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서 추출한 CBD, 뇌전증·파킨슨병 치료제로
과흥분·발작 줄이고 항염증 효과로 신경세포 보호
美·日 등 56개국 허용…해외 수출하며 신산업 육성
韓도 재배·추출 등 기술 확보…규제로 상용화는 아직
대마(大麻)는 지금껏 환각을 일으키는 마약으로 취급돼 옷감이나 종이 원료 용도를 제외하곤 전 세계에서 재배와 사용이 모두 금지됐다. 그러던 대마가 최근 치료제로 주목받고 있다. 대마의 칸나비디올(CBD) 성분이 뇌전증, 파킨슨병, 우울증 등 다양한 질환에 효과를 보여 치료제로 개발될 가능성이 커졌다. 2018년 대마 성분의 뇌전증 신약도 나왔다.
대마 성분이 다양한 질환에 효과를 보이면서 전 세계에서 의료용 대마를 합법화하는 움직임도 급물살을 탔다. 의료용 대마는 현재 미국, 캐나다, 영국, 독일, 호주 등 56개국 이상에서 합법화됐다. 마약에 보수적인 일본도 2023년 CBD 사용을 허용했고, 프랑스는 현재 합법화를 위한 법안 개정을 진행 중이다. 한국도 2019년 CBD 치료제를 제한적으로 허용했다.
대마가 의료용으로 개발되면 환자뿐 아니라 국가 전체가 혜택을 볼 수 있다. 농업 부산물을 재활용하면서 제약 산업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수입하던 의료용 대마를 국산화하면 의료비를 줄이고 수출 의약품으로도 개발할 수 있다. 시장조사기관 글로벌마켓인사이트에 따르면 전 세계 의료용 대마 시장 규모는 7년 후인 2032년 1080억달러(한화 158조4000억원)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과흥분·발작 줄이고 신경세포 보호
대마는 부위별로 활용 분야가 다르다. 줄기는 섬유, 종이, 건축 자재 등 다양한 산업용 대마로 활용된다. 씨앗은 단백질·오메가 지방산 등이 풍부해 ‘슈퍼푸드’로 불리며 화장품이나 건강기능식품으로 활용되고 있다.
논란이 되는 것은 대마의 꽃과 잎이다. 우리가 마약으로 알고 있는 마리화나는 환각·중독을 일으키는 테트라하이드로칸나비놀(THC) 성분 때문이다. 대마 꽃·잎에는 THC가 있지만, 치료 효과가 있는 CBD 성분도 들어있다. 대마가 치료제로 변신하려면 꽃·잎에서 CBD를 추출하고 THC 성분을 0.3% 미만으로 떨어뜨리는 정제 과정을 거쳐야 한다.
CBD는 중독성 없이 통증을 완화하고 과도한 흥분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2015년 미국 뉴욕대 랑곤 종합간질센터 연구진은 CBD가 뇌전증 증세를 완화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뇌전증은 신경세포를 과도하게 작동시켜 발작을 유발하는데, CBD는 뇌에서 억제성 신경전달물질인 가바(GABA) 수용체 기능을 높여 발작을 줄인다. 뇌전증 발작이 반복되면 뇌에 염증이 생기고 신경세포가 손상되는데, CBD는 항염증 효과가 있어 신경세포를 보호하는 역할도 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7년 대마 CBD의 안전성을 인정했다. 이듬해에는 WHO 권고로 유엔(UN) 마약위원회가 60년 만에 대마를 마약 목록에서 제외했다. 영국 제약사인 GW파마슈티컬스는 CBD 성분의 뇌전증 치료제 ‘에피디올렉스’를 개발해 2018년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았다. CBD 성분 약물로는 첫 FDA 승인이었다.
임상시험 결과, 에피디올렉스는 소아 희소난치성 뇌전증인 ‘드라벳 증후군’과 ‘레녹스-가스토 증후군’ 환자들의 발작 빈도를 50% 이상 줄였다. FDA는 2021년 환자 수가 가장 많은 ‘결절경화증’에 대해서도 사용을 승인했다. 뇌전증 환자는 전 세계적으로 6500만명, 국내에는 50만명에 달한다.
이후 대마 CBD 성분이 뇌전증 외에도 파킨슨병, 알츠하이머성 치매 등 다양한 뇌질환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발표됐다. GW파마슈티컬스는 에피디올렉스가 치매와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에 효과가 있는지 알아보고 있다. 미국 콜로라도대 연구진은 파킨슨병 환자들을 대상으로 CBD의 효능을 알아보는 임상 2상 시험을 하고 있다.
