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원의 성장하는 부모]
<4> 어떤 부모가 좋은 부모인가?
<4> 어떤 부모가 좋은 부모인가?
편집자주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며 부모도 자랍니다. 김효원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4주에 한 번, 성장통을 겪는 부모들에게 조언과 응원을 전합니다.넷플릭스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 중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가 전 국민의 마음을 울리고 있다. 애순(아이유, 문소리 분)과 관식(박보검, 박해준 분)은 가난하고 어려운 시절을 살면서, 자신의 꿈은 비록 꺾이더라도 자녀의 꿈과 인생을 지키기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부모다. '네가 태어나던 날부터 아빠는 천국에 살았'노라며 한결같은 사랑을 주고, '안 되면 빠꾸, 우리가 항상 여기에 있어'라며 든든한 요새가 되어주는 부모의 이야기는, 사람들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부모에 대한 감정을 건드린다. 아낌없는 사랑을 주고 희생하고 헌신했던 부모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과 더불어, 부모에게 잘하지 못한 시간들에 대한 막연한 죄책감이 사람들을 눈물 짓게 한다.
그런데 이렇게 따뜻하고 눈물 나는 드라마를 보면서 나는 마음 한구석이 내내 불편했다.
진료실서 만난 '현실 부모'들
세상에 애순과 관식 같은 부모를 가진 이가 얼마나 될까?
진료실에서 아이가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부모가 되어 주라거나,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이해하고 읽어 주라고 말씀드리면, '나는 그런 부모를 가져보지 못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는 분들이 종종 있다. 때리고 학대하는 부모, 버리고 돌보지 않는 부모, 자녀를 이용하는 부모 아래에서 상처받으며 자란 어른들이 너무 많다.
자녀를 위해서 희생하고 헌신하는 부모라 해도, 희생했다는 것을 끊임없이 인정받고 싶어하고, 주변에 자랑하고 싶어하고, 희생했으니 부모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고 자녀를 휘두르려 하면서 상처 입히기도 한다.
그래픽=신동준 기자
A의 엄마인 H의 부모도 그런 분이었다. H의 부모(A의 외조부모)는 둘 다 어려운 환경에서 힘들게 공부해서 부부 교수가 되었는데, 외동딸인 H에게 늘 제일 좋은 것을 주려고 했다. 먹고 입고 재우는 것뿐 아니라 공부를 가르치는 선생님이나 학원도 제일 좋은 곳을 찾아서 다니게 했다. 교수를 하면서 바쁜 중에도 가능한 모든 시간을 H와 함께 보냈다. 그렇게 최고의 환경을 제공했는데도 H가 서울대에 가지 못한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H는 대학, 학과, 전공 모든 것을 다 부모와 의논해서 정해야 했고, 학점도 항상 잘 받아야 했다.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했지만 대학원은 진학하지 않고 취업하겠다는 H에게 부모는 비난을 쏟아부었다. H는 결국 석사과정을 마쳤고, 이후에는 결혼을 하고 집에서 아들 A를 키우게 되었다.
H의 부모는 손주(A)가 태어나자 손주의 양육과 교육에 대해서도 사사건건 간섭하고 뜻대로 하려고 했다. H가 엄마로서 A의 양육에 조금만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면 '부모의 희생에 고마워할 줄 모르는 배은망덕한 사람'이라고 했고, '혼자서 제대로 하는 것도 없으면서 고집만 세다'고 H를 비난했다. A가 대학에 합격한 이후에는 수강신청, 동아리, 귀가시간까지 하나하나 간섭했다. A가 성인이 되었으니 스스로 알아서 잘 해보겠다고 하자, H에게 바로 전화를 걸어서 '자식교육을 어떻게 했냐'며 소리를 질렀다. A와 H는 모두 공황장애와 우울증으로 치료를 받고 있다.
사실
현실에는 H의 부모와 같은 분들이 훨씬 많다. 애순과 관식처럼 한결같은 사랑과 헌신을 베풀기만 하고, '다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하고 응원하면서, 자녀에게 바라는 것이 없는 그런 부모는 거의 없다.
