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규 법제처장, 조국 조국혁신당 전 대표. 한겨레 자료사진
“여러분 다 들으셨겠지만 제가 지금 거의 일방적으로 공격을 당하고 있지 않습니까?…물론 제가 지금 변호인 신문참여권이 도입된 방향이나 또는 수사기록 열람·등사에 관해서 입법이 되었는데 그 방향에 대해서 그르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그런데 그 방향이 옳다는 것과 그것이 헌법적 수준이냐는 다르지 않으냐? 제가 질문드리는 것입니다.”
2007년 12월7일 저녁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2층 회의실. 헌법실무연구회 월례발표회에 발표자로 참석한 이완규 검사가 토론자들의 집단 반박에 불만을 터뜨렸다.
헌재가 운영하는 헌법실무연구회는 헌법 이론과 실무적 쟁점을 두고 헌법재판관·헌법연구관 외에 판사·검사·변호사·법학교수 등이 매월 특정 주제를 정해 토론회를 연다. 이날 주제는 그해 전면 개정돼 2008년 1월 시행을 앞둔 형사소송법이었다. 공판중심주의에 더해 △피의자신문에 변호인 참여권 △공소제기 후 검사가 보관하고 있는 서류의 열람·등사권이 신설되자 검찰이 강하게 반발하던 때였다. 대검찰청 검찰미래기획단 소속인 이완규 검사는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에 대한 헌법재판소 해석방법에 관한 검토’ 발표문에서 변호인 참여권 등을 헌법적 권리로 본 헌재 판례를 법 해석론과 수사 실무상 어려움 등을 들며 비판했다.
반론이 쏟아졌다. 지정토론자는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전 조국혁신당 대표)였다.
“발표자의 논지는 과거 여러 재판에서 피의자신문 시 변호인 참여권과 수사기록 열람·등사 청구권 인정을 거부해 온 검찰 입장과 동일하다. 검찰은 피의자·피고인의 절차적 권리를 강화하려는 입법은 물론 이를 위한 대법원과 헌재의 적극적 해석에 대해서도 줄곧 반대해왔다.”
조국 교수는 또 “발표자는 체포·구속된 피의자·피고인의 변호인과의 자유로운 접견교통권은 ‘절대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는 헌재의 결정에 불만을 표한다. 그러나 권위주의 체제 아래 만연했던 변호인과의 접견교통권에 대한 침해 관행이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를 절대적으로 보장하는 판례 태도는 계속 견지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날 이완규 검사는 ‘변호인을 옆에 두고 조언과 상담을 구하는 것’이라는 헌재의 변호인 참여권 판단에 대해 “변호인을 피의자 뒤에 좌석하게 하면 이것도 위헌일까” “개정 형사소송법에서는 피고인신문 시에 피고인이 변호인으로부터 떨어져 법대 정면 증인석으로 나와 답변하게 했는데 이것도 위헌일까” 등 변호인 참여의 헌법적 본질을 벗어난 말꼬투리 잡기식 주장을 펴기도 했다.
조국 교수는 토론에서 “피의자신문과 피고인신문을 계속 같은 급에서 비유하고 있는데, 피고인신문은 기본적으로 법정에서 판사 앞에서 하는 것이고, 피의자신문은 검사가 주도해서 하는 것이다. 피의자신문에는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데 피고인신문에서는 왜 못 하느냐, 이거는 비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검사와 판사를 ‘동급’으로 놓고 보는 이완규 검사의 시각을 꼬집은 것이다.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완규 법제처장이 더불어민주당 장경태 의원의 질의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1992년 헌재는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에 구속된 피의자가 변호인과 접견할 때 안기부 수사관 5명이 대화 내용을 듣고 기록한 것은 헌법의 변호인 조력권을 침해한 것이라며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이완규 검사는 이 판례를 언급하며 “법률로도 제한할 수 없는 절대적 권리로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날 지정토론자 중에는 김진한 헌법연구관(윤석열 국회 탄핵소추대리인단)도 있었다. 김 연구관은 “급박한 공익을 위해 일정한 제한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헌재 결정 취지는 발표자 지적처럼 절대적 권리로 인정한 것이 아닌 국가권력 내지 법 집행 공무원이 피의자·변호인의 대화 내용을 듣는 등 접견내용 비밀을 침해함으로써 자유로운 접견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라고 반박했다.