한국에선 실험실 밖 나가지 못해
의료용 대마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에피디올렉스를 개발한 GW파마슈티컬스는 2021년 미국 재즈 파마슈티컬에 72억달러(8조원) 규모로 인수됐다. 에피디올렉스는 지난해 매출 9억7240만달러(1조4400억원)를 올리며 블록버스터(연 매출 10억달러를 내는 대형 의약품) 진입을 앞두고 있다.
미국과 일본, 이스라엘, 독일, 호주 등 의료용 대마 허용 국가들은 연구개발(R&D)은 물론, 재배·생산·수출까지 허용했다. 의료용 대마는 농업 분야의 새로운 수익원이 되고, 일자리 창출과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신성장 산업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미국은 2018년 농업법 개정으로 오일, 화장품, 식음료, 의약품 등 다양한 CBD 제품을 만들어 세계 최대 CBD 시장이 됐다. 지난해 기준 시장 규모는 80억달러(10조원)에 달한다.
국내에서도 의료용 대마를 연구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강릉분원의 천연물연구소가 대표적이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지난 2020년 규제자유특구로 지정한 경북 안동시애서는 의료용 대마의 재배·개발·생산 기술을 실증하고 있다. 국내 업체인 네오켄바이오는 2021년 KIST 특허기술로 특구에서 고순도 CBD를 추출하는 데 처음으로 성공했다. 네오켄바이오는 함정엽 KIST 천연물연구소 책임연구원이 창업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산업화를 위한 제도적 기반이 없어 시장이 좀처럼 열리지 못하고 있다. 국내 의료용 대마 추출·생산 기술은 해외와 비슷한 수준인데, 정작 활용을 못하는 것이다. 대마 CBD는 원료의약품으로 해외 수출을 위해서는 제조품질관리기준(GMP)을 충족하는 시설을 구축해야 한다. 하지만 국내에는 이를 허용하는 명확한 규정이 없어,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승인을 받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과흥분·발작 줄이고 항염증 효과로 신경세포 보호
美·日 등 56개국 허용…해외 수출하며 신산업 육성
韓도 재배·추출 등 기술 확보…규제로 상용화는 아직
대마 꽃·잎에서 추출한 CBD로 만든 의료용 대마는 최근 뇌전증, 파킨슨병, 만성 통증 등에 치료 효능과 안전성이 확인되면서 의학계에서 많은 기대를 받고 있다./NewYork-Presbyterian Hospital
대마(大麻)는 지금껏 환각을 일으키는 마약으로 취급돼 옷감이나 종이 원료 용도를 제외하곤 전 세계에서 재배와 사용이 모두 금지됐다. 그러던 대마가 최근 치료제로 주목받고 있다. 대마의 칸나비디올(CBD) 성분이 뇌전증, 파킨슨병, 우울증 등 다양한 질환에 효과를 보여 치료제로 개발될 가능성이 커졌다. 2018년 대마 성분의 뇌전증 신약도 나왔다.
대마 성분이 다양한 질환에 효과를 보이면서 전 세계에서 의료용 대마를 합법화하는 움직임도 급물살을 탔다. 의료용 대마는 현재 미국, 캐나다, 영국, 독일, 호주 등 56개국 이상에서 합법화됐다. 마약에 보수적인 일본도 2023년 CBD 사용을 허용했고, 프랑스는 현재 합법화를 위한 법안 개정을 진행 중이다. 한국도 2019년 CBD 치료제를 제한적으로 허용했다.
대마가 의료용으로 개발되면 환자뿐 아니라 국가 전체가 혜택을 볼 수 있다. 농업 부산물을 재활용하면서 제약 산업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수입하던 의료용 대마를 국산화하면 의료비를 줄이고 수출 의약품으로도 개발할 수 있다. 시장조사기관 글로벌마켓인사이트에 따르면 전 세계 의료용 대마 시장 규모는 7년 후인 2032년 1080억달러(한화 158조4000억원)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그래픽=손민균
과흥분·발작 줄이고 신경세포 보호
대마는 부위별로 활용 분야가 다르다. 줄기는 섬유, 종이, 건축 자재 등 다양한 산업용 대마로 활용된다. 씨앗은 단백질·오메가 지방산 등이 풍부해 ‘슈퍼푸드’로 불리며 화장품이나 건강기능식품으로 활용되고 있다.
