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신> 지진 발생 우려에 뜬 눈으로 밤 새기도
군부, “더 큰 지진 온다” 말하며 시민 통제
지진發 인플레이션, 시민 생존까지 위협
화장실 하나 없이 기약 없는 텐트 생활
군부, “더 큰 지진 온다” 말하며 시민 통제
지진發 인플레이션, 시민 생존까지 위협
화장실 하나 없이 기약 없는 텐트 생활
만달레이 시민 피요(오른쪽)가 2일 만달레이의 한 교회 대피소 앞에서 양곤에서 온 친구를 껴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만달레이(미얀마)=허경주 특파원
“가만히 있어도 아직 땅이 흔들리는 것 같고, 자다가도 진동이 느껴지면 바로 깨. 난 이제 남은 게 하나도 없어. 지진이 모든 것을 앗아갔어.”
미얀마 제2 도시 만달레이의 한 교회에 머물고 있는 피요(36)는 2일 양곤에서부터 옷가지와 생필품을 들고 자신을 찾아준 친구 세인을 껴안고 한참을 흐느꼈다. 집을 잃은 설움과 지진의 악몽, 미래에 대한 불안이 뒤섞인 눈물이다.
2일 만달레이 시민 피요가 대피소 생활을 하면서 야외에서 취침해 모기에 잔뜩 물린 손을 기자에게 보여주고 있다. 만달레이(미얀마)=허경주 특파원
지난달 28일 오후 12시50분. 미얀마 만달레이 인근에서 예고없이 발생한 규모 7.7 강진은 그의 삶을 통째로 바꿨다. 패션 디자이너 피요가 집 안에 마련된 작업실에서 일하고 있을 때 갑자기 ‘그르릉’ 낮게 울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난생처음 겪는 심각한 흔들림이 느껴졌다.
벽에 걸려있던 대형 장식품이 갸우뚱거리며 떨어지더니 어깨를 강타했다. 직감이 말했다. 도망쳐야 한다고. 옆에 있던 휴대폰만 쥔 채 맨발로 황급히 건물을 빠져나왔다. 금품이나 귀금속은 물론, 핵심 작업 도구인 재봉틀까지 모두 집에 두고 왔지만 다시 올라갈 수는 없었다. 그의 집은 이미 ‘피사의 사탑’처럼 보일 정도로 크게 기운 데다 금도 심하게 갔다. 언제 무너져 내려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다.
2일 만달레이 찬 아예 타르잔 지역 공터에 마련된 난민촌 모습. 만달레이(미얀마)=허경주 특파원
일단 집 인근 교회가 마당에 운영하는 임시 시설로 몸을 피했다. 말이 ‘피난소’지, 사실 침상 위에 모기장을 덮어둔 게 전부다. 교회 내부도 심한 금이 가 있어, 붕괴 위험 때문에 들어갈 수 없는 탓이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그의 대피 생활은 이렇게 시작됐다.
40도를 넘는 무더위와 제대로 먹지도, 씻지도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지만 피요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육체적 고통이 아니다. 강렬했던 지진의 악몽과 언제 또 반복될지 모른다는 공포감, 그리고 다시는 예전의 평범했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불안이다. 피요는 “하늘을 막아주는 저 지붕도 언제 나를 덮칠지 몰라 불안해서 잠을 이룰 수 없다”고 호소했다. 그는 지진 발생 당시 부딪혔던 자리가 아픈 듯, 기자와의 대화 중에도 연신 자신의 팔과 어깨를 주물렀다.
잇단 여진에 거리로 나온 시민들
2일 만달레이의 유명 관광지인 옛 만달레이 왕궁이 지진으로 무너져 내려있다. 만달레이(미얀마)=허경주 특파원
지난달 28일 강진 이후 만달레이는 도시 전체가 거대한 대피소가 됐다. 지진으로 거리에 나앉은 이재민이 5만 명에 달한다고 하지만, 정확한 집계는 없다. 다만 과자처럼 힘없이 바스러진 건물에서 가까스로 탈출한 사람은 물론 아직 집이 무너지지 않았지만 붕괴 공포 때문에 머물지 못하는 사람까지 모두 거리로 나오면서 공터와 인도 곳곳은 거대한 캠핑장을 방불케 했다. 도시 전체가 파괴된 데다 미얀마의 어려운 경제 사정상 복구엔 긴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언제까지 텐트 생활을 해야 할지 기약조차 없다는 뜻이다.
