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가 머물고 있는 서울 한남동 관저에서 사람들이 분주하게 이동하고 있다.연합뉴스
헌법재판소의 전원일치 결정으로 파면된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서울 한남동 관저 퇴거를 미루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파면된 지 이틀 만에 청와대를 떠났는데, 윤 전 대통령은 빨라야 이번 주말께 퇴거할 것이라고 한다. 대통령실은 경호 문제를 이유로 들지만, 박 전 대통령 사례와 비교하면 핑계에 불과하다. 윤 전 대통령 부부가 이사를 미적대는 진짜 이유가 뭔가.
윤 전 대통령은 헌재 결정 나흘째인 7일에도 관저를 떠나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의 파면 결정부터 퇴거까지 걸린 56시간을 이미 훌쩍 넘겼다. 대통령실은 아직 퇴거 날짜가 정해지지 않았다고 한다. 서울 서초동 자택에 대한 정비와 경호 문제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이 퇴거를 미루는 건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윤석열·김건희 부부는 피의자 신분으로 예정된 수사가 한둘이 아니기 때문에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 피의자가 생활하는 주거지는 수사기관의 주요 압수수색 대상이다.
불소추 특권이 없어져 윤 전 대통령 부부를 겨냥한 수사는 줄줄이 대기 중이다. 수사 결과에 따라서는 윤 전 대통령이 재구속될 수 있다. 윤 전 대통령은 현재 재판 중인 내란 우두머리 혐의 말고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체포영장 집행을 막은 혐의(특수공무집행방해)로 입건돼 있다. 공수처가 1년 넘게 수사 중인 ‘채 상병 수사 외압 의혹’과 윤 전 대통령 부부가 연루된 ‘명태균 게이트’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윤 전 대통령이 계속 관저에 머무는 것은 증거인멸의 기회가 된다. 관저로 사건 관계자들을 불러 ‘말 맞추기’를 하거나, 경호처 직원들을 회유 또는 압박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일각에선 한남동 관저에 있는 스크린골프장 등 ‘미공개 시설’에 대한 처리 문제로 퇴거가 늦어지는 게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지난해 11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야당은 관저에 사우나·스크린골프장 등 ‘호화 시설’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경호처는 이를 부인했지만, 사실로 확인된다면 비리 혐의가 추가될 수 있다. 윤 전 대통령은 헌재 결정 직후 관저로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 권성동 원내대표 등을 불러 ‘대선 승리’를 주문했다. 자신의 지지층을 향해 “여러분 곁을 지키겠다”는 메시지를 내기도 했다. 국헌문란 목적의 내란을 저질러 파면당한 주제에 ‘관저 정치’를 하겠다는 것인가. 그럴 시간에 이삿짐이나 빨리 싸고, 수사와 재판 받을 준비나 제대로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