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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는 사람을 두 부류로 나눈다고 한다.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아니다. ‘나쁜 놈’과 ‘덜 나쁜 놈’이다. 범죄를 넘나드는 사람들을 상대하다 보니 이런 습관이 생겼다고 한다.

‘나쁜 놈’이다 싶으면 응당한 징벌을 내려야 직성이 풀린다. 이를 위해 옴쭉달싹 못할 증거를 찾는다. 여의치 않으면 겁박도 한다. 별건 수사도 곁들인다. 혐의사실을 흘려 여론재판도 한다. 과장된 표현이 들어간 사건 발표도 서슴지 않는다. 검사복을 막 벗은 사람들의 말투가 단정적이고 직설적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라는 게 법조계 사람들의 전언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그는 검사 출신이다. 검사도 보통 검사가 아니다.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가진 특수통 검사다. 박근혜 전 대통령 특검과 이명박 전 대통령 수사,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 수사에도 관여한 ‘윤석열 사단’의 일원이다. 그가 검사복을 벗은 지 한 달 만인 2022년 6월 금감원장에 취임했을 때 금융계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무섭기만 한 특수통 검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말투나 행동은 깎듯했다. 누구에게나 공손했고 항상 열린 자세였다.

업무에서는 아니었다. 특수통 검사다웠다. 시원시원했다. 잘잘못을 단기간 내 가려냈다. 복잡한 경제사건도 나쁜 놈과 덜 나쁜 놈으로 금방 구분해냈다. 그걸 자신이 세상에 알렸다. 검사 중인 사안에 대해서조차 그랬다. 덕분에 금융회사들의 내부통제는 강화됐다. 불완전판매 관행도 많이 줄었다. 레고랜드 사태, 태영건설 부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홍콩 주가연계증권(ELS) 사태, 카카오 시세조종 등도 초기에 진화됐다.

여기서 자신감을 얻은 탓일까. 그의 영역은 한층 넓어졌다. 금융지주사 회장 거취, 은행 대출 정책, 공매도 재개 여부, 상법개정안 등 예민하거나 금감원 소관이 아닌 사안에 대해서도 직접화법을 구사했다.

작년 우리금융그룹 부당대출사건이 터졌을 때도 그랬다. 손태승 전 회장의 친인척이 연루된 부당대출이었지만 그는 임종룡 회장을 겨냥했다. “임 회장 재임 때에도 부당대출 관련 불법 거래가 확인됐다”는 식으로 말하며 임 회장을 압박했다. 책임지라는 거였다. 계엄 후엔 바뀌었다. 지난 2월엔 “임 회장이 그만두면 거버넌스 관련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임기를 채우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주주가 확실한 금융그룹 회장 거취에 대해 금감원장이 이래라저래라 하는 건 이례적이었다.

시장을 가볍게 본 사례도 많다. 은행들의 대출금리 인상이 논란이 된 작년 9월 이 원장은 대출금리 인상이 아닌 대출규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은행들이 대출한도 축소 등을 취하면서 시장이 출렁거리자 이 원장은 사과해야 했다.

하이라이트는 상법개정안에 대한 그의 태도다. 야당이 통과시킨 상법개정안에 대해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거부권을 행사할 움직임을 보이자 “직을 걸고라도 반대한다”고 맞섰다. 한 대행이 거부권을 행사하자 사의를 표명했다고 라디오방송에서 스스로 밝혔다. 내부적으로 의견을 조율하는 공직자들과는 사뭇 다르다.

물론 검사의 습성이 몸에 밴 이 원장이 금융계에 끼친 긍정적 영향은 적지 않다. 하지만 시장은 검사의 속성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도 보여줬다. 시장은 시장을 아는 사람에게 맡기고 검사는 검사다운 일을 하는 게 맞다는 걸 깨닫게 한 점도 6월 임기를 마치는 이 원장이 끼친 긍정적 영향이다.

하영춘 한경비즈니스 발행인

한경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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