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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전통 나무인형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부터)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사진=AP 연합뉴스

“김정은(북한)은 확실히 핵보유국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거듭해서 ‘핵보유국’이라고 지칭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월 13일 백악관에서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사무총장과 만난 자리에서 러시아와 중국 등 전 세계의 핵무기를 함께 줄여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면서 “김정은도 핵무기를 많이 보유하고 있다”고 했다. 1기 때처럼 김정은과의 관계를 다시 만들 것이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김정은과 훌륭한 관계를 가졌다”며 “매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여전히 그렇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에도 김정은에 대해 “(북한은) 핵보유국”이라며 “그는 나의 복귀를 반길 것”이라고 했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의회 청문회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북한을 ‘핵보유국’이라고 표현했다.
인도·파키스탄과 동급으로 언급
트럼프 대통령의 13일 백악관 발언은 단순한 ‘핵보유국’ 지칭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갔다. 그는 “인도, 파키스탄 등 다른 나라도 (핵을) 보유하고 있다”며 “(전 세계에서) 핵무기 축소를 시도할 것이고 이는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가 북한과 나란히 언급한 인도, 파키스탄은 핵확산방지조약(NPT)에서 공인된 핵보유 5개국(미국, 러시아, 중국, 프랑스, 영국)과 달리 자체 핵 개발 후 사후 인정을 받은 나라다. 북한은 아직 이런 지위에 올라 있지 않다.

미국 무기관리협회(ACA)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핵탄두의 대부분은 러시아(5580기)와 미국(5225기)이 갖고 있다. 이어 중국(600기), 프랑스(290기), 영국(225기), 인도(172기), 파키스탄(170기), 이스라엘(90기), 북한(50기) 순으로 추정된다.

북한은 핵보유국 지위를 얻고 이를 레버리지 삼아 국제사회와 거래하는 주요 자원으로 삼으려 하고 있다. 지금까지 미국 정부를 비롯해 각국이 북핵이 존재하는 것을 알고 있지만 공식적인 핵보유국 표현을 하지 않았던 배경이다.

트럼프는 이런 금기를 거침없이 깨고 있다. 헤그세스 국방장관의 청문회 답변서나 트럼프 대통령의 1월 발언까지만 해도 주요 언론 등에서는 이들이 ‘미숙해서’ 혹은 ‘디테일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서’ 북한이 핵보유국으로 표현되지 않고 있는 배경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지 못해 이런 표현을 썼다는 평가가 적지 않았다.

지금은 다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13일 발언은 NPT 제정 당시에 핵무기 보유를 인정받은 5개국(미국, 러시아, 중국, 프랑스, 영국)을 부르는 ‘뉴클리어 웨폰 스테이트’ 외에 사후적으로 핵 개발을 해서 ‘핵보유국(뉴클리어 파워)’으로 불리게 된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의 지위를 트럼프 대통령이 인지하고 있고 여기에 북한을 동급으로 묘사한 것이다. 그가 일부러 이 표현을 쓰고 있다면 이는 북한이 추구해 온 인정 투쟁을 받아들이는 일종의 선물이 되는 셈이다.

