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카탈로그 인기 높아지며
'미국인이 사랑하는 브랜드'로 인식
2019년 파산보호 신청하며
'망한 브랜드' 인식 강해져
CEO·디자이너 교체 후 분위기 급변
정체성 회복에 초점 맞춘 전략 강화
'미국인이 사랑하는 브랜드'로 인식
2019년 파산보호 신청하며
'망한 브랜드' 인식 강해져
CEO·디자이너 교체 후 분위기 급변
정체성 회복에 초점 맞춘 전략 강화
[케이스 스터디: 성공에서 배운다]
‘미국 패션 한 세대의 종말.’
헐리우드 배우 데미 무어. /사진=제이크루 인스타그램 갈무리
‘미국 패션 한 세대의 종말.’
5년 전 미국을 대표해온 패션 브랜드
‘
제이크루’가 파산보호 신청을 했다. 현지 언론은 앞다퉈 미국인이 사랑하던 브랜드가 몰락했다고 전했다. 오랜 기간 어려움을 겪은 제이크루가 법원으로 향한 것은 놀랄 일이 아니라는 의견도 덧붙였다. 패션 매거진 보그는 ‘
파산을 앞둔 제이크루에 보내는 러브레터’라는 제목으로 작별을 고하기도 했다. 이렇게 망한 줄 알았던 제이크루가 살아났다. 그냥 산 게 아니다. 미국 기술·경제전문매체 패스트컴퍼니가 뽑은 ‘2025년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유통기업’ 1위에 오르기도 했다. 파산에서 벗어난 것은 물론
‘
혁신의 최강자’라는 수식어까지 얻었다. 제이크루는 다시 ‘
미국인의 최애(가장 사랑하는) 브랜드’가 됐다.◆ 프레피룩의 시초,미셸 오바마·케이트 미들턴이 선택한 브랜드제이크루는 1983년 아서 시나이더가 설립한 미국 브랜드다. 설립 초반에는 뉴욕에서 우편 주문용 카탈로그 사업을 중점으로 전개했다. 매장을 운영하지 않고 카탈로그를 통해 주문을 받은 뒤 옷을 배송하는 방식이다. 카탈로그의 인기가 높아지자 6년 뒤인 1989년 뉴욕 사우스 스트리트 시포트에 첫 매장을 열었다.
제이크루의 카탈로그는
‘
패션 브랜드의 제품을 소개하는 책자’ 그 이상이었다. 미국 1020세대의 대중문화를 선도하는 역할을 했다. 1980~90년대 여학생들 사이에서는 100페이지가 넘는 제이크루의 카탈로그를 보고 의견을 나누는 게 하나의 유행처럼 자리 잡았고, 카탈로그에 등장하는 모델은 수많은 팬을 보유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제이크루의 카탈로그 촬영 소식이 알려지면 현장에 팬들이 몰려들었다. 전성기는 2000년대였다. 단정하고 고전적인 느낌의 ‘프레피룩’(명문가 자제들이 입을 법한 클래식 스타일)이 크게 유행하면서 제이크루 제품이 불티나게 팔렸다. 2006년에는 사상 처음 10억 달러를 돌파한 11억5000만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제이크루는 ‘미국를 대표하는 브랜드’라는 수식어까지 얻었다. 미셸 오바마, 배우 귀네스 팰트로, 영국 왕세자비 케이트 미들턴 등이 즐겨 입었다. 특히 미셸 오바마가 버락 오바마의 첫 대통령 취임식을 포함해 공식 석상에서 10번 이상 제이크루의 제품을 착용하면서 ‘국민 브랜드’라는 이미지도 만들었다.
2008년 이후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브랜드 정체성 상실’이라는 평가가 잇따라 나왔다. 제이크루는 2008년 제나 리온스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로 고용했고, 깔끔하고 단정한 스타일에서 벗어나 독특한 소재의 액세서리를 시도하거나 새로운 디자인을 도입했다. 명품을 좇는 하이엔드 카테고리를 확장하면서 가격대도 크게 뛰었다. 새로 선보인 제이크루 컬렉션의 스커트는 800달러, 스웨터는 1900달러 등으로 책정됐다. 이 과정에서 제이크루의 기존 스타일을 선호해온 충성도 높은 고객들이 떠났다.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제이크루의 핵심 고객이던 여성 직장인들이 없어졌다”고 전했다.
