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지난 11일 정부서울청사 집무실에서 소말리아 아덴만 해역에 파병 중인 청해부대 44진 부대장 권용구 해군 대령과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에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의 대선 출마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공개적으로 표출되면서, 국민의힘 경선 구도가 크게 요동치고 있다. 특히 한 권한대행이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 이후 친윤석열계를 중심으로 모락모락 불거져 나온 ‘한덕수 차출론’에 일주일 넘게 직접 입장 표명을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대선 출마 가능성을 부채질하는 상황이다. 더불어민주당에선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대선을 관리해야 할 한 권한대행이 국정을 볼모로 대권을 저울질하고 있다”(김성회 대변인)고 비판했다.
“역사적 소임 앞에 국민 요구 부응해야”…국힘 ‘한덕수 차출론’에 한덕수는 침묵
국민의힘 중진(3선)인 성일종 의원은 13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역사적 소임 앞에 한 권한대행께서는 국민의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며 한 권한대행의 대선 출마를 요구했다. 이번 대선이 윤 전 대통령 파면 이후 극심한 갈등과 분열 속에 치러지는 데다, 미국발 상호관세 부과 및 미·중 패권전쟁 대응 등 산적한 경제·외교 현안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경험’ 많은 한 권한대행이 국민의힘 주자로 대선에 등판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성 의원은 애초 한 권한대행 출마에 공감하는 의원 50여명의 뜻을 모아 기자회견을 열려고 했으나, 경선 후보로 등록한 다른 후보들을 의식한 당 지도부의 자제 요청에 따라 개인 의견을 밝히는 식으로 한 권한대행의 출마를 요구했다.
한 총리는 이런 요구에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국무총리실 관계자는 “(국민의힘) 경선 등에 대해선 언급하는 게 적절치 않다”며 “총리도 아무 말씀이 없다”고 전했다. 한 권한대행은 국민의힘 일각에서 불거지고 있는 대선 출마 요구에 대해 일주일 넘도록 이렇다할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파면 닷새 만에 대선 불출마 입장을 명확히 한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특히 지난 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한 권한대행이 “여러 요구와 상황이 있어서 (대선 출마 여부를) 고민 중”이라고 했다는 내용이 보도된 이후, 한 권한대행이 오보 대응에 나서지 않으면서, 오히려 ‘대선 출마 가능성’에 더욱 무게가 실리는 모양새다. 지난 11일 공개된 한국갤럽의 정례 여론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 응답률 14.9%, 휴대전화 가상번호 방식)에서 한 권한대행은 오세훈 서울시장, 안철수 의원 등과 같은 2% 지지를 받으며 ‘장래 정치 지도자 선호도’ 조사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이 11일 대구 수성구 국민의힘 대구시당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오세훈 이어 유승민 경선 불출마 “국힘 반성·변화의 길 거부”
한덕수 차출론이 공개적으로 표출되면서 국민의힘 경선 판도 요동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12일 “지난 일주일 동안 당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참으로 아쉬움과 염려를 지울 수 없었다”며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데 이어, 유승민 전 의원도 이날 당내 경선에 불출마하겠다고 밝혔다.
윤 전 대통령 파면으로 치러지는 이번 대선을 앞두고도 당내 다수 의원들이 ‘내란 공범’ 의혹을 받고 있는 한덕수 차출론에 동조하는 분위기를 볼 때 탄핵 찬성에 앞장섰던 두 사람이 경선 통과 가능성이 어렵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유 전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보수 대통령이 연속 탄핵을 당했음에도 당은 제대로 된 반성과 변화의 길을 거부하고 있다”며 “(국민의힘이) 대선 패배를 기정사실화하고 패배 후 기득권에 집착하는 모습에 분노한다”고 했다.
두 사람의 불출마 선언으로 당내 경선은 주로 탄핵에 반대했던 의원들이 주도하는 분위기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국민의힘에서 지금까지 경선 출마를 선언한 주요 주자들을 보면, 한동훈 전 대표와 안철수 의원을 제외한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과 홍준표 전 대구시장, 나경원 의원 등은 전부 윤 전 대통령 탄핵에 반대해왔던 이들이다. 또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줄곧 윤 전 대통령의 ‘확성기’ 노릇을 자처해온 윤상현 의원도 이날 15일에 대선 출마를 선언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파면 당한 윤석열, 추종자 동원해 후계자 낙점 각본 가동”
정치권 안팎에선 한덕수 차출론을 두고 막후에서 당내 경선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윤 전 대통령 부부의 ‘각본’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가 애초 탄핵에 반대했던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과 나경원 의원 등을 후계자로 염두에 뒀다가, 이들에 대한 신뢰와 대선 승리에 대한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면서 한 권한대행을 등장시키는 쪽으로 선회했다는 취지다. 여기에 대선 이후 당권 등을 염두에 두고 있는 친윤석열계 의원 등이 동조한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친한동훈계 김종혁 전 최고위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탄핵 당한 전직 대통령이 추종자들을 동원해 사실상 후계자를 낙점하려 하고, 기득권을 수호하고픈 정치인들이 경선을 만지작거린다면 국민과, 당원과, 언론은 용납할까. 무엇보다 이재명과 싸움에서 이길 수 있을까”라고 비판했다.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도 이날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한덕수 차출론은) 나이 든 윤석열인 한덕수 대행을 내세워, 윤석열은 복권을 노리고 권성동은 당권을 노리고 한덕수는 팔십(80)까지 권력을 노리는 조잡하고 허망한 기획”이라고 비판했다. 김 최고위원은 “국민과 나라가 그리 만만하냐”며 “(이런 각본은) 윤석열 파면에 이어 결국 국힘 파장을 종칠 것”이라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