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아이러니를 느낍니다. 헌법에 대한 한국 사회 엘리트들의 인식과 최종 순간 작동하는 헌법의 질서 사이의 괴리 같은 것 말입니다.
한국 엘리트들에게 헌법은 무엇일까. 사실상 자신들의 통치를 치장하는 장치물에 불과합니다. 헌법을 들먹거리지만 별반 신경 쓰지 않습니다. 헌법을 제대로 이해한 자도, 읽어본 자도 많지 않아 보입니다. 위헌 위법으로 헌법재판소가 결론 낸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선포가 대표적 사례입니다.
또 헌재가 위헌이라고 판단했지만 재판관을 임명하지 않는 한덕수 총리에게도 헌법은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헌법은 ‘레토릭’ 정도일 것입니다. 야당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법안을 만들고 밀어붙이면서 헌법에 대한 세심한 고려를 한 흔적은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이들의 최종 운명이 헌법재판소에서 결정된다는 것은 아이러니하게 느껴집니다. 탄핵도 되고, 파면도 되고, 기각도 되는 것을 결정하는 기준은 그래도 헌법입니다. 물론 군대를 동원한 쿠데타를 성공시켰다면 헌법은 더더욱 안중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런 이중성은 짧은 민주주의 역사에서 비롯됩니다. 한국 민주주의는 채 40년이 안 됩니다. 박정희 정권이 폐지한 헌법재판소도 1988년에 부활했습니다. 헌법이 사회 작동의 기본원리로 튼튼하게 뿌리내리지 못한 배경입니다. 한국 사회 엘리트 집단이 평소 헌법의 권위를 존중하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수백 년 쌓아온 유럽이나 미국에 비하기 힘들 것입니다. 그래도 계엄선포와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헌법적 질서가 유지됐다는 것 자체로 위안을 삼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헌법을 다시 들여다봤습니다. 전문 일부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3ㆍ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ㆍ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이를 전면으로 부정하지만 공직에 앉을 수 있는 게 한국 사회입니다.
헌법 1조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다수결 원칙을 기반으로 의사결정을 합니다. 국회의 대다수 의결이 과반으로 가능한 이유입니다. 하지만 공화란 말이 따라붙었습니다. 이는 소수파의 권리도 보호받아야 한다는 헌법의 기초적 이념을 담고 있습니다.
파면된 윤 전 대통령은 이런 의회민주주의 기본원칙을 무시하며 거부권을 남발했고, 민주당은 소수파의 권리를 무시하며 법안을 밀어붙였습니다. 헌법재판소는 판결문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국회는 소수의견을 존중하고 정부와의 관계에서 관용과 자제를 전제로 대화와 타협을 통해 결론을 도출하도록 노력했어야 한다. 피청구인 역시 국민의 대표인 국회를 협치의 대상으로 존중했어야 한다.” 민주공화국의 요체에 대한 설명이었습니다. 또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1조2항의 내용도 녹아 들어가 있습니다.
다음은 헌법 66조 2항. <대통령은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진다.> 69조 1항. <대통령은 전시ㆍ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 이에 대해 헌재는 이렇게 밝혔습니다. “피청구인(윤 전 대통령)과 국회 사이에 발생한 대립은 일반의 책임이라 보기 어렵고, 이는 민주주의 원리에 따라 해소되어야 할 정치의 문제입니다. 정치적 견해의 표명이나 공적 의사결정은 헌법상 보장되는 민주주의와 조화될 수 있는 범위에서 이뤄져야 합니다.” 헌재는 윤 전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에 군을 동원함으로써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저버렸다고 판단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이외에도 다양한 쟁점에 대해 위헌 위법이 있었다고 봤습니다. 그 결과 재판관 8명 전원일치로, 5가지 쟁점 모두 위헌 위법이 있었다며 대통령을 파면한다고 선고했습니다. 이 대목에서 또 한 가지 의문이 고개를 듭니다. 이렇게 명확한 판단과 결정을 하기까지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그 기간 갈등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결국 헌재가 시간이라는 무기를 사용했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걸린 선거법 소송 2심 판결을 기다린 것입니다. 그것을 헌재의 정치력이라고 불러야 할지는 모르겠습니다.
이밖에 헌법을 대놓고 무시하면 어떻게 할수 없는 다양한 사건을 이번에 경험했습니다. 2025년 4월 대한민국 헌법의 풍경은 ‘미완성’이란 단어로 정리할 수 있을 듯합니다. 또 하나의 미완성은 더 뼈아픕니다. 다음 정부도 인수위 없이 미완으로 출범해야 한다는 것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