'금명이가 부럽다', '애순과 관식 같은 부모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감상평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이유다.'헌신'과 '희생'이라는 부모 이데올로기
'폭싹 속았수다'에서 애순과 관식이 아기를 보며 웃고 있다. 넷플릭스 캡처
그렇다면 애순과 관식처럼 희생하고 헌신하는 부모가 좋은 부모일까?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희생, 헌신하는 부모가 좋은 부모라는 이데올로기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자식만 바라보면서 너무 좋은, 완벽한 부모가 되려고 애쓰는 마음은 자칫하면 여러 병폐를 가져올 수 있다. 2025년을 살아가는 우리 시대 부모들은 특히나 완벽한 부모가 되어서 아이를 완벽하게 키워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요즘 세상은 우리가 어렸을 때보다, 애순과 관식이 딸 금명(아이유 분)을 키울 때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팍팍하다. 부모들은 자신이 뭔가를 챙겨주지 못해서 아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뒤처질까 봐 불안해하고, 그러면서도 조금만 잘못하면 맘충, 극성 부모라고 비난을 받는다.
집안일도 같이 해주고, 오골계 백숙도 끓여주고, 괴롭히는 사람과 대신 싸워주는 '폭싹 속았수다' 속 해녀 이모들도 없다. 그래서 아이를 키우는 일은 더욱 외롭고 고단하다.지금 시대에 좋은 부모가 되려면 우선 자신의 마음을 잘 다독일 수 있어야 한다. 요즘에는 SNS를 통해서 다른 아이들이 어떻게 공부하는지, 다른 부모들은 아이를 어떻게 키우는지 너무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쉽게 자신의 자녀와 비교하며 불안해진다. 부모의 불안을 부추기는 기사나 마케팅도 많다. 7세 고시나 초등의대반 같은 지나친 사교육도 사실은 부모의 불안과 강박에서 시작된다. 아이를 잘 키우려면 다른 아이의 공부 진도나 다른 가족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아이의 성향과 기질,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부모의 마음이 단단하고 흔들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영범 엄마' 같은 부모는 아닌지...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아들(영범)을 자신의 프라이드로 여기는 엄마. 넷플릭스 캡처
또
아이를 부모의 성적표처럼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가 유명 수학 학원 입학테스트에 떨어지면,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지 못하면, 마치 부모의 인생이 실패한 것처럼 생각하는 분들이 너무 많다. '폭싹 속았수다'의 영범 엄마(강명주 분)가 아들에게 “너는 내 인생이고, 내 프라이드”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고 끔찍해하면서도, 아이의 성취 하나하나를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는 모습이 영범 엄마와 똑같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부모가 아이를 자신의 성적표로 생각하게 되면 아이는 부모의 삶을 평생토록 짐처럼 짊어지고 살아가게 된다. 아이가 스스로의 인생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부모도 자신의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A가 대학에 진학한 다음에, H는 동네 도서관과 복지관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다른 사람을 돕는 일도 즐겁고,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 나누는 것도 재미있다고 했다. 자원봉사를 시작하면서 우울증도 훨씬 나아졌다. 한번은 H가 엄마(A의 외조모)에게 "네가 그러고 다니니까 A가 저 모양이다"라는 말을 듣고 속상해하길래, "어머님이 완벽한 부모는 아니에요. 때로는 우유부단하고 때로는 외조부모가 A를 휘두르는 것을 막아주지 못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자신의 부모보다는 나은 부모예요. 적어도 엄마의 인생을 A가 짊어지고 살게 하지 않으려고 애쓰시잖아요"라고 말씀드렸다.
원래 현실에 없는 것들이 추억 속에서 또 판타지 속에서 미화되기 마련이다. '폭싹 속았수다'의 아름다운 가족 이야기에 충분히 눈물 흘렸으면, 이제 현실에서 자신의 인생을 잘 살아내어서 아이를 지키는 부모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