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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 파괴돼 만달레이까지 도로로 16시간
버려진 마을 주위로 길게 늘어진 피난 행렬
미얀마 군부 "구호물품 전달은 OK, 취재는 NO"
규모 7.7 미얀마 강진 발생 5일째를 맞은 1일 네피도 피냐 떼히디 지역에 있는 건물이 형체를 알아보기 어렵게 무너져 있다. 네피도(미얀마)=허경주 특파원


“휴대폰 숨겨요, 빨리!”

1일(현지시간) 미얀마 수도 네피도 시민병원. 입구에 들어서며 카메라를 든 순간 양곤에서 만달레이로의 안내를 맡은 미얀마인 세인이 다급히 외쳤다.

1,000개 병상을 보유한 대형 병원인 이곳 야외 마당엔 침상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지난달 28일 미얀마를 강타한 지진으로 건물 붕괴 위험이 커지자, 벽에 균열이 간 병동의 환자들을 밖으로 옮긴 것이다.

세인의 재촉에 휴대폰을 재빨리 주머니에 넣고 뒤를 돌아보자 녹색 군복을 입은 미얀마군이 다가와 의심스럽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당신들 여기서 뭐하는 겁니까."

"만달레이에 있는 미얀마인과 외국인을 돕기 위해 구호품을 싣고 가던 길에 잠시 들렀다"고 답하자 그는 차량 확인을 요구했다. 사전에 차량 트렁크에 가득 넣어 둔 물과 식량, 기저귀 등을 보여주고 여권까지 확인받고 나서야 빠져나올 수 있었다.

미얀마 군정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서는 구호품 전달을 위해 온 자원봉사자로 위장해야 했다. 사진은 1일 양곤에서 만달레이로 16시간에 걸친 여정을 시작할 때 차량 모습. 양곤·네피도(미얀마)=허경주 기자


2021년 쿠데타로 집권한 미얀마 군부는 그간 웬만한 재해엔 해외 지원을 요청하지 않았으나, 이번 강진 후엔 이례적으로 국제사회에 도움을 구했다. 그만큼 피해 규모가 컸다는 뜻이다. 세인은 그러나 "군부는 다른 나라에 지원을 요청하면서도 구체적 지진 피해 상황이 외부에 자세히 알려지기를 원치 않는다"며 기자는 가능한 한 군경의 눈에 띄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지진 피해 규모가 큰 만달레이는 물론, '군부의 심장'인 수도 네피도 상황을 외국인이 살피는 것은 더욱 민감하게 받아들일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버려진 마을, 길게 이어진 피난 행렬

1일 미얀마 양곤에서 네피도로 향하는 도로의 갓길이 지난달 28일 중북부 만달레이에서 발생한 규모 7.7 강진 여파로 갈라져 있다. 도로를 반으로 가르는 검은색 선은 지진으로 길게 생긴 틈을 최근 아스팔트로 메워둔 흔적이다. 다만 갓길까지는 보수하지 못한 듯 하다. 네피도(미얀마)=허경주 특파원


한국일보는 한국시간으로 2일 새벽 미얀마 강진 현장 취재를 위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중북부 만달레이에 도착했다. 이를 위해 1일 아침 일찍 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에서 자동차를 타고 출발, 네피도를 거쳐 만달레이까지 총 16시간을 달렸다.

만달레이에도 공항은 있지만 지진으로 관제탑과 활주로가 무너지면서 폐쇄됐다. 현재 이 지역에 들어가는 유일한 방법은 양곤에서 차로 이동하는 것뿐이다. 평소 고속도로로 8시간 걸리는 거리이지만 도로 곳곳이 지진으로 인해 갈라지고 깨져 있어 배의 시간이 걸린다.

두 도시 사이엔 미얀마 군부의 중심지 네피도가 있다. 도시에 가까이 갈수록 노면 상태가 더 악화했다. 쩍쩍 갈라진 도로가 끝없이 이어졌다. 단단한 아스팔트 덩어리가 마치 조각난 과자처럼 도로 한편에 쌓여 있었다. 길을 내달릴 때마다 깨진 아스팔트 조각이 차량과 부딪혀 튀는 소리가 이어졌다.

1일(현지 시간) 미얀마 네피도 주민들이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 잔해를 수색하고 있다. 미얀마 군정은 지난 28일 발생한 강진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3천 명을 넘어설 것이라고 밝혔다. 네피도=AP 뉴시스


지진 발생 닷새째를 맞은 1일 네피도 피냐 떼히디 지역에 들어서자 지진 피해의 처참함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한 집 건너 한 집이 지붕이 땅에 닿을 만큼 주저앉고 얇은 철근이 건물 밖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그러나 무너진 집 인근에서는 구조 대원도, 나 홀로 잔해를 수습해 보려는 주민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간혹 무장한 채 도로를 지키고 서 있는 군인을 제외하면 마을은 오래전에 버려진 곳처럼 적막만 흘렀다. 밤이 깊어지자 마을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깜깜했다. 전기와 수도가 모두 끊긴 탓이다.

대신 남쪽으로 향하는 도로에는 피난 행렬이 이어졌다. 누군가는 군용 트럭에, 누군가는 작은 개인 트럭에 세간살이를 바리바리 쌓고 위태롭게 뒷좌석에 매달려 고향을 떠나고 있었다.

재난 감추기 급급한 미얀마 군정... 피해규모 파악도 어려워

지난달 31일 미얀마 양곤 국제공항에 지진 피해 현장을 돕기 위해 파견된 중국 최대 민간 구조 단체 청전구조대 대원 50여명이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양곤(미얀마)=허경주 특파원


'군부 중심지' 수도마저 황폐해지자 자존심이 상한 탓일까. 군정은 전날 외신 기자들의 취재 요청을 거부했다. 조민툰 미얀마 군정 대변인은 지난달 31일 "(언론인들이) 여기 머물거나 피난처를 찾거나 이동하는 것이 모두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지진 직후 이례적으로 외국 기관들의 구조 활동을 허가했으면서, 정작 내부 상황이 나라 밖으로 알려지는 것은 막은 셈이다. 이 같은 '재난 감추기'에 정확한 사망자 수 집계도 빠르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날 기준 미얀마 군부가 밝힌 사망자는 2,719명, 부상자는 4,521명이다. 정확한 희생자 규모는 파악이 안 된다. 현지 정부는 지역별 사망자 수도 별도로 집계하지 않았다.

다만 구조 작업을 도우려는 손길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31일 양곤 국제공항에서도 중국 최대 민간 구조 단체 청전구조대(블루스카이레스큐·BSR) 대원 50여 명이 도착했다. 이웃 국가 인도와 말레이시아도 구조대를 파견했다. 한국일보는 2, 3일 최대 피해 지역 만달레이에서 취재를 이어갈 예정이다.

양곤·네피도(미얀마)=글·사진 허경주 특파원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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