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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옆의 노동]③특수교육 실무사
교사 보조하며 장애 학생들의 손과 발 돼
특수학교에서 아이 곁 지키며 교육 지원
"'꿀 직업'? 힘들어서 그만두는 사람 많아"
"장애 학생 속도에 맞춰 기다리는 게 주업"
"배변 실수 처리 때도 아이 마음 헤아려야"

편집자주

전문적이지 않은 직업이 있을까요? 평범하고도 특별한 우리 주변의 직장·일·노동. 그에 담긴 가치, 기쁨과 슬픔을 전합니다.
지난 8일 서울 관악구의 정문학교에서 특수교육 실무사들이 돌봄교실에서 학생들과 함께 놀이를 하고 있다. 최주연 기자


노동자의 손은 정직하다. 고되지만 보람있는 일의 흔적이 고스란히 패어 있다. 30년째 교편을 잡아온 김애리사(53) 교감은 지난 8일 학교를 찾아온 기자에게 “저 선생님들의 손을 한 번 보시라”며 한쪽을 가리켰다. 박경자(55), 김윤영(44), 전승호(37)씨가 있었다. 김 교감이 말을 이어갔다.

"이 일 하시는 분들은 손에 상처가 많아요. 아이들이 투정하다 낸 거죠. 그만큼 애정을 가지고 일했다는 증거인 겁니다."


김 교감이 소개한 세 사람은 서울 관악구의 특수학교인 정문학교에서 장애 학생들을 돌보는 특수교육 실무사들이다.

등교 종이 울리면 온 신경이 곤두선다



보통 한 학급당 학생이 28명 이상 되면 ‘콩나물 교실’(과밀학급)이라고 한다. 하지만 특수학교는 사정이 다르다. 한 반에 6명(초등∙중학교 기준)이 적정 학생 수다. 그만큼 손 가는 일이 많다는 얘기다. 수업을 ‘2인3각’으로 진행해야 하는 이유다. 특수교사가 수업을 이끌지만 실무사도 반별로 배치돼 아이들 곁에서 손발이 돼 준다.

“그냥 애들이랑 놀아주면 되는 '꿀직업' 아니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대학병원 등에서 근무하다 4년 6개월째 실무사 일을 해온 박경자씨가 애써 방긋 웃어 보였다. 예쁜 아이들과 종일 보내니 좋은 직업일 수 있지만 결코 편하거나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전승호씨는 “1년 중 방학을 빼고 10개월 정도만 일한다는 점만 듣고 이 일을 시작했다가 힘들고 벌이도 적어 택배나 배달, 대리운전을 하는 게 낫겠다며 그만두는 남성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정을 붙일 만하면 실무사들이 바뀌니 아이들도 눈치를 채고 마음을 주지 않으려 하기도 한다.

정문학교 실무사들의 하루는 오전 8시 40분, 160명의 학생이 탄 스쿨버스 다섯 대가 교정에 들어서면 시작된다. 아이들이 도착했음을 알리는 노래 소리가 학교 스피커에서 나오면 온 신경이 곤두선다.
실무사에겐 관찰이 주업이다.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발달장애 학생들의 감정과 욕구를 살피려면 모든 감각을 동원해야 한다.
표정과 몸짓, 말투는 물론 아이들이 풍기는 기운에도 주목한다. 김윤영씨는 “아이마다 자신의 마음 상태를 표현하는 고유의 몸짓이 있는데 이를 잘 이해하고 뭘 원하는지 빨리 알아채는 게 실무사의 실력”이라고 말했다.

돈을 많이 벌지도, 노동 강도가 약하지도 않은 직업. 하지만 아이들이 밝게 웃으며 안기는 그 순간의 기쁨이 이 직업의 매력이다. 서울 관악구 정문학교의 특수교육 실무사인 전승호(37), 김윤영(44), 박경자(55)씨가 지난 8일 학교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박씨는 대학병원 등에서 오래 일했고, 김씨는 보육교사로 근무하다 실무사가 됐다. 전씨도 개인 사업 등을 하다 올해부터 정문학교에서 근무하기 시작했다. 최주연 기자


특수학교에서는 같은 학년, 같은 반 교실의 학생이라도 과업 수행 능력이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한 명, 한 명 눈높이를 맞춰가며 수업한다. 예컨대 문제는 이해하는데 연필을 못 잡는 아이라면 실무사들이 아이의 손을 잡고 함께 글을 써준다. 가위질, 풀칠 실력도 각자 다르기에 능력에 맞춰 거든다. 그날따라 우울한 아이가 있다면 기분부터 나아지게 도와야 한다.

