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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제77주년 제주4·3 희생자 추념일인 3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 내 행방불명인 표석을 찾은 유족이 희생자의 넋을 기리고 있다. 제주도사진기자회=연합뉴스

“”계엄 속 인격이 부서져 내렸지만 버텨냈고, 90살에 법정에 서서 당시를 증언하며 다른 사회를 요구했던 김평국에게 ‘부디 안심하시라’ 전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달라.


임재성 | 4·3희생자 재심사건 변호인

오늘은 4·3이다. 1947년부터 1954년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4·3을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한 기념일이다. 반복되는 날이지만, 올해는 다르다. 2025년 지금, ‘4·3’이라는 단어를 쓰고 말할 때 죄스럽고 한스러운 울먹임이 생긴다.

4·3은 학살이었다. 해방 직후 이념과 분단의 소용돌이 속 대통령 이승만은 1948년 11월 자신에게 비판적인 국민들을 제거하기 위해 제주에 계엄을 선포한다. 제주에서 계엄은 채 두달을 가지 않았지만, 계엄이 만든 공포는 삶에 박혀 계속됐다.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내용이다. “한글을 모르는 할머니들조차도 ‘계엄령’이란 용어만은 빠뜨리지 않고 증언했다. 남편이, 혹은 아들과 손자가 군경토벌대에게 무고하게 희생당했다고 강조하면서도 말미에는 꼭 ‘그때는 계엄령 시절이라서…’ 또는 ‘계엄령 때문에…’라고 했다. 이들에게 계엄령이란 가족이 죽은 이유” 그 자체였다.

제주 아라리에서 태어나고 자란 여성 김평국이 18살이 되던 1948년 11월, 군경과 토벌대들은 그가 살던 중산간지역을 초토화시켰다. ‘산속 무장대에 부역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김평국은 경찰서로 끌려갔고, 계엄 속 국가를 마주했다. 김평국이 2018년 3월 제주지방법원에서 열린 재심 재판에서 증언한 내용이다. “그날 저녁부터 매만 맞고 사니까 영문도 아무것도 모르고 너무 정말로 어이가 없는 억울함을 몸에 지니고 살았습니다.”

2007년 제주국제공항에서 학살 암매장된 지 60년 만에 발굴된 희생자 유해들. 사진 허호준, 혜화1117 제공

계엄 속 제주에 주둔한 9연대는 일단 죽였고, 죽이지 못한 이들은 군사재판 회부의 방식으로 ‘처리’했다. 열흘쯤 유치장에 있던 김평국에게 누군가 어디로 가라 했다. 큰 강당에 “제77조 내란죄”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수십, 수백명을 강당에 모아놓고, 당사자 이름조차 부르지 않는 초법적 절차 속 김평국에게는 ‘내란죄 징역 1년’이라는 낙인이 그어졌다.

전주형무소에서 징역살이를 마치고 제주로 돌아오던 여정을 설명하며, 김평국은 늘 오열한다. “돌아올 배표를 사야 하는데 돈이 없잖아요. 석방증을 내밀어서 배표를 받았는데. 내가, 예쁜 아가씨가 얼마나 창피한지. 그 부두에서 진짜, 진짜로 속이 상했습니다.” 제주에 돌아온 김평국에게 친척들은 “나다니지 마라, 남의 입에 오르지 마라”고 했다. 감옥 갔다 온 것이 알려질까 봐 육지로 가서 결혼해 살았지만, 남편과 사별 후 다시 제주도로 돌아왔다.

4·3은 과거의 폭력이지만, 그 폭력을 극복하는 데는 지금도 온 사력이 필요하다. 4·3 군사재판의 위법성을 밝히는 재심은 70년이 지난 2019년이 되어서야 개시되었다. 그 최초 재심 재판의 피고인 18명 중 한명이었던 그의 마지막 법정진술이다. “징역이라는 두 글자가 몸에 딱 배겨서 어디 낯 들고 다닐 수도 없었습니다. 이제 90살인데 재판받아 좋은 일 있어 봤자 죽는 일 기다리는 것이나 더 있겠습니까. 진짜 너무 억울합니다.”

폭력 이후 수십년이 지나서였지만, 국가는 4·3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김평국의 전과는 삭제되었다. 억울한 구금에 대한 보상금도 지급되었다. 감히 이야기하건대, 법과 제도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대부분 이루어졌다. 그래서, 피해가 회복되었는가? 고통은 사라졌는가? 필자는 그의 재심 사건 변호인이었다. 재판 후 찾아뵙고 ‘좀 어떠시냐’ 여쭈었을 때 김평국은 말했다. “변호사님, 이 멍울이 풀리려면은 좀 걸릴 겁니다. 그때가 돼서야 무죄인 겁니다.”

제77주년 제주4·3 희생자 추념일을 하루 앞둔 2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 내 행방불명인 표석을 찾은 유족이 희생자의 넋을 기리고 있다. 연합뉴스

2만에서 3만명의 사람들이 제주에서 계엄하, 그리고 그 전후에 죽었다. 수천명의 사람이 감옥에 갔다. 그 희생을 딛고 “다시는 이 땅에 이러한 불행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다짐”하기를 수십년이다. 피해 회복을 위한 노력은 지금도 계속이다. 그런데 다시, ‘반국가세력을 척결’한다며 계엄이 선포되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죽을힘 다해 희생자들의 멍울을 풀기만 해도 모자란 사회에서, 계엄 속 총칼이 만드는 고통이 얼마나 처절한지 가르치고 배우기만 해도 부족한 나라에서, 어떻게 다시 계엄이 선포될 수 있는가. 죄스럽고 한스럽다.

4·3 다음날인 4월4일 윤석열의 계엄 내란 행위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있을 것이다. 헌재는 4·3 희생자들 앞에 고개 숙이는 마음으로 선고해달라. 계엄 속 인격이 부서져 내렸지만 버텨냈고, 90살에 법정에 서서 당시를 증언하며 다른 사회를 요구했던 김평국에게 ‘부디 안심하시라’ 전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달라.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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