이미 워싱턴 정가에서는 트럼프 정부가 주요국과 핵군축 협상을 하면서 북한과도 스몰딜을 시도할 가능성을 꾸준히 제기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북핵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고 보고 규모를 줄이는 선에서 협상하려 한다는 것이다.
금기 깬 美, CVID 원칙도 슬그머니 삭제
3월 14일 캐나다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외교장관회의에서도 비슷한 실마리가 보였다. 참가자들은 북한을 향해 “모든 핵무기와 기타 대량살상무기,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포기할 것”을 요구했지만 그동안 요구해 온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방식으로 핵을 포기하는) 원칙은 성명서에 포함되지 않았다. 지난 2월 15일 뮌헨안보회의에서 발표된 성명서까지도 포함되었던 중요 원칙이다. 이런 내용이 빠진 것 역시 마찬가지로 대북정책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물론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은 여전히 ‘북한 비핵화’다. 신원식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은 지난주 워싱턴DC에서 마이클 월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면담 후 한·미가 “완전한 북한 비핵화 의지를 재확인했다”며 “트럼프 정부가 대북정책에 대해 반드시 한국과 사전에 공조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외교적인 노선과 실제 트럼프 정부가 지향하는 대북 접근방식에는 차이가 크다. 빅터 차 CSIS 한국석좌는 최근 워싱턴DC에서 열린 북콘서트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비핵화에 집중하지 않고 있다”면서 거듭된 북한 핵보유국 발언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낚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협상의 장에 북한이 나오도록 하기 위한 밑밥을 깔고 있다는 해석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한국경제신문에 “트럼프 입장에선 북한의 핵보유국 인정 여부는 중요하지 않고 북한을 협상장으로 불러와 미국의 국익에 맞게 협상한 뒤 북핵 위협을 일부라도 해소했다는 점을 부각해 본인 업적을 쌓는 게 관심사”라며 “북한의 스몰딜 협상 수용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러시아·중국과 ‘천하 3분지계’ 꿈꾸나
트럼프 2기 정부의 외교정책은 1기와 성격이 상당히 다르다. 세계 각국에 대한 개입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제국주의적인 면모도 감추지 않고 있다. 대북 문제에 대한 접근법도 1기 때보다 훨씬 과감한 시도가 이뤄질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천하 3분지계’를 꿈꾼다는 해석도 적지 않게 나온다. 마이클 쳄발리스트 JP모간자산운용의 시장 및 투자전략 회장은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서 “트럼프 정부는 미국(서반구), 중국(아시아), 러시아(동유럽)가 영향력을 나눠 갖는 18세기식 안보 협정에 의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3개국의 핵무기를 동시에 줄여야 한다는 관점을 갖고 있다. 특히 상대적으로 핵탄두 수가 적은 중국의 핵 개발을 억제하려는 욕구가 강하다. 3월 13일 기자회견에서 그는 “러시아와 중국의 핵무기 수를 줄일 수 있다면 (나의) 멋진 성과가 될 것”이라고 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자신의 아이디어에 긍정적이라는 취지로도 말했다. 지난 2월엔 “중국이 5~6년 내 핵 능력에서 미국에 근접할 것”이라고 언급하면서 “중동과 우크라이나 상황을 정리한 후에 핵무기 대화를 시작하겠다”고 했다.

쉬운 일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기 정부에서도 비슷한 정책을 시도했지만 성과는 크지 않았다. 러시아나 중국이 곧바로 맞장구를 치며 군축에 참여할 가능성도 희박하다. 하지만 핵무기에 과도한 비용을 투입하지 않으면 국방비를 크게 아낄 수 있고 그 비용으로 다른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오래된 주장이다.

현재 러시아는 2010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때 미국과 체결한 핵 군비 통제조약인 ‘새로운 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내년 2월에는 기존 협정의 시한이 만료되기도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 휴전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은 경제제재 해제를 조건으로 삼아 뉴스타트 협정과 유사한 차기 핵군축 협정에 관한 논의를 할 여지가 있다.

중국의 입장은 미국과 러시아가 먼저 핵무기를 줄인 다음에야 그런 대화에 참여할 수 있다는 쪽이다. 공식적으로는 핵무기를 완전히 금지하고 전면 폐기하는 것이 목표라고 내세우는 중국은 어쩔 수 없이 핵을 갖고 있다는 입장이다. 중국이 선제적으로 군축에 참여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크지 않다.

이런 가운데 유럽은 자체 핵우산을 확보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프랑스는 자신들의 핵우산을 유럽연합 전체로 확대하겠다고 제안했지만 미국의 지원 없이 자체 핵무장을 하기는 기술적으로도 어려움이 큰 상황이다. 미국이 만약 본격적으로 북핵을 용인하고 스몰딜을 시도할 경우 한국, 일본 등 주변국의 핵무장 여론을 자극할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핵군축 움직임은 경제적인 동기에서 시작되었지만 전 세계의 정치·외교·안보 지형을 흔들고 힘의 균형을 바꾸는 동인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한반도의 정세도 덩달아 크게 흔들릴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말마따나 “안전벨트를 매야 하는” 시기다.

이상은 한국경제 워싱턴 특파원 [email protected]

한경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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