하지만
아이의 속도를 절대 앞지르려 하면 안 된다.
박씨는 “우리가 가장 잘하는 건 기다리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글쓰기든, 가위질이든 학생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한계까지 지켜보다가 정말 안될 때 손을 빌려준다.
아이가 어른의 도움 없이 홀로 설 수 있도록 돕는 것. 특수교육의 목표가 여기에 있기 때문
이다.

정말 아이들이 달라질까. 실무사들도 처음 일을 시작할 땐 반신반의한다. 하지만 기다림 끝에 아이들이 변했음을 한 번, 두 번 확인하면서 의심은 확신으로 바뀐다. 전씨는
우리 아이들은 거북이의 속도로 성장하지만 주변의 믿음만 있다면 결국 목적지에는 도착하고야 만다
고 했다. 김씨도 잊지 못할 경험을 공유했다.

“지난해 초등 1학년을 맡았는데 한 교시(40분) 동안 못 앉아 있는 아이들이 많았어요. 한 학기 내내 힘들어하는 친구도 있었죠. 담임 선생님과 상담해 가며 색칠 공부, 인형놀이 등 아이들마다 좋아하는 일을 파악했죠. 수업 시간에 잘 앉아 있으면 쉬는 시간엔 함께 놀이하겠다고 약속하고 지켰어요. 시간이 지나자 아이들도 규칙을 이해하고 말을 잘 따라줬죠.”

특수학교 근무자들이 겪게 되는 특별한 고충도 있다. 교실에서 배변 실수를 한 아이들의 뒤처리를 해주는 업무가 대표적이다. 특히 전교생의 75%가 남학생인데 반해 남성 실무사는 2명(전체 20명)뿐이라 전 씨는 용변 처리를 자주 맡는다. 실무사 일을 한 지 2개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제 아이들이 표정 등으로 보내는 긴급신호를 읽고 화장실까지 바래다 준다고 한다.

"
배변 실수
를 한 아이들을 도울 때도 마음을 잘 헤아려야 해요. 어떤 아이는 수치심을 크게 느껴 우울해하거든요.
제가 난감해하면 더 낙심할 수 있으니 표정관리부터 잘 해야 하죠
."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는 아이들을 달래야 하는 일도 매번 어렵다. 감정 표현에 서툰 아이들이 할퀴는 일이 종종 있어 김 교감이 말한 것처럼 손에 상흔이 남은 실무사가 많다. 하지만 아무 악의 없는 행동임을 알기에 마음의 상처를 깊게 입지는 않는다고 한다.

"편견 없이 아이를 사랑한다면 해볼 만한 직업"



장애 학생들을 돌본 뒤 삶이 달라진 건 없을까. 김씨는 이전에는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
버스를 탔을 때 혼자 중얼거리는 학생
들이 간혹 있잖아요. 예전에는 '왜 저럴까' 생각했는데 이제는 이해가 되는 거예요.
발달장애가 있는 아이인데 혼자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는 연습을 해보는 거
죠. 이 노선을 타고, 어디까지 가서 어떤 버스로 갈아타야 하는지 홀로 끊임없이 말해보며 외우는 겁니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애쓰는 모습이 참 기특해 보이죠."

인구 절벽에 부딪힌 우리 사회에서 유일하게 학생 수가 늘어나는 교육기관이 특수학교
다. 지난해 특수교육 대상 학생은 11만5,610명으로 1962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많았다. 실무사들의 역할도 그만큼 많아졌지만 행정에서 지원해주는 속도는 더디다. 홍용희 정문학교 교장은 "서울은 실무사가 1.5학급당 한 명꼴로만 배치된다. 한 학급당 1명도 안 되는 셈"이라며 "사회복무요원이 일을 돕기는 하지만 실무사가 두 명은 있어야 교육이 되는 반도 있어 인원을 더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픽=강준구 기자


특수교육 실무사들은 최저 임금 수준의 급여를 받는다. 그나마 방학 중에는 벌이가 끊긴다. 학생이 학교에 없기에 지원 업무를 할 수 없는 탓이다. 교육 공무직 중 방학 때 급여를 받지 못하는 직종은 특수교육 실무사와 급식 조리직 정도다. 이 때문에 방학을 앞두고는 1, 2개월 정도 할 아르바이트 자리를 급히 알아봐야 한다. 김씨는 "맞벌이라면 몰라도 이 일로 온전히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실무사라면 교육청에서 연수 프로그램을 만들어 교육 받게 하거나 다른 일거리를 제공해 최소한의 벌이는 보장해야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돈을 많이 벌지도 못하고, 노동 강도가 약하지도 않은 직업. 그럼에도 실무사들이 버티는 건 그들의 수고로움을 인정해주는 주변의 작은 격려 덕이다.

"장애에 대한 편견 없이 아이들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이 직업을 추천하고 싶어요. 아이들의 행동을 사랑할 마음이 있어야 하죠.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을 곁에서 응원하는 건 말 못할 보람입니다."김윤영 실무사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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