜봤나.

“1980년대에 대학을 다녀 군부 독재의 잔인함을 경험한 세대다. 계엄 이후 2주 동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오늘도 탄핵 선고 시각(영국 시간 새벽 3시)에 눈이 떠졌다. 뉴스를 보고 ‘그래도 한국 민주주의가 살아있구나’ 하고 안도했다. 경제학자로서는 앞으로가 걱정이다.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시민들이 ‘문재인 정부’를 만들어줬다. 그러나 시민들이 다시 윤석열 전 대통령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민주당 정부가 시민들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정책을 펼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재정 관료들의 보수적 재정 운용 주장에 말려들었고, 탈규제와 감세 등을 전면에 내세우진 않았지만 신자유주의 담론에 계속 끌려다닌 게 사실이다. 나빠졌으면 더 나빠졌지, 아무것도 바뀐 게 없으니까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것이다. 향후 들어설 새 정부에서는 그런 일이 또 반복되면 안 되기 때문에 걱정이 크다. 제발 이번에는 그런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여야가 감세 경쟁을 하고 있다.

“세금 낮은 게 무조건 좋다면, 기업과 부자들은 최고 소득세율과 법인세율이 10%인 남미의 어느 나라로 가야 한다. 그런데 왜 안 가나. 세율이 아니라 ‘가성비’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세금을 30%쯤 내도 사업할 가치가 있으면 사업하는 거고, 10%만 내라고 해도 사회간접자본 제대로 안 되어 있고 치안이 불안해서 사업하기 안 좋으면 안 하는 거다. 지난 50~60년간 유럽에서 경제발전을 제일 잘한 북유럽의 경우 소득세 최고세율이 50~60%지만 세금 낮춰야 한다는 얘기 안 나온다. 여론조사를 하면 대부분이 지금의 세금에 만족한다고 말한다. 삶에 필요한 많은 것들이 보장되니 개별적으로 돈 쓰지 않아도 된다. 공동구매해서 쓰는 것, 그게 복지국가다. 한국의 정부 지출은 IMF 통계로 2023년에 GDP 대비 23%밖에 안된다. 미국(36%), 독일과 스웨덴(48%), 프랑스(57%)와 비교하면 기형적으로 낮다. 중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우리의 반도 안되는데 중국의 정부 지출은 34%다. 생각의 틀을 바꿔야 한다. 세금 거둬서 잘 쓰고 있나, 써야 할 곳에 쓰고 있느냐를 얘기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오히려 증세를 논의해야 할 시점이다. 그냥 무조건 깎자? 그런 아젠다로 이재명 민주당 전 대표가 대통령 돼 봤자 5년 후에 ‘제2의 윤석열’이 나온다. 역사적으로 봐도 감세, 탈규제와 성장은 관계가 없다. 노인빈곤율과 자살률 통계를 보고도 세금 깎자는 얘기가 나오는지 묻고 싶다. 어떻게 하면 (정부가 돈을 잘 써서) 국민을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할 시점 아닌가.”

“경제성장은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수단일 뿐”

-한국은행이 올해 경제성장률을 1.5%로 예측했다. 저성장이 장기화될까.

“한국은 이미 저성장 체제가 된 지 오래됐다. 1997년 외환위기 이전까지 1인당 국민소득 기준으로 성장률이 6% 정도였는데 지금은 2%도 넘기기 힘들잖나. 문제는 6-5-4-3-2 이렇게 내려오지 않고 6-3-2 이렇게 뚝뚝 떨어지는 게 문제인데 산업정책을 잘 못 폈다는 점, 투자가 줄었다는 점,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어 국민들이 돈을 잘 안 써서 생긴 ‘수요 부족’ 등 여러 이유가 있다고 본다. 그런데 한국 정도로 성장했으면 성장률 자체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어떻게 하면 행복한 사회를 만들 것인가’ ‘어떻게 하면 잘 나누고 도우면서 살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경제성장은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한국의 출생률 0.75명(지난해 합계출산율 기준)은 인류 역사상 최악의 기록 아닐까. 아이를 꼭 낳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이 지표가 한국 사회에 대해 말해주는 바가 있지 않은가.”

-급격한 고령화로 인해 국민연금의 지속 가능성 문제가 대두됐다. 최근 보험료율을 9%에서 13%로 올리고 소득대체율은 40%에서 43%로 조정하는 개혁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연금개혁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조언을 구한다.

“연금 정책을 보험료율, 소득대체율 차원에서만 얘기하는 건 정부의 직무유기라고 생각한다. 출생률이 낮아져 고령화가 심각해지니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등의) 수치를 바꿔야 한다? 정책을 통해 출생률을 더 높일 수도 있고 이민을 더 받을 수도 있다. 노동인구 대비 부양인구가 늘어나는 게 문제라면 산업정책을 통해 생산성을 높여 부양가능 인구를 더 늘릴 수도 있다. 혹은 세금을 더 내서 연금재정 고갈 시점을 늦출 수도 있다. 그런 얘기는 안 하고 ‘40년 후에 고갈된다’고만 얘기한다. 40년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어떻게 아나. 다른 정책은 얘기 안 하고 마치 회계사처럼 접근한다. 이 역시 정부가 국민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못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문제로 생각한다.”

장하준 영국 런던대 경제학과 교수. 장하준 교수 제공


◆ 장하준은 누구

‘시장 만능’을 내세우는 신고전학파가 경제학을 지배하는 현실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온 세계적인 경제학자다. 1990년 한국인 최초로 케임브리지대학교에 임용돼 경제학과 교수로 근무했으며, 2022년부터 런던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과거 보호주의를 통해 산업을 발전시켜 놓고 개발도상국에는 자유무역을 강요하는 위선을 폭로한 <사다리 걷어차기>로 ‘군나르 뮈르달’상, ‘바실리 레온티예프’상을 수상했다. ‘가진 자’가 아닌 시민의 편에 서서, 복잡한 경제 이론을 대중적인 언어로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그는 경제학자로서는 드물게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으며 진영 논리에 휘둘리지 않는 거침없는 논리 전개로도 화제를 불러일으켜 왔다. <사다리 걷어차기>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나쁜 사마리아인들> <국가의 역할>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 등 17권의 저서가 48개국에서 250만부 넘게 팔렸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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