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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진의 예민과 둔감 사이

전세계 10대 17.7% ‘비자살적 자해’
SNS에서 관련 영상 보고 영향받기도
‘믿을 수 있는 안정적인 사람’이 도움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편안하고 안정적인 대상을 만나면 자해 예방에 큰 도움이 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게티이미지뱅크

미영씨는 20대 초반의 대학생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여느 대학생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팔의 소매를 걷어보면 차이가 있습니다. 미영씨의 양쪽 손의 손목부터 팔의 접히는 부분까지 가로 방향으로 작은 상처들이 나 있습니다. 이 상처는 다 나아서 거의 없어진 것도 있고 새로 만들어진 것도 있습니다. 상처를 만든 사람은 바로 미영씨 자신입니다. 손톱이나 날카로운 물건으로 긁어서 상처를 낸 것입니다. 미영씨도 이런 습관이 나쁘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불안할 때 몸에 상처를 내면 나쁜 감정이 바로 사라지고 편안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느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불안하기만 하면 상처를 내는 행동을 멈추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미영씨 팔의 상처의 시작은 고등학교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미영씨는 수줍음이 많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학생이었습니다. 친구들과 눈도 잘 마주치지 못하고 혼자서 지내는 것이 편했습니다. 그런 중에 같은 반에 자신과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가 생겼습니다. 함께 식사도 하고 이야기를 나누니 학교 다니는 게 재밌어졌습니다. 그런데 학년이 바뀌면서 그 친구와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새로 바뀐 반에는 그 친구처럼 자신과 이야기할 만한 대상이 없었습니다. 용기를 내어 자신의 짝에게 이야기를 걸어보았지만 미영씨의 이야기를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무시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고는 다른 친구들과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미영씨는 집에 와서 이유 없이 불안하고 안절부절못했습니다. 친구들이 자신을 무시하고 모욕을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그 친구가 자신에게 어떤 못된 행동을 한 것도 아니고 싫어한다는 이야기를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친하게 지냈던 친구와는 분명히 차이가 있었습니다. 미영씨는 스스로 자신이 너무 상처를 잘 받는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과는 학교 성적 외에 이런 마음의 문제에 관해 대화하지는 못했습니다.

미영씨는 우연히 에스엔에스(SNS)를 검색하다가 자해하는 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영상을 따라 자신도 팔목에 상처를 내보았는데 마음이 조금 편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뒤로 미영씨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팔에 상처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집에서 상처를 내다가 어머니가 미영씨의 행동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은 다시는 이런 행동을 하지 말라고 미영씨를 질책했지만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그 뒤로 미영씨는 대학에 진학했지만 스스로 상처를 내는 습관은 고쳐지지 않았고 친구들을 만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상황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대학을 다니고는 있지만 같은 과 친구들과도 어울리지 못하고 학교를 그만둘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휴학하려고 부모님과 이야기를 하다가 어머니가 미영씨의 팔에 있는 상처를 다시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상처를 보고 너무 놀라서 미영씨를 데리고 인근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미영씨가 자신의 팔에 상처를 내는 행동을 정신의학적으로는 ‘비자살적 자해’(Non Suicidal Self-injury, NSSI)라고 합니다. 비자살적 자해는 자살하려는 의도 없이 자신의 신체에 고의적이고 반복적으로 해를 입히는 것을 의미합니다. 학술지 자마(JAMA, The Journal of the American Medical Association)의 보고(Denton and Alvarez, 2024)에 의하면 전세계적으로 10대 청소년의 17.7%가 비자살적 자해를 경험하는데, 에스엔에스에서 관련 영상에 노출되는 것이 큰 영향을 준다고 했습니다. 비자살적 자해를 하는 원인은 불안, 우울, 스트레스 등 부정적인 감정을 해결하기 위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주로 대인 관계가 잘 안되고 상처를 쉽게 받는 특징을 가진 경우에 자신의 감정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사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검사 결과 미영씨는 특별한 이유 없이 떠다니는 것 같은 불안감(free floating anxiety)과 스트레스를 받으면 자신만의 우울하고 비관적인 생각으로 빠지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미영씨는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 스스로 상처를 내는 방법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미영씨의 부모님도 미영씨가 가진 내면의 문제를 보기보다 야단을 쳐서 고쳐보려고만 했습니다.

미영씨에게 필요한 것은 편안하고 믿을 수 있는 안정적인 대상입니다. 고등학교 때 자신과 친하게 지냈던 친구처럼 안정된 대상을 만나면 자해 예방에 큰 도움이 됩니다. 처음에는 전문의와 상담하면서 그분이 안정적인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부모님도 미영씨가 고민하는 대인 관계의 어려움을 잘 경청하고 이해해주는 태도를 가지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그 뒤 마음을 털어놓는 대상을 친구로 점차로 범위를 넓혀보면 좋습니다. 자해하는 대신에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학교를 정해진 시간에 등교하면 칭찬해주고 긍정적인 행동에 보상을 해주는 것이 치료에 도움이 됩니다. 좌절을 견디고 극복하는 힘이 약하기 때문에 작은 것부터 성공해서 자신감을 키워나가야 합니다.

미영씨는 자신의 팔에 상처를 주는 행동을 그만두고 자신이 가진 불안과 스트레스를 말로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걸고 대화를 나눌 때 표정이나 말투에 너무 예민하게 신경 쓰지 않도록 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시도해보는 데 의미를 두게 되었습니다. 자해 행동은 없어지고 팔의 상처는 점차로 사라졌습니다. 미영씨는 세상이 더 살기 편해지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습니다.

※개인별로 자세한 것은 반드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진료, 상담을 하면서 파악해야 합니다. 기사만 읽고 자신을 진단하거나 의학적 판단을 하지 않도록 부탁드립니다. 기사에 나오는 사례는 특정인을 지칭하지 않으며 이해를 돕기 위해 여러 경우를 통합해서 만들었습니다. 모두 가명을 쓴 것임을 밝힙니다.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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