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 깨고 대흥행…저작권법 보호받기 힘들어 오픈AI만 천문학적 이익
창작권 보호 위해선 ‘AI 무분별 학습’ 규제가 답…각국 정부 입장 엇갈려
창작권 보호 위해선 ‘AI 무분별 학습’ 규제가 답…각국 정부 입장 엇갈려
최근 개인 사진을 일본 지브리 스튜디오 같은 특정 화풍으로 변환해주는 챗GPT 기능이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모았다.|연합외신
[주간경향] “이 사진 지브리 스타일로 그려줘.”
전 세계에서 명절 인사 등을 제외하고, 모두가 똑같은 말을 이토록 많은 사람이 동시에 사용한 때가 있었을까. 챗GPT를 이용해 일본 애니메이션 지브리 스튜디오 필터를 자신의 사진에 씌우는 일명 ‘지브리’ 사태 말이다. 특유의 선한 얼굴선, 복고적인 수채화 색감으로 표현된 자신의 모습에 모두 취했고, 전세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이 이미지들로 순식간에 도배됐다.
챗GPT 개발사 오픈AI의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4월 1일(현지시간) 이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26개월 전 챗GPT 출시는 제가 본 것 중 가장 폭발적인 바이럴 마케팅 중 하나였고, 5일 만에 사용자 100만명이 늘었습니다. (그런데 지브리로) 지난 한 시간 동안 사용자가 100만명이 증가했습니다.”
지브리 현상은 인공지능(AI)이 우리 일상에 얼마나 깊숙이 침투했고, 얼마나 빠른 시간에 확산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동시에 커다란 질문을 남긴다. 지브리 스튜디오는 앞으로 생존이 가능한가. 아니, AI가 게걸스럽게 창작물을 빨아들이고, 그 스타일을 순식간에 복제하는 세상에서 살아남는 창작자가 있을까. 답은 현시점에서 물음표다.
누구도 예상 못 한 ‘지브리 흥행’
챗GPT가 지브리로 소위 대박을 터뜨릴 줄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다. 국내 AI 개발업체 임원 A씨는 지난 3월 25일 공개된 챗GPT-4o 이미지 생성 기능에 대해 “긴 글을 입력하면 그래픽으로 단숨에 표현하는 이미지화, 즉 프레젠테이션 용도가 강화된 것이었다”며 “그런데 갑자기 지브리 사진으로 매출과 가입자가 폭등하는 대박이 터졌다”고 말했다. 손희정 문화평론가는 “필터를 씌운 내 모습이 나르시시즘을 자극하는 데다, 지브리 사진으로 하나의 세계로 이어지는 느낌에 기꺼이 사람들이 자신의 개인정보(사진)를 넘긴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사실 특정 스타일의 사진이나 그림을 만드는 기술은 이전에도 가능했다. 한때 AI를 이용해 미국 졸업사진 필터를 씌우는 사진 변형이 유행했듯 말이다. 이번에 발표된 챗GPT 새 모델은 텍스트와 이미지를 동시에 인식하는 멀티모달이 특징이다. 이 과정에서 AI는 명령의 맥락도 파악할 수 있게 돼 사용자의 구체적 지시 없이도 몇 마디 요구에 지브리풍의 예쁜 사진을 내놓게 됐다. AI가 지브리 스타일을 구현해내기 위해선 ‘토큰’ 단위의 학습이 필요하다. 알려진 데 따르면 챗GPT 토큰은 2020년 3000억개, 그리고 현재는 수조개가 넘는다. 바로 이 방대한 학습 데이터 안에 지브리뿐 아니라 고흐, 모네, 피카소와 같은 유명 화가부터 애니메이션 <짱구>, <심슨>, <귀멸의 칼날> 등과 같은 수많은 창작자의 작품이 포함돼 있다.
