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원식 국회의장이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사랑재에서 개헌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 하지만 시대 정신에 맞게 정당이 합의만 하면 충분히 가능하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6일 내놓은 헌법개정·조기대선 동시투표 제안의 핵심 관건은 결국 ‘시간’이다. 현행 헌법상 개헌 절차는 국회의원 재적 과반수 또는 대통령 발의로 제안되는데, 헌법개정안은 20일 이상 공고 기간을 거쳐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의 찬성을 얻어야 국민투표에 부쳐진다. 여기에 또 국민투표법상 대국민 공고 기간 18일을 거쳐야 한다. 국민투표법을 개정해 공고 기간을 일부 줄이더라도, 헌법개정안이 대선 30일 전쯤엔 마련돼야 한다. “즉시 국회 개헌특위를 구성하자”고 우 의장이 이날 제안한 이유다.
일단 우 의장 측은 이번 주 안으로 18~20인으로 구성되는 국회 개헌특위를 발족해 압축적으로 논의한다는 구상이다.
최대 60일에 불과한 탄핵 인용~ 조기 대선의 협소한 공간에서 왜 우 의장은 개헌카드를 빼 들었을까. 국회 고위 관계자는 “우 의장은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이 대화와 타협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보고, 지난해 제헌절부터 개헌 논의를 공식 제안했다”며 “12·3 계엄사태로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이 극명하게 드러난 지금이 개헌의 적기라고 생각한 것”이라고 말했다.
5선 국회의원 임기를 거치며 사회적 갈등을 대화로 해결하는 데 주력했던 우 의장은 취임 이후 과거 개헌 논의 실패 사례를 연구했다. 그 결과 새 대통령 임기가 시작되면 개헌 논의 자체가 중단됐고, 임기 후반기엔 레임덕으로 인해 논의가 좌초된다는 판단을 내렸다. 국회 관계자는 “시일은 촉박해도 지금이 놓칠 수 없는 타이밍이라고 생각한 우 의장이 양당 지도부와 물밑 논의를 거쳐 제안했다”고 전했다.
우 의장은 지난 1월엔 국회사무처 법제실로부터 1987년 개헌의 산파역을 한 ‘8인 정치회담’ 모델에 대한 보고도 받았다. 당시 노태우 민주정의당(민정당) 대표의 6·29 선언이 10·27 개헌 국민투표로 이어지기까지 논의를 주도한 테이블이었다. 당시 민정당에선 윤길중·이한동·권익현·최영철 의원, 통일민주당(민주당)에선 김영삼계 박용만·김동영 의원, 김대중계 이중재·이용희 의원이 참여했다. 1987년 7월 31일 처음 머리를 맞댄 이들은 공전 중인 개헌특위와 별도로 진행된 비공개회의를 통해 단 한 달 만에 합의안을 마련했다.
김영희 디자이너
가장 첨예한 쟁점이던 대통령 임기 문제는 정치 지도자의 결단으로 해소됐다. 당시 민정당은 6년 단임제를, 민주당은 4년 중임제를 주장했다. 다만 야권에선 “4년 중임이 당론”이라는 DJ(김대중 전 대통령)와 “직선제는 합의됐으니 사소한 문제에 구애될 것 없다”는 YS(김영삼 전 대통령) 입장이 엇갈렸다. 결국 8월 12일 YS가 “5년 단임 정도면 조정이 가능하지 않겠는가”라며 절충안을 내놓았고, “5년 단임이라도 수용하라”는 민정당 요구를 DJ가 받아들여 8월 31일 8인 회담에서 개헌안이 타결됐다.
국회 관계자는 “당시에도 연내 대선을 위해 8월 말까지는 개헌안에 합의해야만 해 주어진 시간이 한 달에 불과했다”며 “결국 양당 지도부의 결단 문제”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개헌 성사를 위해선 “논의 속도와 의제 취사선택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정재황 성균관대 명예교수(헌법)는 “국회에선 이미 수차례 개헌 논의를 거쳐 의제·쟁점 정리가 끝난 상황”이라며 “선택의 문제만 남은 만큼 속도감 있게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원호 서울대 교수(정치학)는 “개헌 논의가 시작하면 헌법 전문(前文)부터 기본권까지 ‘한 번에 바꿔야 한다’며 수백 개의 의견이 쏟아지는데, 이런 방식으로는 절대 개헌이 이뤄질 수 없다”며 “미국의 수정헌법(amendment)처럼 부족한 부분을 남기더라도 단계적으로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승진 국민대 교수(정치학)는 “이번엔 권력 구조 중심으로 하더라도, 2026년 2차 개헌에서 더 폭넓은 개헌을 이뤄낼 수 있는 정치권의 컨센서스를 이루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