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옷·수건·양말 프리미엄화
가격대 올라가고 디자인도 다양
취향소비·디깅소비 트렌드 영향
일상의 여가화…평범함 속 특별함 찾아
온라인 선물 시장 커진 것도 한몫
플랫폼 큐레이션 영향력도 중요해져
성수동은 요즘 제일 ‘힙한 동네’다. 국내외 브랜드의 테스트베드이자 ‘트렌드의 바로미터’다. 패션, 뷰티 등 최신 유행은 모두 여기서 탄생한다. 이런 성수동에서 의외로 쉽게 만날 수 있는 매장이 잠옷, 수건, 양말의 브랜드 매장과 편집숍이다. 3층 규모의 한 수건 매장은 한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까지 끌어들인다.
가격대 올라가고 디자인도 다양
취향소비·디깅소비 트렌드 영향
일상의 여가화…평범함 속 특별함 찾아
온라인 선물 시장 커진 것도 한몫
플랫폼 큐레이션 영향력도 중요해져
온라인도 비슷하다. 2030세대가 자주 사용하는 쇼핑 플랫폼에서는 수건과 잠옷 브랜드를 적극적으로 띄우고 있다. 수건과 양말은 과거 돈을 쓰지 않던 제품이었다. 집집마다 ‘OO 첫돌’ 또는 ‘OO 축 환갑’ 등의 문구가 적힌 수건이 있었고 잠옷 대신 늘어진 반팔티를 입는 게 일상이었다.
하지만 이 수건, 양말, 잠옷이 최근 취향의 영역으로 들어오면서 생필품도 ‘패션 제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가격대보다는 ‘내 마음에 드는 제품’을 원하는 젊은층이 많아진 결과다.
◆ 성수동 한가운데 ‘수건’이…확 바뀐 송월타월 디자인성수동에 도착하면 패션부터 뷰티까지 다양한 브랜드의 ‘플래그십 스토어’가 있다. 플래그십 스토어는 브랜드의 가치를 보여주는 쇼룸에 가깝다. 소비자들에게 직접적으로 브랜드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수건’만 판매하는 매장이 있다. 국내 브랜드인 ‘테토’의 플래그십 스토어다. 총 3층 규모의 매장에 다른 품목은 없다. 오로지 수건만 판다. 테토는 스타트업 제너럴컬러에서 2023년 론칭한 하이엔드 타월 브랜드로 모든 제품에 수피마 원단을 사용하는 게 특징이다. 온라인 매출이 늘자 지난해 4월 빠르게 플래그십 스토어까지 열었다. 테토를 론칭한 김응혁 제너럴컬러 대표는 수건 시장의 가능성을 보고 브랜드를 론칭했다.
테토 수건의 대표 디자인은 ‘쨍한 단색’이다. 빨간색부터 보라색까지 단색 7가지와 여러 색을 조합한 줄무늬 제품 5개가 테토의 ‘기본템’이며 이외에도 살구·크림·버건디·머스타드·딥그린 등의 색상도 있었다. 종류도 다양하다. 샤워용 수건, 핸드타월, 발매트 등 사용 방식에 따라 세분화했다.
이 가운데 특이한 카테고리는 ‘오브제(일상적인 물건을 예술작품으로 활용) 수건’이었다. 형형색색의 수건을 겹겹이 쌓아 오브제로 활용하라는 의미다. 테토는 이 같은 수건을 ‘생활 속 작은 예술작품’이라고 표현하며 단순한 기능 이상의 역할을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매장에는 한국인뿐만 아니라 중국인과 일본인 등 관광객들도 많았다. 포털사이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성수동 가볼 만한 곳’으로 테토 플래그십 매장이 언급되면서 외국인 방문이 늘어났다. 테토 매장 외에도 성수동에는 잠옷과 양말을 주로 판매하는 다양한 소품숍이 곳곳에 있었다.
코엑스 전시박람회에서도 수건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온라인쇼핑 플랫폼 29CM는 4월 2일 코엑스 본관 2층 더 플라츠홀에서 ‘인벤타리오: 2025 문구 페어’를 개최했다. 약 700평 규모에 총 69개 브랜드가 참여했다. 29CM는 ‘도구와 이야기를 수집하는 거대한 저장소’라는 콘셉트로 문구 브랜드를 한자리에 모았다. 특이한 것은 전시관 가운데 가장 큰 규모로 설치된 부스의 핵심 판매 제품이 문구류가 아닌 수건과 양말이었다는 점이다.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웜그레이테일’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웜그레이테일은 국내 수건 시장점유율 1위이자 74년 역사의 송월타월과 협업해 10가지가 넘는 디자인이 적용된 컬러 수건을 선보였다. 그 옆으로는 양말 전문 브랜드 삭스타즈와 함께 선보인 다양한 양말이 전시돼 있었다.
