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부동산 신용 집중’ 공동 정책 컨퍼런스에 참석한 (사진 왼쪽부터) 이항용 금융연구원장,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김병환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사진=한국은행)
“미국 정부의 상호관세 부과 등 정치적 상황이 예상보다 나빠지고 있다. 경기 부양 요구가 거세질수밖에 없지만 부동산 금융으로 인해 감소하던 가계부채가 다시 악화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와 금리 인하 등이 자본 생산성이 낮은 부동산으로의 ‘자금 쏠림’ 현상을 가속화해선 안된다는 지적이 금융당국 수장들 사이에서 나왔다. 민간에 공급된 신용의 절반 이상이 부동산에 집중된 상황을 해결하지 않으면 저성장 구조가 고착화될 수 밖에 없다는 진단이다.
이 총재와 김병환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3일 한국은행과 금융연구원이 공동 주최한 ‘부동산 신용집중 개선을 위한 정책 컨퍼런스’에서 부동산 쏠림 현상을 주제로 대담을 진행했다. 통화·금융당국 수장들이 공식 석상에서 부동산 문제를 논의한 것은 이례적이다.
이날 한은이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부동산 신용액 규모는 지난해 말 기준 1932조5000억원으로 파악됐다. 전체 민간 신용의 절반(49.7%)에 달하는 규모다. 2014년부터 연평균 100조원 가량이 증가하면서 2013년 말 대비 2.3배가 증가했다. 부동산 신용은 가계의 부동산 담보대출(전세대출 포함)과 건설·부동산 관련 기업 대출(PF 대출 포함)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부동산 부문에 자금이 쏠리면서 제조업 등 고부가가치 부문에 대한 신용공급은 둔화됐다. 실제 산업별 대출 비중을 보면 성장 기여도가 높은 편인 제조업 대출 비중은 2014년 34.5%에서 2024년 24.6%로 낮아졌다. 반면 부동산업과 건설업 대출 비중은 19.7%에서 29.4%로 크게 높아졌다.
최용훈 한은 금융시장국장은 “부동산업은 다른 업종에 비해 자본생산성이 낮다”며 “부동산 부문에 신용이 집중될수록 생산성이 높은 여타 부문에 대한 신용 공급이 둔화돼 전체 자본의 부가가치 창출 효과가 떨어진다”고 짚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정부의 정책금융 확대가 부동산 쏠림을 가속화시켰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왔다. 김 위원장은 “그동안 부동산 대책과 대출 완화가 당연하게 엮여있었던 것도 부동산 금융이 빠르게 늘어난 요인”이라며 “부동산과 금융의 역할을 서로 분리해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저소득·신혼부부 등 무주택자에게 저리로 주택구입자금을 대출해주는 정책금융이 집값을 부양시키고, 그러다보니 정책금융이 오히려 확대되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창용 총재 역시 금융위가 추진중인 ‘지분형 모기지’에 공감하면서 정책금융의 총량을 줄일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부동산 중심 금융에서 벗어나기 위한 부동산 대출 규제 강화 방안도 언급됐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주택 담보 대출 중심의 가계대출에 위험가중치가 다른 대출보다 적다”며 “국제 기준을 지키면서도 나라 사정에 맞춰 바젤3 기준을 적용하는 것을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라고 했다. 이어 “올 상반기 건전성 관리 방안에 대해 방향성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