여기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기침체가 지속됐고 의류에 대한 지출을 줄이면서 업황 자체가 악화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 동시에 제이크루의 지분을 보유한 사모펀드 TPG와 레너드 그린&파트너스가 수익성 개선을 요구하면서 품질 문제까지 발생했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제이크루의 매장 매출은 계속 떨어졌다.
이후에도 추락은 이어졌다. 소매 판매 시장은 이커머스 중심으로 변화했고 제이크루는 품질·가격 문제 등으로 신뢰를 잃은 영향이다. 2020년 부채는 16억5000만 달러(약 2조원)까지 치솟았다.
결국 제이크루는 2020년 5월 파산법원에 챕터11 보호를 신청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파산한 미국의 첫 번째 대형 유통업체가 됐다. 당시 업계에서는 제이크루가 다시 살아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이 많았다. ◆ 전략1. 정체성 회복이렇게 잊혀져 가던 브랜드 제이크루에 대한 새로운 소식을 전한 것은 기술·경제전문매체 패스트컴퍼니다. 지난 3월 18일 ‘2025년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유통기업’으로 제이크루를 선정했다. 매체는 “최첨단 기술과 구식 마케팅을 결합해 전통성을 살리는 동시에 새로운 고객까지 유치하고 있다”며 “파산보호 신청 5년 만에 놀라운 반전을 만들어냈다”고 설명했다.
제이크루 부활의 시작점은 리더 교체였다. 회사는 파산보호 신청 6개월 만인 2020년 11월 새로운 CEO로 리비 웨들을 임명했다고 발표했다.
웨들은 2004년 제이크루에 입사해 16년간 다양한 직책을 거쳐왔다. 회사는 웨들이 조직 내외부 커뮤니티를 구축하는 능력이 탁월하고 재무적으로도 우수한 실적을 갖추고 있어 제이크루를 이끌어가기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비슷한 시기 CD도 교체했다. 제이크루는 2017년 회사를 나간 올림피아 가요트를 CD로 다시 합류시켰다.
웨들과 가요트는 지금이 브랜드를 살릴 적기라고 판단했다. 팬데믹 이후 새옷에 대한 억눌린 수요가 6개월~1년 이후 늘어날 것을 고려하면 변화를 보여줘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들이 가장 먼저 고민한 일은 ‘어떻게 하면 충성도 높은 고객들을 다시 끌어올 수 있을까’였다. 답은 정체성 회복이었다. 웨들은 패션 트렌드를 좇거나 지나치게 격식을 차린 디자인은 없애기로 했다. 심플하면서도 고전적인 디자인으로 돌아가는 것. 웨들은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우리의 뿌리는 캐주얼”이라며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쉬운 접근이 우리 브랜드의 핵심”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2021년 가요트의 첫 번째 컬렉션이 공개되자 업계에서는 “예전의 제이크루가 돌아왔다”는 평가가 나왔다. 제이크루는 과거 성공한 프레피룩을 결합했다. 캐시미어 크루넥 스웨터 등 과거 베스트셀러 제품 디자인을 재창조했다. 클래식한 디자인을 사용했고 소재는 캐시미어를 사용했다. 가요트는 편안하면서도 품격 있는 디자인에 집중했다. 패션매체 비즈니스오브패션(BoF)은 “스타일리시하면서도 지나치게 과하지 않은 게 매력”이라고 평가했다.
여성복을 살린 2021년 제이크루는 남성복도 개편하기 위해 슈프림 디자인 디렉터 이력의 브렌든 바벤지엔을 영입했다. 웨들은 브렌든을 선택한 것에 대해 “우리 사업을 파괴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혁신을 위해서는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는 판단이었다. ◆ 전략2. 옛 향수와 신선함 자극옛 추억을 자극하는 시도도 긍정적으로 평가받았다. 그중 하나가 ‘카탈로그의 부활’이다.
