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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15일 밤, 아버지가 머무는 요양원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당직 간호사가 회진을 했는데, 아버님이 이상해요. 숨을 안 쉬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전화를 받은 아들 김연수(60)씨는 “일단 빨리 119를 부르라”고 말하며 급히 응급실로 달려갔다. 아버지는 사망 진단을 받았다. 사인은 심근경색이었다. 아버지는 복용해오던 심혈관 질환 약을 요양원에 머무는 동안 제공받지 못한 상태였다.
서울 금천구의 한 요양원에서 재작년 80대 노인이 입소 3개월 만에 사망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평소 심부전증 등 심혈관 질환을 앓고 있던 김아무개(당시 84살)씨에게 요양원은 석달 동안 한차례도 심혈관 질환 약을 지급하지 않았다.
2일 아들 김씨와 요양원의 설명을 들어보면, 김씨 아버지는 2021년 대학병원에서 심혈관을 넓히는 수술을 받은 뒤, 다른 요양병원을 거쳐 2023년 8월 서울 금천구의 ㄱ요양원에 입소했다. 요양원 입소 당시 김씨는 15장에 이르는 복용 안내문과 처방받고 남은 약들을 제출했다. 아버지가 먹어야 할 약과 용법 등을 적은 복용 안내문에는 특히 심혈관 질환 약인 ‘알닥톤’과 ‘에이피토정’이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 사망 뒤 김씨가 찾아본 의료급여 내역 자료에선 ㄱ요양원 입소 뒤 이 약들이 처방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허혈심근병증’ ‘심부전’ ‘협심증’ 등의 진료 내역도 ㄱ요양원 입소 이후 사라졌다. 통상 요양원은 입소 때 보호자로부터 앓고 있는 질환과 진료 내역, 처방이 필요한 약에 대한 정보를 받고 이를 의사에게 전달해 입소자에게 투약한다. 김씨가 복용 안내문 등을 제출했지만, 요양원 입소 뒤 심혈관 질환 관련 약 처방은 없었다.
김씨는 투약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조차 아버지가 사망하고 1년여가 흐른 지난해 말 건강보험공단에 고인의 생전 진료 내역이 담긴 의료급여내역을 청구한 뒤에야 알게 됐다. 김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1년이 넘었는데 최근 계속 꿈에 나타나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고 사라지는 일이 반복됐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신 것 같아 아버지의 죽음을 역추적하다가 이 사실을 알게 됐다”고 했다. 김씨는 고소 등 법적 대응에 나설 계획이다. 김씨는 “당연히 요양원이 약을 처방하고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며 “요양원에는 아버지 같은 분들이 계속 입소할 텐데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ㄱ요양원은 이에 대해 “요양원에는 의사가 상주하지 않아 한달에 두번 촉탁의사가 온다. 입소 때 (아들 김씨에게 받은) 복용 안내문을 팩스로 의사에게 보냈고, 처방받은 약(기관지 약, 전립선증식증 약 등)을 그대로 어르신에게 드렸다”며 “요양원의 과실은 없다”고 했다.
전용호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집에서 돌봄을 못 하는 상황에서 요양원에 비용을 지불하며 돌봄을 요청하는 것인데, 입소하는 노인들 대부분 만성 질환을 갖고 있어 약 복용을 돕는 건 기본적 사항”이라며 “심혈관 질환 약이 하나도 처방되지 않은 것은 적절한 돌봄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지난 2023년 8월 김연수(60)씨의 아버지(당시 84)가 서울의 ㄱ요양원에 입소한 지 일주일이 지났을 때의 모습. 김연수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