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기 美 채권 순매수 4조원 돌파
2011년 통계 집계 이래 최대치
미국 증시 폭락에 안전자산 찾아
2011년 통계 집계 이래 최대치
미국 증시 폭락에 안전자산 찾아
게티이미지뱅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에 위험회피 심리가 높아지면서 미국 주식에서 채권으로 피신하는 투자자들이 늘고 있다. 몰리는 수요에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는 4% 아래로 떨어졌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에서 시장 대응력을 높이기 위해 초단기채 펀드로도 돈이 옮겨가고 있다.
7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 1분기 국내 투자자의 미국 채권 순매수액은 27억9016만 달러(4조778억원)다. 2011년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래 가장 큰 규모다. 기존 최대치는 지난해 3분기의 25억7368만 달러(3조7614억원)였다.
미국 증시가 올해 들어 고전한 점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올해 초 5900에서 지난 4일 5074로 16% 이상 떨어졌다. 나스닥 지수 역시 1만9400대에서 지난 4일 1만5587까지 떨어지며 올해 24% 이상의 하락률을 보였다. 국내 투자자의 미국 주식 보관금액은 지난 1월 1136억9843만 달러로 정점을 찍은 뒤 매달 감소해 지난 4일 기준 938억5325만 달러까지 떨어졌다.
반면 높아지는 매수세에 미국 채권 금리는 올해 들어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국채 금리와 가격은 반대로 움직인다. 지난 1월 14일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는 4.79%로 최고점을 찍은 뒤 차츰 내려 지난 4일엔 3.99%로 4% 밑으로 내려왔다. 미국채 10년물 금리가 4%를 밑도는 것은 지난해 10월 이후 6개월 만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그간 미국의 무역 적자를 멈추겠다며 강도 높은 관세 정책을 예고하면서 시장의 안전자산 선호가 높아진 결과로 분석된다. 지난 3일 최종적으로 미국 정부가 시장 예상보다 강도 높은 관세 정책을 발표해 이 같은 추세는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올해 초만 해도 미국 국채 금리는 미국 내 물가 상승과 정부 재정 적자 가능성 등으로 더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됐으나, 관세를 둘러싼 확실성 고조로 예상과 달리 흘러가는 모습이다. 당시 미국 10년 만기 금리는 5%를 뚫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연방준비제도(Fed)의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이 낮아지고, 트럼프 행정부가 감세 정책으로 국채 발행을 늘릴 것으로 예상되면서 국채 금리가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하지만 가중되는 관세 충격에 미국 경제 성장률이 꺾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국채 금리 하방에 힘이 실리고 있다. 상호관세가 기업 투자와 민간 소비를 위축시켜 경제가 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투자은행 JP모건은 상호관세 발표 이후 올해 미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6% 포인트 낮추며 미국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설 것으로 내다봤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JP모건체이스의 마이클 페롤리 수석 이코노미스트도 “상호관세가 올해 인플레이션을 1.5% 포인트 올릴 수 있는 반면 개인소득과 소비지출을 억누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업률 전망치도 상향 조정되는 분위기다. 조너선 핑글 UBS 수석이코노미스트는 “2026년까지 미국 인플레이션과 실업률이 상승할 것”이라며 “올해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시장 불확실성이 계속되면서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해 자금을 단기로 굴리는 경향도 커지고 있다. 펀드평가사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3일 기준 초단기채권 펀드 설정액은 39조2998억원으로 나타났다. 초단기채 펀드는 편입 자산의 평균 만기를 6개월 내외로 유지하는 상품이다. 최근 자금 흐름을 짧게 가져가려는 투자자들이 늘면서 연초 이후 6조1754억원(18.6%) 늘어났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관세 발표 직후인 지난 3일 하루에만 4352억원이 유입됐다.
세계 경기침체 공포가 커지면서 연준의 금리 인하 가능성도 주목받고 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툴에 따르면 연방기금금리 선물시장에서 오는 6월까지 기준금리가 0.50% 인하될 확률은 30.1%로 상승했다. 전날 15.9%에서 크게 오른 수치다.
미국 국채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증권가는 관련 투자 상품을 새롭게 선보이고 있다. 대신자산운용은 지난달 잔존 만기 10년 이상의 미국 장기국채 ETF와 미국 하이일드 채권 ETF에 투자하는 ‘대신 미국장기국채 밸런스 펀드’를 출시했다. KB자산운용은 올해 만기 3~7년 수준의 미국 중단기국채와 관련 ETF에 투자하는 ‘KB 미국 중단기국채 펀드’를 출시했다.
미국 국채와 주식에 함께 투자하는 상품도 나오고 있다. 키움투자자산운용은 지난 2월 팔란티어 또는 엔비디아 1종목과 미국 30년 국채에 투자하는 ‘팔란티어미국30년국채혼합액티브(H)’와 ‘KIWOOM 엔비디아미국30년국채혼합액티브(H)’ 상장지수펀드(ETF)를 내놨다.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 힘을 잃지 않는 한 채권 선호 추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임재균 KB증권 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은) 실물 경제에서 부정적인 신호가 확인되면 부담감을 느껴 관세 정책을 완화할 수 있다”면서도 “고용지표가 생각보다 강하면 트럼프는 더욱 강경하게 관세 정책을 펼칠 것이고 안전자산 선호는 계속돼 미 국채 금리가 하락(가격 상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