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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연세대 명예교수 특별기고
김호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헌법 제1조 제1항이다.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부터 4월 4일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선고까지 내 마음 속에 가장 크게 자리 잡은 말이다. 나뿐이었겠는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민주공화국이란 무엇인가의 질문을 반복해 던졌을 것이다.

헌법재판소 선고는 비상계엄의 위헌·위법성과 민주공화국의 정신을 생생히 전달한다. 헌법재판소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군경을 동원하여 국회 등 헌법기관의 권한을 훼손하고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침해함으로써 헌법 수호의 책무를 저버리고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인 대한국민의 신임을 중대하게 배반했다”고 판단했다. ‘대한국민(國民)’이 민주공화국의 주권자라는 진술은 ‘대한민국(民國)’이 국민이 주인인 나라임을 오롯이 증거한다.

지난해 12월 4일 국회가 계엄 해제안을 의결하자 한국 민주주의의 ‘회복탄력성’은 지구적으로 주목받았다. 1980년대 이후 한국 민주화가 아시아 민주화를 선도해온 것은 국민적 자부심이었다. 군사독재와 싸워 이겼고, 절차적 민주주의, 삼권분립, 국민주권 정신을 뿌리내리게 했다. 그리고 이제 우리 사회는 다시 한 번 민주공화국을 지켜냈고, 국가 정상화를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이 새로운 출발점에 선 마음이 기쁜 것만은 아니다. 우리나라가 갈 길을 내다보면 걱정이 앞선다. 그 걱정은 세 방향이다. 첫째는 ‘두려운 미래’다. 최근 우리 사회는 저성장·초저출생·초고령화·신냉전질서라는 복합 위험 위에 위태롭게 놓여 있다. 둘째는 ‘피크 코리아’다. 복합 위험의 결과, 현재가 발전의 정점이라는 불안이 전 세대와 전 계층을 뒤흔들고 있다. 셋째는 ‘정부의 실패’다. 복합 위험의 극복에는 정부가 주도적 역할을 떠맡아야 하는데 진보 정부든 보수 정부든 문제 해결에 실패해 왔다.

탄핵은 시작일 따름이다. 이제 어떻게 대통령선거를 치를 것인지, 어떤 정부가 들어설 것인지에 우리 미래가 달려 있다. 정치사회에 주문하고 싶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설 새로운 시대정신을 내놓아야 한다. 21세기 다원주의를 고려할 때 이 시대정신이 단수일 필요는 없다. 시대정신이 품어야 할 세 가지 비전은 새로운 성장, 민주적 국민통합, ‘26년 체제’ 수립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첫째, 2025년 현재 우리 경제는 안으로 저성장과 불평등의 구조화, 밖으로는 미국 트럼프정부 발 ‘관세 전쟁’의 이중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새로운 성장이 요구된다. 보수·진보를 뛰어넘어 시장과 정부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인공지능(AI) 등에서의 신성장전략을 구체화하며, 디지털 대전환에 조응하는 신사회협약을 체결하고, 미중 경제 전쟁에 대응하는 신통상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새로운 성장은 지속가능한 복지를 위해서도 더없이 중대한 과제다.

둘째, 정치 양극화가 강화되고 진영적 사유가 일상화되는 ‘두 국민’ 문화를 이대로 놓아둘 순 없다. 다원적 정보사회에서 기성의 권위적 국민통합으로는 ‘한 국민’ 국가를 일궈낼 수 없다. 혐오와 적대를 넘어선 관용과 타협의 민주적 국민통합이 뿌리내려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민주 시민교육은 물론 유튜브 등 뉴미디어를 위시한 공론장 개혁을 도모해야 한다.

셋째, 지난 4개월 동안 제왕적 대통령의 그늘이 또 다시 선명히 드러났다. 권력구조 개편, 선거제도 개혁, 경제·사회 기본권 확대 등 21세기에 걸맞은 헌법 개정을 추진해야 한다. 대선 과정에서 공약으로 가다듬고 새 정부 출범 이후 국민적 숙의 과정을 거친 다음 2026년 지방선거에서 국민투표에 회부하는 게 현실적인 방안일 것이다. ‘87년 체제’의 한계를 넘어선 ‘26년 체제’의 수립에 대한 대국민 약속이 대선 과정에서 이뤄져야 한다.

헌법재판소는 선고문에서 “국민 모두의 대통령으로서 자신을 지지하는 국민을 초월하여 사회공동체를 통합시켜야 할 책무”를 강조하고 있다. 이 제언은 대선에 출마하는 정치인이라면 가슴 깊이 새겨야 할 제1의 계명이다. 대통령의 제1의 책무는 국민 모두가 함께 자유롭고 풍요롭게 살아가는 공동체의 구현에 있다. 진영의 대통령을 넘어선 국민 모두의 대통령을 간절하게 기다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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