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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4일 새벽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민들이 `계엄령을 철폐하라\'를 외치고 있다. 백소아 기자 [email protected]

‘비상계엄’을 통해 12·3 내란을 일으켰던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파면을 결정하자, 자민당 정부가 추진해 온 긴급사태 조항 포함 개헌안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후쿠시마 미즈호 일본 사민당 당대표는 지난 5일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에 “한국의 헌법재판소가 재판관 전원일치로 한국 (윤석열) 대통령 파면을 결정했다”며 “(한국의 내란과 비슷한 상황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긴급사태 조항’은 필요 없다”고 밝혔다.

일본에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사태 이후 집권 자민당을 중심으로 10년 넘게 추진돼 온 ‘긴급사태 조항’의 문제점이 재조명되고 있다.

자민당은 아베 신조 정부 때인 2012년 개헌 기초안으로 △헌법에 자위대 존재 규정 명기 △자연재해 등 긴급사태 대응 △참의원 합구 해소(각 현별로 최소 1명 참의원 선출 규정) △평생 교육 등 교육의 충실화 4개 항목을 제시했다. 이 중 긴급사태 조항은 일본 국내에 대규모 자연재해나 테러, 내란 등이 벌어졌을 때 정부 권한을 대폭 강화하고, 국회의원 임기를 연장하는 등의 내용을 뼈대로 한다. “총리는 외부 무력공격, 내란 등에 의한 사회질서 혼란, 지진 등 대규모 재해 등 긴급사태가 있을 경우 필요에 따라 국무회의에서 긴급 사태를 선포할 수 있다”는 내용을 제시했다. 자위대 헌법 명기가 개헌안의 핵심이지만 긴급사태도 자민당이 보수파들의 여론을 의식해 넣은 주요 개헌 항목이었다.

자민당 개헌안 내용은 지난 2016년 7월, 튀르키예에서 쿠데타 미수사건이 발생하자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비상사태 선언’을 선포한 사례와 비슷하다. 당시 에르도안 대통령은 자신이 의장인 국무회의에서 국회 통제없이 법률과 같은 효력을 가진 정부령을 만든 뒤 유럽인권 조약의 일시 효력 정지, 영장없는 구속 기간 연장, 쿠데타와 무관한 진보 인사와 쿠르드족 차별, 언론사 150여개 폐쇄 등 전횡을 휘둘렀다. 필리핀에서도 2017년 로드리고 두테르테 당시 대통령이 비상사태 조항에 근거해 계엄령을 발령해 국민 인권을 유린한 바 있다.

일본은 2차 대전 패전 이후 계엄법을 폐기했지만, 80여년이 지난 현재 다시 유사한 형태의 국가긴급권 강화 방안을 헌법에 명기하려는 것이다. 실제 지난해 한국에서 12·3 내란이 발생하자, 일본 일부 보수 정치인들은 오히려 이를 근거로 비상시 국가긴급권을 강화하는 ‘긴급사태 조항’ 필요성을 주장했다. 바바 노부유키 일본유신회 전 대표는 내란 발생 다음날인 4일 “한국에서 일어난 일이 일본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며 “헌법 개정을 통해 긴급사태 조항을 정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민주당에서 헌법조사위원장을 맡았던 간노 시오리 전 중의원도 자신의 소설미디어(SNS)에 “일본도 권력 통제형 긴급 사태조항을 서둘러 헌법에 도입해야 한다”며 “적절한 긴급사태 조항이 없는 상태야말로 매우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내란 같은 일이 벌어질 경우, 정부가 이에 곧바로 대응하기 위해 유사시 국가긴급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취지다. 정당 사이에서도 자민당 뿐 아니라 공명당, 일본유신회, 국민민주당 등 보수 성향 정당 대부분이 이 조항에 찬성 의견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12·3 내란은 윤 전 대통령이 자신에게 과도하게 집중된 권한을 남용해 국가 전체를 위기에 빠트린 일인데 일본 보수 정치권이 긴급사태 조항의 필요성을 강조하려다 엉뚱한 논리를 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도쿄변호사회 소속 쓰다 지로 헌법문제대책센터 부위원장은 지난해 12·3 내란 직후 “한국에서 계엄령이 신속히 해제된 것은 야당이 의회의 다수파였다는 우연이 작용한 것 같다”며 “일본은 다수파 정당에서 총리가 선출되기 때문에 내각이 비상사태를 선포하면 의회의 견제 기능이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일본 중의원 긴급사태 조항 심사회에 참고인 구실을 했던 나가이 고쥬 변호사는 지난달 아사히에 “한국의 (내란 사태에서 얻는) 교훈은 긴급사태조항이 있으면 순식간에 독재 체제가 확립될 수 있고, 권력 남용 억제 장치가 있어도 권력자가 실력을 행사하면 무효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라며 “긴급사태조항이 일본 헌법에 포함되는 것을 반대한다”고 꼬집었다.

진보 성향 야당 쪽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높다. 공산당과 입헌민주당 등에서는 “한국 비상계엄을 보면,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 정치 활동이 금지되고 언론·출판도 계엄 통치 아래 들어간다”며 “매우 강권적 내용으로 구성돼 이런 사태(내란)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고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도쿄/홍석재 특파원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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