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과천청사. 성동훈 기자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여론조사기관 평가 등급을 공개하는 ‘여론조사기관 등급제’ 도입을 추진한다.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 사건처럼 여론을 왜곡하는 일부 업체의 행태에 등급제로 제동을 걸겠다는 취지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선관위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여심위)는 이달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선거여론조사기관 평가제도 연구’ 결과를 반영해 여론조사기관 등급제 도입을 유력하게 검토할 방침인 것으로 13일 확인됐다.
연구용역의 주요 내용은 여론조사기관 평가제도에 대한 선행 연구 사례, 여론조사와 조사기관의 품질을 평가할 지표 개발, 조사기관 평가 주체와 운영 방안 등이다. 여심위는 오는 10월까지 연구용역을 마치고 11~12월 공청회에서 의견을 수렴해 내년 1월부터 제도화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등급이 아니라 점수를 공개하는 방안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간 부실 업체가 난립해 여론조사 결과를 왜곡·조작한다는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현재 공직선거관리규칙에 따라 여심위에 등록한 여론조사기관은 55곳이다. 여심위에 등록하려면 사회조사분석사 자격증을 가진 분석전문인력 3명을 포함한 5명 이상의 상근 직원을 갖추고 연간 1억원 이상의 여론조사 실시 매출액을 올려야 한다. 여심위가 지난해 4·10 총선을 앞두고 실태를 점검했을 당시 전체(88개)의 3분의 1에 달하는 30개 업체가 기준 미달로 등록이 취소됐다.
선관위는 등급제를 통해 자연스럽게 조사의 품질을 높이고 부실 기관을 퇴출할 수 있다고 기대한다. 등급제가 도입되면 여심위 등록 기준에 미달한 업체, 여심위 등록 의무가 없는 비공표용 여론조사를 주로 실시한 업체, 실제 선거 결과와의 오차가 큰 여론조사를 발표한 업체는 낮은 등급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 공천개입 의혹 사건의 핵심 인물인 명씨는 지난 대선과 주요 선거 경선에 실시한 각종 비공표용 여론조사를 조작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명씨가 실질 운영했다고 알려진 ‘미래한국연구소’는 여심위에 등록하지 않은 채 여론조사를 벌였다.
선관위 관계자는 “규제를 강화해 나쁜 여론조사를 걸러내기보다 유권자들이 좋은 여론조사를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려 한다”며 “언론이 여론조사의 옥석을 선별해 보도하고, 유권자가 조사 결과를 비판적으로 수용하면 여론조사기관도 자연스럽게 조사 품질을 높이려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