이완규는 바뀌지 않았다
17년 뒤인 2025년 4월, 헌법적·민주적 정당성이 박탈된 ‘윤석열 정부’의 법제처장 이완규는 돌연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지명됐다. 권한 없는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의 지명으로 헌법재판관 후보자 본인이 위헌소송 대상이 되는 촌극을 빚고 있지만, 국회에 나와 “헌법재판관이 되고 싶다“ “잘 할 수 있다”는 주장을 당당히 하는 뻔뻔함으로 보는 이들을 아연하게 했다.
2005년 서울대 법대에서 ‘검사의 지위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검찰 수사권 사수의 최전방에서 법원·경찰·공수처 등에 맞서는 ‘검찰 이데올로그’로 통한다. 2003년 3월 고 노무현 대통령과 검사들과의 대화에서 ‘검찰 인사는 검사가 잘 안다’며 대통령 인사권을 공격하던 검사 이완규의 검찰 지상주의자 모습은 뚜렷이 각인돼 있다. 2011년 검경 수사권 조정 때는 검찰 지휘부 태도에 반발해 사표를 냈지만 반려되기도 했다. 2020년 펴낸 ‘2020년 검찰개혁법 해설’ 등을 통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명백한 위헌”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헌재는 2021년 1월 공수처법 합헌 결정을 하며 공수처 검사의 영장청구권도 인정한 바 있다.
그는 검찰 수사에 대한 사법적 통제 강화에 ‘수사 실무’ ‘수사 방해’ 등을 이유로 부정적 입장을 취하는 여러 평석 등을 써왔다.
‘영장에 의해 취득한 통신사실확인자료 증거사용 제한 규정의 문제점’ 평석(2018)에서는 “적법하게 취득한 통신사실확인자료의 증거사용을 제한해야 할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 “입법론적으로 매우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판단이 행해질 가능성이 상존한다” “증거사용 허용 여부가 재판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에 비춰 보면 부적절하고 위험하다”는 주장을 펴며 대법원 판례를 비판했다.
수사 편의를 강조하는 논문도 썼다. ‘디지털 증거 압수 절차상 피압수자 참여 방식과 관련성 범위 밖의 별건 증거 압수 방법’ 평석(2015)에서 “혐의사실과 무관한 별개 범죄 증거를 발견한 경우 법원으로부터 별도의 범죄 혐의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에 비판적으로 접근했다. 디지털 증거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실무적·현실적 이유를 들어 피압수자의 참여권 보장 등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드러낸 것이다. 특히 혐의와 무관한 정보를 삭제하지 않고 수사기관이 보유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현실과 괴리될 뿐만 아니라 실무가 운영될 수 없게 된다”고 비판했다.
1988년 헌재 설립 뒤 검사 출신 헌법재판관은 56명 중 9명에 그친다. 부당한 국가권력 행사로부터 시민 기본권을 지키는 최후 보루인 헌법재판소에 유죄 입증이 최우선인 검사 출신을 두는 것에 대한 반성적 고려도 작용했을 것이다.
헌법연구관을 지낸 노희범 변호사는 “검사 출신 중에도 훌륭한 재판관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완규 처장의 그간 발언 등을 보면 철저한 검찰주의자의 모습이다. 검사는 헌법기관이며 검찰청법의 검사만 검사라고 주장한다. 사고 체계나 주장 내용이 한쪽으로 쏠려있다”고 지적했다.
헌법학계에서는 이완규 처장의 재판관으로서의 능력이나 자질은 부차적이라고 본다. 지명 자체부터 위헌 분쟁을 부르는 상황에서 임명을 강행할 경우, 6년 임기 내내 헌법소송 정당성을 끊임없이 무너뜨리게 된다는 것이다. 노 변호사는 “헌법적 분쟁을 해결해야 할 사람이 헌법적 분쟁 당사자가 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임명 절차부터 재판관 자격까지 위헌 논란이 따라붙은 사람에게 재판을 받는다면 당사자들로서는 그 결정에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고, 헌재 결정의 권위와 신뢰 역시 위협받게 된다. 사퇴하고 차기 대통령이 지명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