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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의전화·한국성폭력상담소가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서울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故) 장제원 전 국민의힘 의원의 성폭력 사건 조사 결과를 발표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사진 한국성폭력상담소

성폭력 혐의로 수사를 받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장제원 전 국민의힘 의원에 대해 경찰이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을 마무리할 방침이다. 이에피의자 사망을 이유로 한 수사 종결 관행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의전화 등 여성단체는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서울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장 전 의원 사건 피해자 이윤슬(가명)씨의 입장문을 대독했다. 이씨는 입장문을 통해 “가해자의 죽음으로 이 사건이 끝나서는 안 된다”며 “온전히 가해자의 손에 의해 모든 것이 시작되고 마무리되는 것을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참담하다”고 했다. 이씨의 변호인 김재련 변호사는 “가해자의 사망이 기소 여부엔 영향을 줄 수 있지만, 범죄 판단에 장애가 돼선 안 된다”며 “경찰은 수사 기록을 발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피의자 사망으로 인한 ‘공소권 없음’ 수사 종결은 그간 관행처럼 이어져 왔다. 형사사법절차의 기본 목적인 국가의 형벌권을 실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14년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세월호 참사 관련 사건, 2020년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도 피의자 사망으로 인해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됐다. 2021년 한 30대 여성이 피해자인 살해·유기 사건에서도 60대 피의자의 범죄 혐의를 입증할 만한 증거가 수사 과정에서 나왔지만, 당시 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피의자가 극단 선택을 하면서 공소권 없음 처분됐다.

수사기관은 통상 피의자가 사망하면 피의자의 방어권이 사라진다는 이유로 수사를 종결한다. 그러나 이는 피해자의 권리와 피해 회복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2018년 배우 조민기씨 성폭행 사건을 고발한 송하늘(30)씨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피의자의 사망은 모든 것을 ‘올스톱’ 시킨 최후의 일격이었다”고 했다.

조씨 사망 이후 수사는 종결됐고, 송씨에게 남은 건 피해 사실과 죄책감뿐이었다. 자신의 이름조차 이야기하기 어려웠던 송씨가 다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데엔 5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는 “장 전 의원 사건을 지켜보며 다시금 무력감이 밀려왔다”며 “가해자가 사회적 명예를 지키기 위해 극단 선택을 하는 걸 방조하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피의자의 사망이 수사 종결과 직결되면, 수사기관의 동력이 떨어질 수 있단 우려도 나온다. 수사기관의 의무 중 하나인 ‘실체적 진실 발견’이 어려워지고 피의자를 직접 상대했던 수사관들이 위축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지방청 강력계 형사는 “피의자가 수사 도중 사망하는 일은 담당 경찰에게도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며 “범죄사실을 마저 알아내지 못해 찝찝한 상태로 남으면 다른 사건에서도 위축되는 등의 부작용이 있다”고 말했다.

경북경찰청 감식반이 지난해 7월 17일 경북 봉화군 봉화읍 내성4리 경로당을 찾아 감식하는 모습. 연합뉴스

피의자 사망 이후에도 경찰이 수사를 진행한 사례도 있다. 경북경찰청은 지난해 7월 ‘봉화 경로당 살충제 사건’과 관련해 용의자가 사망했음에도 두 달간의 수사를 거쳐 진범을 밝혀 수사 결과를 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을 의뢰한 결과 피의자의 집에서 나온 농약이 피해자들이 마신 성분과 일치하다는 게 결정적이었다.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 관계자는 “만에 하나 다른 피의자가 있을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를 이어갔다”며 “피의자가 사망했더라도 진실을 밝혀냈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 어르신들이 다시 마음 놓고 경로당을 다니실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피해자의 회복이 필요한 사건에 국한해서라도 피의자 사망 여부와 관계없이 진실을 밝힐 수 있는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논문 『피의자 사망을 이유로 한 공소권 없음 수사종결 관행에 대한 고찰』의 저자인 한민경 경찰대학 행정학과 교수는 “피의자가 사망하더라도 피해자에게 수사 진행 경과에 대해 통지할 수 있도록 행정안전부령 등으로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한 교수는 “영국에서는 ‘피해자 재심사 요구 제도’를 통해 피해자가 피의사의 사망 이후 사건의 재심사를 요청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경찰수사심의위원회 등을 거쳐 피해자의 재수사 요구를 반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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