지난 3월 31일(현지시간) 이스라엘방위군(IDF)이 엑스(X·옛 트위터)에 ‘지브리’ 화풍으로 그려진 군인 이미지를 올렸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반전주의자로 유명한데, 전쟁을 미화한 이미지로 지브리풍이 무분별하게 사용됐다는 비판이 제기됐다.|이스라엘방위군 엑스 캡처
AI의 학습 ‘사전동의’는 원칙이지만
지브리 스타일 사진들이 4월 첫째 주 전 세계에서 쏟아질 때, 정작 그 화풍의 원작자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침묵했다. 일본 유명 애니메이션 <원피스>의 감독 이시타니 메구미가 “지브리가 싸구려 취급을 당하는 것을 견딜 수 없다”고 대신 비판한 정도다.
결론적으로 말해, 하야오 감독이 어떤 반응을 보이든 ‘화풍’에 그친 지브리 사진은 전 세계적으로 저작권법으로 보호받기 힘들다. 정지우 변호사는 “저작권법의 기본적 법리는 아이디어와 표현을 구분한다. 구체적 작품으로 표현되지 않는 추상적 콘셉트는 보호하지 않는다는 게 법리의 대전제”라고 말했다. 이는 스타일의 보호가 자칫 창작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일본 문화청은 더 노골적으로 이 문제에 입장을 밝힌 적이 있다. 2024년 3월 발표한 ‘인공지능(AI)과 저작권에 대한 고찰’ 보고서에서 “작풍, 화풍 같은 아이디어가 유사할 뿐 기존 저작물과의 직접적인 유사성이 인정되지 않는 생성물은 저작권 침해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스타일만으로 저작권을 문제 삼긴 힘들지만, AI의 ‘학습’이 법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는 있다. 오픈AI가 지브리 스타일을 구현하기 위해 사전 동의 없이 학습한 내용이 ‘공정 사용’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김명주 AI안전연구소장은 “AI가 저작물을 학습할 때 사전 동의는 원칙”이라며 “현재는 동의 없이 ‘공정 사용’이란 명목으로 AI가 학습을 하는데, 공정 사용의 취지와 다르게 인류나 미래에 도움이 되지 않고 빅테크만 돈을 벌면서 굵직한 소송이 미국에서 잇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다수의 언론 매체는 오픈AI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언론사들은 별도 구독료를 받고 독자에게 기사를 제공하는데, 오픈AI가 허락 없이 그 기사를 학습해 전달하면서 자체적 구독자를 잃을 위험에 놓였기 때문이다. AI에 불리한 판결도 나왔다. 지난 2월 미국 델라웨어 법원은 통신사 로이터가 법률 서비스 AI 로스 인텔리전스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AI의 학습이 공정 사용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로스의 데이터 사용이 상업적인 데다, 저작물을 무단 변형해 로이터의 잠재적 시장에 손해를 끼친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사후적으로 ‘공정 사용’ 여부를 따지는 제재 수단은 이미 수억개의 이미지가 배포된 순간 피해가 현실화한 지브리 스튜디오의 명예와 가치를 회복시키지는 못한다. 하야오의 작품은 2시간짜리 에니매이션을 만들기 위해 17만장 이상의 그림이 필요한 ‘전통적 수작업’ 방식으로 유명하다. 그런 그의 작품이 3초의 예술로 대량생산되면서 지브리가 지닌 독창적 예술로서의 가치는 사실상 실추됐다. 박권일 미디어사회학자는 SNS에서 “어떤 창작물의 고유한 스타일은 바로 그 고유함 때문에 가치 있는 것인데, AI 업계가 무차별적으로 그 스타일을 양산한다면, 고유성은 희석되고 진부화(obsolescence)된다”고 말했다.
지브리 스튜디오뿐만 아니라 사진을 올린 개인들의 초상권 침해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생성형 AI는 일반인 이미지와 동영상을 딥페이크로 만들 수 있어 언제든 사기나 허위정보 확산에 악의적으로 활용될 여지가 있다.