제이크루는 2017년 카탈로그 생산에 따른 이익이 없다는 판단에 따라 발행을 종료했다. 소비자들은 종이 책자를 선호하지 않았고 제작과 배포에는 비용만 많이 들었다. 제이크루는 마케팅의 방법을 ‘디지털’ 중심으로 전환했다.
하지만 2024년 9월 제이크루는 다시 카탈로그를 배포한다고 발표했다. 카탈로그 모델로는 할리우드 배우 데미 무어를 기용했다. 레트로 트렌드에 가장 부합하는 전략이었다. 또 소비자들에게는 1980~90년대 향수를 자극하는 계기가 됐다.
의류 소개 책자보다는 패션 잡지처럼 소비되는 제이크루의 과거 카탈로그를 소장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면서 이를 기회로 생각한 회사 측에서 빠르게 대응한 결과였다. 실제 인스타그램에서는 제이크루의 과거 카탈로그를 공유하는 계정이 있고 팔로워는 8만 명이 넘는다. 이 계정은 1983년과 1997년 사이 제작된 카탈로그 이미지를 주로 게재한다.
동시에 회사는 공식 홈페이지에는 고객 커뮤니티를 강화하기 위한 ‘빈티지 섹션’을 열었다. 1980~90년대 상징적이거나 인기를 얻은 제이크루 제품을 한정판으로 재판매하는 공간이다.
제이크루는 카탈로그에 대해 “프레피 유산과 과거와 현대의 스타일 결합을 보여준다”며 “동시에 감성적이면서도 현실적인 느낌을 유지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표지 모델을 장식한 데미 무어가 자신의 빈티지 제이크루 스웨터를 착용한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데미 무어의 모습은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고 전했다.
동시에 ‘디지털 원주민’인 Z세대를 신규 고객으로 유치하기 위해 인플루언서와 협업을 강화했다. 또 온라인 전략을 구체적으로 수립하기 위해 스킴스 마케터 출신의 줄리아 콜리어를 최고마케팅책임자(CMO)로 임명했다. 스킴스는 미국 유명 인플루언서 킴 카다시안이 론칭한 브랜드로 온라인을 잘 활용하기로 유명하다.
지난해 선보인 ‘제이크루 버추얼 클로젯’ 앱도 반응이 좋다. 사용자가 애플의 혼합현실(MR) 헤드셋 ‘비전 프로’를 사용해 3D 마네킹에 옷을 입혀보는 프로그램으로 특정 도구를 사용하면 친구나 스타일리스트로부터 의견도 얻을 수 있다. 제이크루는 이 앱을 통해 고객들의 온라인 이용률을 끌어올렸으며 평균 주문율도 15% 높였다.
제이크루 2025년 카탈로그. /사진=제이크루
◆ 전략3. 가격대 재조정제나 리온스 체제에서 과하게 높아졌던 가격도 ‘중저가’로 재조정했다. 실제 2000년대까지 제이크루의 주요 고객은 가격 변동성에 민감한 소비자였지만 2010년대 리온스가 제이크루의 디자인을 개편하고 가격을 높인 탓에 핵심 고객을 놓쳤다. 웨들은 CEO로 선임된 직후 가격 전략에 대해 “가격 변동성을 줄여야 한다”며 가격대를 ‘합리적’인 선으로 낮췄다. 품질에 비해 가격은 낮아야 한다는 게 회사의 경영전략이었다.
이 같은 노력의 결과로 제이크루의 실적은 크게 개선됐다. 업계에 따르면 회사의 2024년 매출은 약 30억 달러로 추산된다. 사상 최대 매출이다. 올해 매출은 이보다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웨들 CEO는 “많은 소비자들이 제이크루로 돌아오거나 젊은층에서 브랜드를 이용하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며 “마침내 우리가 주도권을 쥐게 됐다(We’re finally back in the driver’s seat)”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