인기도 많았다. 관람객들은 마음에 드는 양말을 골라 계산대로 직행했고 전시된 수건을 촬영하기 위해 앞사람이 사진 찍는 것을 기다리기도 했다.
수건만 판매하는 부스도 있었다. 전시관 끝쪽에 자리 잡은 수건 큐레이션 브랜드 ‘더그란’이었다. 더그란은 부스 전체를 핑크톤으로 통일하고 하늘색과 핑크색의 수건을 핵심 제품으로 내세웠다.
29CM 관계자는 문구페어에 수건 브랜드가 포함된 이유에 대해 “사무용품 중심의 문구 시장이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개인 수요 시장으로 재편되고 있어서 수건도 문구류의 핵심 품목으로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 ‘패션’ 입히자 ‘오브제’가 된 생필품수건뿐만 아니라 양말과 잠옷 등도 패션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이는 △취향소비(또는 디깅소비) 확산 △온라인 선물시장 확대 등의 영향이다.
취향소비는 새로운 소비 트렌드가 됐다. MZ세대는 자신의 취향과 감성에 부합하는 제품의 정보를 얻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며 제품의 정보를 찾는 과정 자체를 즐기는 특징이 있다. 남들이 많이 산다거나 저렴한 가격은 구매의 이유가 되지 못한다. 취향소비가 자리 잡으면서 생필품에도 패션이 적용되고 있다.
또 온라인 선물시장이 활성화되면서 라이스프타일 제품의 소비가 늘어난 것도 이유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온라인 선물하기 시장은 2016년 8000억원 수준에서 2022년 5조원으로 확대됐고 2027년 10조원 규모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선물 수요가 늘어나면서 실용성에 특색이 더해진 리빙·인테리어 제품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패션 플랫폼 무신사에서 올해 1~3월 수건의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96% 늘었다. 잠옷은 같은 기간 30% 늘었다. 양말은 비슷한 수준으로 판매되고 있다. 수건의 인기가 늘어나자 무신사는 △더그란 △디어리얼 △테리파머 △테토 △TWB 등 수건 전문 브랜드를 연이어 입점시켰다. 오끼뜨, 조스라운지 등의 잠옷 브랜드는 이미 무신사의 인기 브랜드로 올라섰다.
무신사 관계자는 “최근 일상에서 자주, 오래 사용하는 아이템에도 취향을 반영하려는 고객들이 늘고 있다”며 “이러한 영향으로 컬러와 패턴으로 브랜드만의 개성이 드러나는 디자이너 브랜드의 잠옷, 양말, 수건 등이 판매 호조를 보이는 추세다”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패션 플랫폼 W컨셉에서도 잠옷의 판매(1~3월)는 전년 동기 대비 25% 늘었고 수건 등 욕실용품은 47% 증가했다. 양말은 10% 늘었다. 최근 1년간 파마자 세트 판매는 전년 대비 115% 급증했다. W컨셉 관계자는 “소비자 취향이 파편화되면서 개인의 일상에서도 대중적인 상품보다는 개성을 나타내고 자기 만족감을 높이는 상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며 “수건, 양말 등 생필품 영역에서도 개인의 취향을 반영한 소비가 확대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말 리브랜딩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자주’도 이 같은 트렌드의 영향으로 파자마 제품군 매출(1~3월)이 전년 동기 대비 22.5% 늘었다. 자주 파자마는 기존 ‘잠옷’ 하면 떠오르던 ‘잘 때만 입는 실내복’, ‘늘어진 목과 밋밋한 스타일’, ‘내복이나 속옷으로 분류됐던 홈웨어’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차별화된 디자인과 세련된 색상, 고급 소재를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최근 10년 누적 판매량은 1800만 장에 달한다.
자주 관계자는 “최근 20~30대는 가장 개인적이면서도 사적인 아이템으로 분류되는 잠옷이나 양말 등에 비용을 아끼지 않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고물가, 경기침체 속에서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생활 속에서 만족감을 얻을 수 있고 남들과 다른 독특함으로 개성을 표현할 수 있어 인기다. 지난 2월부터 자주 파자마에 커스터마이징 이니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직접 착용하는 경우는 물론 특별한 선물용으로도 자수 서비스가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