논란이 되는 것은 대마의 꽃과 잎이다. 우리가 마약으로 알고 있는 마리화나는 환각·중독을 일으키는 테트라하이드로칸나비놀(THC) 성분 때문이다. 대마 꽃·잎에는 THC가 있지만, 치료 효과가 있는 CBD 성분도 들어있다. 대마가 치료제로 변신하려면 꽃·잎에서 CBD를 추출하고 THC 성분을 0.3% 미만으로 떨어뜨리는 정제 과정을 거쳐야 한다.
CBD는 중독성 없이 통증을 완화하고 과도한 흥분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2015년 미국 뉴욕대 랑곤 종합간질센터 연구진은 CBD가 뇌전증 증세를 완화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뇌전증은 신경세포를 과도하게 작동시켜 발작을 유발하는데, CBD는 뇌에서 억제성 신경전달물질인 가바(GABA) 수용체 기능을 높여 발작을 줄인다. 뇌전증 발작이 반복되면 뇌에 염증이 생기고 신경세포가 손상되는데, CBD는 항염증 효과가 있어 신경세포를 보호하는 역할도 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7년 대마 CBD의 안전성을 인정했다. 이듬해에는 WHO 권고로 유엔(UN) 마약위원회가 60년 만에 대마를 마약 목록에서 제외했다. 영국 제약사인 GW파마슈티컬스는 CBD 성분의 뇌전증 치료제 ‘에피디올렉스’를 개발해 2018년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았다. CBD 성분 약물로는 첫 FDA 승인이었다.
임상시험 결과, 에피디올렉스는 소아 희소난치성 뇌전증인 ‘드라벳 증후군’과 ‘레녹스-가스토 증후군’ 환자들의 발작 빈도를 50% 이상 줄였다. FDA는 2021년 환자 수가 가장 많은 ‘결절경화증’에 대해서도 사용을 승인했다. 뇌전증 환자는 전 세계적으로 6500만명, 국내에는 50만명에 달한다.
이후 대마 CBD 성분이 뇌전증 외에도 파킨슨병, 알츠하이머성 치매 등 다양한 뇌질환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발표됐다. GW파마슈티컬스는 에피디올렉스가 치매와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에 효과가 있는지 알아보고 있다. 미국 콜로라도대 연구진은 파킨슨병 환자들을 대상으로 CBD의 효능을 알아보는 임상 2상 시험을 하고 있다.
CBD 뇌전증 치료제 '에피디올렉스'./GW파마슈티컬스
한국에선 실험실 밖 나가지 못해
의료용 대마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에피디올렉스를 개발한 GW파마슈티컬스는 2021년 미국 재즈 파마슈티컬에 72억달러(8조원) 규모로 인수됐다. 에피디올렉스는 지난해 매출 9억7240만달러(1조4400억원)를 올리며 블록버스터(연 매출 10억달러를 내는 대형 의약품) 진입을 앞두고 있다.
미국과 일본, 이스라엘, 독일, 호주 등 의료용 대마 허용 국가들은 연구개발(R&D)은 물론, 재배·생산·수출까지 허용했다. 의료용 대마는 농업 분야의 새로운 수익원이 되고, 일자리 창출과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신성장 산업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미국은 2018년 농업법 개정으로 오일, 화장품, 식음료, 의약품 등 다양한 CBD 제품을 만들어 세계 최대 CBD 시장이 됐다. 지난해 기준 시장 규모는 80억달러(10조원)에 달한다.
국내에서도 의료용 대마를 연구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강릉분원의 천연물연구소가 대표적이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지난 2020년 규제자유특구로 지정한 경북 안동시애서는 의료용 대마의 재배·개발·생산 기술을 실증하고 있다. 국내 업체인 네오켄바이오는 2021년 KIST 특허기술로 특구에서 고순도 CBD를 추출하는 데 처음으로 성공했다. 네오켄바이오는 함정엽 KIST 천연물연구소 책임연구원이 창업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산업화를 위한 제도적 기반이 없어 시장이 좀처럼 열리지 못하고 있다. 국내 의료용 대마 추출·생산 기술은 해외와 비슷한 수준인데, 정작 활용을 못하는 것이다. 대마 CBD는 원료의약품으로 해외 수출을 위해서는 제조품질관리기준(GMP)을 충족하는 시설을 구축해야 한다. 하지만 국내에는 이를 허용하는 명확한 규정이 없어,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승인을 받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