반면 오픈AI는 천문학적 이익을 가져갈 것으로 보인다. 데이터 플랫폼 기업 아이지에이웍스에 따르면 3월 27일 기준 챗GPT 국내 일간 활성 이용자 수(DAU)는 125만2000명에 달했다. 이는 3월 1일보다 56% 급증한 것이다. 3월 27일 이후로 지브리 스타일이 대대적 인기를 끈 것을 고려하면 이용자 수는 이후 급증세를 보인 것으로 추정된다. 브래드 라이트캡 오픈AI 최고운영책임자(COO)가 밝혔듯, 챗GPT-4o 출시 첫 주 이미지 생성 숫자는 이미 7억장을 돌파했다.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가 자신의 엑스(X) 계정에 올린 지브리풍 프로필 사진|올트먼 엑스 캡처
모든 데이터는 수집되기 위해 존재?
결국 창작자의 권리나 이용자의 초상권 침해를 막기 위해선 사후적 제재나 보상이 아닌, AI의 무분별한 학습부터 제재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귀결될 수 있다. 혁신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AI를 규제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각국 정부는 이에 대해 각각 입장이 갈린다.
유럽연합(EU)은 가장 강도 높은 규제를 신설한 상태다. 지난해 8월 발효된 AI법에 따라 올 8월부터 AI가 학습한 데이터의 출처를 모두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이러한 의무사항을 지키지 않을 경우 전 세계 연간 총매출액의 1.5%에서 최대 7%에 해당하는 금액이 과징금으로 부과될 수 있다. EU는 학술연구 목적 이외의 목적에 대해서는 저작권자의 옵트아웃(opt out)도 인정한다. 이미 학습됐을지라도 저작권자가 요구하면 학습된 내용을 지우도록 한다는 의미다. 반면 일본은 AI의 저작물 이용에 대해서는 아주 직접적 사용을 제외하곤 저작권자 허가가 불필요하다고 명시하고 있다.
국내에선 지난해 AI 기본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는데, 학습에 관련한 구체적 제재 내용은 담기지 않았다.
업계는 학습을 규제하는 데 강력히 반발한다. 기본적으로 데이터를 취득하는 과정에선 정부가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학습한 뒤 데이터를 사용할 때 저작권자가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는 게 업계 논리다. 국내 개발업체 임원 A씨는 “학습 단위에서부터 기술 격차가 생기기 때문에 여기에 규제가 들어온다면 앞서 나간 해외 AI에 우리 기술이 종속돼버린다”라며 “AI 주권은 최근 큰 화두인데 주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학습은 제재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B대학 경영학과 교수도 “한국이 전 세계적 지식재산권을 인정하는 베른협약에 가입한 시점이 일본보다 크게 늦는데 그게 한국이 일본보다 월등히 앞선 인터넷 기술력을 갖게 된 원인이었을 수 있다”며 “AI 산업이 초기이기 때문에 지금부터 강력한 저작권을 적용하면 AI 생태계 전반의 활성화를 저해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러한 반응은 자칫 ‘데이터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먼저 차지하는 사람이 임자’라는 ‘데이터 만능주의’로 비칠 수 있다. 케이트 크로퍼드 마이크로소프트 수석연구원은 저서 <AI 지도책>에서 “데이터를 추상적이고 비물질적인 것으로 간주하면 배려·동의·위험 등에 대한 전통적 이해와 책임에서 더 쉽게 벗어날 수 있다”고 했다.
AI 업계가 과거 ‘카피레프트’ 운동을 왜곡·모방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카피레프트는 1984년 자유소프트웨어연합(FSF) 창설자 리처드 스톨먼이 소프트웨어의 상업화에 대항하기 위해 내놓은 새로운 소유권의 개념이다. 소유권은 저자가 갖지만, 수정과 배포는 공공의 소유로 하자는 것이다. 손 문화평론가는 “데이터를 공유하는 것이 마치 기술과 정보의 평등을 부를 것이란 빅테크의 논리는 모든 진보적 의제를 집어삼키고 있다”라며 “AI 기술을 소유한 기업만 모든 가치를 독식하고 이윤을 남기고 나머지 일부의 삶은 편리해질 수 있지만, 또 다른 일부는 어느 것에서도 배제되는 사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AI의 저작권 문제는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 김 소장은 “이미 사람들이 AI를 이용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면서 지난 2년 사이 많은 창작물에 AI가 만든 것과 아닌 게 섞여있다”며 “저작권 문제는 더 복잡한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