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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일(현지시각) 상호관세 부과 계획을 발표하며 ‘무역 장벽 보고서’를 들어보이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9일 미국 트럼프 정부가 불을 댕긴 ‘관세 전쟁’이 점입가경이다. 동맹인 한국과 일본에 20% 넘는 상호관세를 때려놓고 ‘원스톱 쇼핑’(포괄적 협상)을 하겠다며 나서고, 중국엔 104%라는 전무후무한 관세를 매기는 등 세계 경제·무역 질서를 통째로 걷어차고 있어서다.

좌충우돌, 조변석개하는 미국의 속내와 다음 발 놀림을 내다볼 수 있는 실마리가 있다. ‘트럼프 책사’의 말과 글을 통해서다.

스티븐 마이런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은 7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디시(D.C)의 보수 성향 싱크탱크인 허드슨연구소가 주최한 대담에 나와 ‘트럼프 관세’의 맥락을 설명했다. 그의 발언은 백악관 누리집에도 올라와 있다.

마이런 의장은 대담에서 “세계는 여전히 미국의 안보 우산과 (달러를 기반으로 한) 무역 시스템을 가질 수 있지만, 그에 대한 정당한 몫을 지불하기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미국이 동맹인 자유 진영에 제공하는 방위력과 기축 통화인 달러를 이용하는 무역·금융 체제를 ‘글로벌 공공재’라 불렀다. 미국의 무차별적 관세는 공공재 제공에 따른 정당한 청구서라는 얘기다.

이런 생각의 뿌리엔 구조적인 ‘킹달러’(강달러) 현상이 미국의 만성적 무역적자와 제조업 쇠락을 낳고 있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통상 무역흑자를 내는 국가는 외화를 벌어들이며 자국 화폐 가치가 올라가고(환율 하락), 이는 곧 수입 증가·수출 감소 등 무역적자로 이어진다. 환율이 무역수지의 균형을 맞춰주는 저울추의 구실을 하는 셈이다.

미국은 다르다. 각국 정부와 민간 모두 국제 지급·결제 수단이자 안전 자산인 달러를 쟁여놓으려는 수요가 넘치는 까닭에 달러는 만성적 고평가에 놓인다. 미란 의장에 따르면 전 세계 외환 보유고에 보관 중인 달러 자산은 미국 통화 공급량의 약 3분의 1인 7조달러에 이른다. 미국이 겪는 장기 저환율 탓에 미국의 자동차 기업 등 수출 제조업 터전이 쑥대밭이 되고, 무역·재정적자만 천정부지로 불어났다는 이야기다. 안보 비용도 미국의 재정적자를 무겁게 하는 건 마찬가지.

스티븐 미란 미국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이 지난 7일(현지시각) 백악관 누리집에 올린 미국의 제조업 고용 추이. 백악관 누리집 갈무리

마이런 의장은 “이미 많은 것을 기부한 평범한 미국인들이 비용을 전적으로 부담할 수는 없다”면서 “미국이 두 가지 글로벌 공공재를 계속 제공하기 위해선 글로벌 차원의 부담 분담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정부가 요구하는 갹출의 핵심 수단이 바로 관세다.

마이런 의장은 5가지 방안을 제안했다.

① 쓸데없이 무역 보복하지 말고, 미국이 부과하는 기본·상호관세를 받아들여라.

② 시장을 개방해 미국산 제품을 더 사라.

③ 미국에 국방비를 더 내라.

④ 관세가 싫으면 미국에 투자해 공장을 지어라.

⑤ 미국 국채를 사서 공공재 유지에 돈을 보태라.

그는 “관세가 경제에 해롭다는 경제학자들의 지적은 틀렸다”고 했다. 미국의 ‘관세 폭탄’ 여파로 여태껏 킹달러에 기대 돈을 펑펑 썼던 미국 소비자들의 물가 부담이 커지리란 우려는 현실적이지 않다는 거다.

그 사례로 지난해 12월 미국에서 발표된 ‘무역적자를 동반한 무역전쟁’ 보고서를 들었다. 트럼프 1기 당시 미·중 무역전쟁의 영향을 분석한 이 논문은 “무역적자가 큰 국가가 무역전쟁을 통해 더 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있다”고 진단한다. 미·중 갈등에도 미국의 물가는 별로 오르지 않았으나, 수출 가격을 낮추기 위한 위안화 절화 여파로 중국 사람들만 가난해졌다는 게 이 보고서를 인용한 마이런의 결론.

그는 이번에도 “외국에 관세를 때리고 미국엔 감세를 해 미국 경제의 새로운 황금기를 열겠다”고 말한다. 중국에 역대급 초고율의 관세를 부과한 미국의 행동이 아무런 근거 없는 막무가내이기만 한 건 아닌 셈이다.

스티븐 미란 미국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이 지난 7일(현지시각) 백악관 누리집에 올린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수지 비율 추이. 백악관 누리집 갈무리

마이런 의장은 지난해 11월 작성한 보고서에선 ‘약 달러’이면서도 ‘기축통화를 가진 패권국’이라는 서로 모순된 목표를 이루기 위해 관세 다음으로 꺼내들 기상천외한 카드도 제안했다. 징벌적 관세를 지렛대 삼아 미국의 무역 상대국 팔을 비틀어 이들의 통화 가치를 강제로 올리고(약 달러 유도), 미국의 동맹국들은 보유 달러를 몽땅 처분하게 한 뒤, 안보 비용 명목으로 만기 100년인 미국 국채를 무이자로 강매하겠다는 거다.

다만 트럼프 2기 정부가 관세 전쟁에 이어 곧바로 환율 전쟁을 또 벌일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마이런 의장도 지난 4일(현지시각) 블룸버그 티브이(TV) 프로그램에 출연해 “(보고서는) 대통령에게 여러 선택지를 제공한 레시피북에 불과하다”면서 “트럼프의 최우선 과제는 관세”라고 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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