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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산문집 낸 배우 김지호
첫 산문집을 출간한 배우 김지호. 그는 “10년 전부터 요가와 명상에 빠져 매일 꾸준히 노력했다”며 “조금씩 나아지는 나를 보며 스스로를 칭찬하는 방법을 알게 됐다”고 한다. 김정훈 기자
“하루에 한 번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며 살 수 있다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이상한 말 같지만, 좋아하는 일에 잠깐이라도 몰두하다보면 마음이 착해진다. 주변에도 더 관대해진다.”
배우 김지호의 첫 산문집 『마음이 요동칠 때 기꺼이 나는 혼자가 된다』 속 한 문장이다. 김지호는 “마음이 요동칠 때마다 기꺼이 혼자가 되기를 선택했고, 그 방법이 요가 수련이었다”고 이야기한다.
환한 미소가 매력적인 배우 김지호는 건강한 이미지의 대명사 같은 배우다. 그런 그가 나이 50을 넘어서면서 처음 낸 산문집을 통해 배우로서 마음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고 처음 고백한다.
“방송을 시작한 건 대학교 2학년 때였어요. 평범한 회사원을 꿈꾸던 영문과 학생이 방청 아르바이트를 하면 5만원을 준다는 말에 혹해서 갔다가 프로필 사진 한 번 찍어보자는 제안에 가벼운 마음으로 응했죠. 이후 ‘어
남에게 평가받는 일을 한다는 건 쉽지 않았다고, 그래서 점차 일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을 경계했다고 한다. 데뷔한지 28년. 방송 현장에선 벌써 ‘선생님’이라고 불릴 만큼 긴 시간이 흘렀지만 의외로 김지호가 출연한 드라마·영화 숫자는 많지 않다. 열심히 도망쳤기 때문이다.
“잘 하고 싶은데, 내 연기에 내가 만족할 수 없으니까 매번 안 할 이유를 찾았죠. 들어오는 드라마 대본이나 방송을 죄다 거절하고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사라지고 싶었어요.”
배우 김지호 대신 엄마로 살기를 택했지만 아이는 점점 커갔고 그만큼 혼자 있는 시간이 늘었다. 그 시간을 보낼 방법을 찾던 10년 전, 그는 ‘요가’를 시작했다.
“뭔가 집중할 게 필요했는데 주변에서 ‘넌, 체대를 갔어야 했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운동을 좋아해서 궁리를 하다 보니 매트와 내 몸과 의지만 있으면 어디서든 할 수 있는 요가가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책에는 동네 요가원 그룹수업 맨 뒷자리에서 물구나무서기·코브라자세 등을 배우며 다치고, 아파서 끙끙대며 잠 못 이루고, 다시 도전하는 과정들이 세세하게 담겨 있다. 팔·다리는 얇지만 배는 늘 볼록한 체형 때문에 브라톱 입는 게 쑥스러웠다고, 매니저가 ‘제발 그만 먹으라’고 울면서 호소할 만큼 먹는 걸 좋아하는 체질이지만 어느새 아침 공복을 즐기고 간헐적 단식이 자연스러워졌다고.
그런데 책장을 넘기면서 요가동작 이름보다 더 눈에 들어오는 건 중년의 위기를 겪으며 불안하고, 외롭고, 두렵고, 우울했던 날들의 담담한 고백이다. 그 시간들을 진지하게 고민하며 늙어가는 몸과 상처받은 마음을 들여다보고 “괜찮다, 괜찮다” 스스로를 다독이며 치유하는 과정들이 읽힌다.
“남에게 속을 잘 털어놓지 못하는 스타일이라 답답한 마음을 글로 풀어보곤 했어요. 그러다 3년 전부터 인스타그램을 시작했죠. ‘나’라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고, 너무 오랫동안 일을 쉰 터라 ‘김지호 아직 안 죽었다’(웃음) 하는 마음에 시작했는데 온통 요가 이야기만 하게 됐죠. 그런데 그 짧은 글들에 댓글이 달리는 거예요. ‘우리도 시작할 수 있을까요
잘 하고 싶은데 잘 하지 못할 것 같아서 미리 도망치고, 남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시도조차 안 하고, 지금에 충실히 머물지 못하고 앞날을 걱정하거나 지나간 과거를 떠올리며 후회하고.
“마음이 요동칠 때마다 저는 요가와 명상을 했어요. 몸에서 힘을 빼고 하나씩 해보는 거예요. 나만 바라보기, 나에게만 집중하기, 떨어져서 바라보기, 머물기, 참아보기, 기다려보기, 칭찬해주기. 고요 속에 머물면서 나를 차분하게 해주고 인내하게 하는 시간을 가졌죠. 내 안의 진짜 나에게 귀를 기울이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걸 느낀 거죠. 매트 위에서 혼자 머물며 호흡하고 생각하고 부딪치고 속상해하고 욕심도 내보고 질투도 해보고. 힘 빼고 그냥 하면 다 되는데, 삶도 똑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는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다 내 인생의 조력자라는 생각을 하면 ‘관계’도 쉬워진다”고 했다.
“남편(배우 김호진)은 밤에 잠자기 전 반드시 개수대의 그릇을 정리할 만큼 꼼꼼해요. ‘너는 왜 그릇을 안 집어넣니
책속에는 이런 대목도 나온다. 40대 중반이 되니 한 번에 두 개가 잘 안 된다고. 휴대폰 들고 휴대폰 찾고, 방에 들어가서 내가 왜 여기에 왔는지 생각하게 되고. 그래도 우리가 용하게 집을 찾아온다고. 이 대목에선 중년의 독자 누구라도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까.
“걱정해봐야 쓸데없는 일들은 그냥 내려놓고 신경 안 쓰는 기술이 생겼달까.(웃음) 요가를 하면서 얻은 것은 뭔가를 규칙적으로 꾸준히 해내는 것만으로도 스스로를 격려하기에 좋다는 거예요. 사소하고 작은 성취감이라도 쌓일수록 내가 썩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매일이 아니어도 괜찮아요. 조금씩 좋은 걸 나에게 선물해주고 나에게 만족하는 시간이 있다는 것,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는 게 얼마나 멋져요! 잘 하지 않아도 돼요. 그냥 하는 거예요. 어른이 된 우리가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때때로 기꺼이 혼자임을 완전히 누리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