이들이 집을 나온 가장 큰 이유는 여전한 여진이다. 3일 새벽 기자가 숙박하던 4층 호텔도 침대에 묵직한 진동이 울릴 정도의 여진이 몇 차례 이어졌다. 불안에 떨며 휴대폰과 노트북만 챙겨 로비로 뛰어나가길 반복해야 했다. 비슷한 시간 만달레이에서 580㎞ 떨어진 양곤에서도 규모 5.0 수준의 지진이 발생했다. 지진 악몽은 현재 진행형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강진에 가족과 이웃의 목숨을 빼앗긴 만달레이 시민의 두려움은 작은 진동조차 처음 경험하는 외국인 기자보다 몇 배는 더 클 터다.
만달레이 종합병원의 병상들이 지진 여파로 야외에 놓여 있다. 만달레이(미얀마)=허경주 특파원
여진을 우려한 병원은 환자들을 모두 야외로 옮겼다. 2일 만달레이 종합병원으로 향하자 병원 주차장에 길게 놓인 병상이 보였다. 환자들은 야외에서 수액을 맞으며 힘없이 누워있었다. 의료진 역시 ‘야전병원’처럼 외부에 간이 진료소를 마련해뒀다.
흙먼지 속에서 가까스로 식사만
만달레이 찬 아예 타르잔 지역 공터에 마련된 난민촌 모습. 만달레이(미얀마)=허경주 특파원
만달레이 도심 찬아예 타르잔 지역 공터에는 작은 ‘난민촌’까지 생겼다. 도대체 누가, 언제 여기에 처음 몸을 뉘일 자리를 마련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지진 이후 집을 잃은 이들이 우르르 몰리고 100개가 넘는 크고 작은 텐트와 막사가 생겼다.
그나마 운이 좋은 이들은 모기장이 달린 돗자리형 텐트를 먼저 배분 받았다. 여전히 많은 이들은 길바닥에 돗자리를 펴고, 얼기설기 대나무를 세우고 그 위에 두꺼운 방수포나 이불을 덮은 임시 막사에서 가까스로 비를 피해야 했다.
거리에서의 삶이 편할 리가 없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최고 등급(3급) 비상사태’로 선포할 만큼 모든 상황은 열악하다. 흙먼지가 가득한 바닥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제공하는 적은 양의 음식이 식사의 전부다. 샤워는 꿈도 못 꾼다.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는 것도 이들에겐 사치다. 화장실을 찾는 기자에게 한 자원봉사자는 구석진 풀 숲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곳엔 변기는커녕 세면대도 없었다.
만달레이 찬 아예 타르잔 공터에 마련된 난민촌에 머무는 여성 쉬웨이(오른쪽 두 번째)가 기자에게 난민캠프 생활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만달레이(미얀마)=허경주 특파원
당장의 육체적 불편보다 더 깊은 상처는 정신적 트라우마다. 바닥에서 어린 삼남매에게 부채질을 해주고 있던 쉬웨이 니코(30) 윈트 맛 칸(31) 부부는 다시 집에 돌아갈 수도 없다. 지난달 강진 때까지만 해도 벽이 심하게 금이 간 상태였지만, 이후 건물에 누적된 피로도와 여진으로 결국 벽 한쪽이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담요와 옷 몇 개 외에는 남은 게 아무 것도 없어 보였다.
그래도 이들은 아이들의 목숨을 모두 살린 것만으로도 천운이라 생각한다. 니코는 "가끔 잔해에 깔리는 꿈을 꾼다. 집에서 잠을 자다 죽느니 차라리 딱딱한 바닥에서 하늘을 보고 있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만달레이 찬 아예 타르잔 지역 공터에 마련된 난민촌에 머무는 만달레이 시민들이 구호 물자를 얻으려 길게 줄을 서 있다. 만달레이(미얀마)=허경주 특파원
물가 뛰면서 삶은 더 퍽퍽
2일 만달레이의 한 시장에서 시민이 채소를 구매하고 있다. 만달레이(미얀마)=허경주 특파원
갑자기 뛰어버린 물가는 안 그래도 어려운 이들의 삶을 더욱 위협한다. 지진 이후 피해가 컸던 만달레이 중심부에서 상황이 나은 교외 지역으로 시민들이 몰리면서 도시 외곽 ‘비눌린’ 지역 방 2개짜리 아파트 월세는 기존 45달러에서 363달러로 치솟았다.
공급은 적은데 수요만 늘면서 삶을 유지하는 데 기본이 되는 식량과 물 값도 천정부지로 뛰고 있다. 자신을 데이지라고 소개한 교사(38)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감자 가격이 1비스(Viss·미얀마 무게 단위, 약 1.6㎏)당 5,000짯(약 3,500원)이었는데 지금은 7,000짯(약 4,900원)으로 올랐다”며 “깨끗한 마실 물을 구하기는 돈이 있어도 너무 어렵고, 비상 상황을 대비해 구매한 샤워용 물도 1,400갤런당 7만 짯(약 4만9,000원)에서 10만 짯(약 7만 원)으로 급등했다”고 설명했다.
만달레이(미얀마)=글·사진 허경주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