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옥진 토론토한인장로교회 권사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 교회 제공

코로나 19가 한창이던 2021년이었다. 한 어르신이 어디로 나가질 못해 답답하다고 호소했다. 한 번 볼펜으로 종이에 자유롭게 무엇이든 그려볼 것을 권면했다.

어르신이 가지각색 펜으로 선을 잇기 시작하더니 꽤나 볼만한 그림이 탄생했다. 내친김에 평소에 생각나는 글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써보라고 권했더니 어르신은 진심을 다했다. 그렇게 그림과 글귀를 모아놓고 보니 책 한 권이 탄생했다. 박옥진(94) 토론토한인장로교회 권사의 하나뿐인 그림책이 만들어진 과정이다.

박 권사는 지난 2월 ‘94세 할머니의 이야기가 있는 그림’을 출판했다고 1일 밝혔다. 2022년 코로나가 끝날 무렵 박 권사가 90세를 기념해 처음 펴낸 책인 ‘이야기가 있는 그림’ 후속작이다.

박 권사는 저서를 통해 무심코 지나갈 수 있는 일상 속 평범한 소재들을 다루는데, 그림 옆에는 당시 느꼈던 감정들이 글로 적혀 있다. 투박하지만 진솔하게 표현한 글귀에는 박 권사의 절절한 신앙심이 묻어난다.

박옥진 토론토한인장로교회 권사가 펴낸 그림책 중 '단풍나무'. 교회 제공

‘알록달록 블라우스에 치마 입고 예배당에 가는 길/ 제법 서늘한 바람이 솔솔 부니/ 버스를 타고 갈까 말까 망설이다/ 아니! 담에 늦으면 타야지…/ 꽃도 나무도 반겨주니/ 하나님 만나러 가는 길이 멀지는 않아.’(예배당 가는 길)

‘집안에서 키우는 화초에서 잎이 뚝 떨어졌네/ 무던히도 매달리려 버티다 떨어졌겠지?/ 너도 봄을 기다리는구나.’(기다림)

1931년 강원도에서 태어난 박 권사는 결혼 후 해외에서 거주하다가 1988년 캐나다에 정착했다. 그는 일평생 동안 자식과 가정을 위해 헌신했다. 그렇기에 아흔을 넘어서까지 자신이 무엇을 잘하는지, 어떤 일에 흥미를 뒀는지 모를 수밖에 없었다.

뒤늦게 깨달은 미술 취미는 누가 봐도 늦었다고 할 법했다. 하지만 꾸준한 노력 끝에 박 권사는 책이라는 결실을 보았다. 그의 책은 신앙심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고, 그러니 포기하지 말고 다시 힘내보자는 메시지로 다가온다.

94세 할머니의 이야기가 있는 그림 표지. 토론토한인장로교회 제공

박 권사는 이날 국민일보와 서면 인터뷰에서 “제게 이런 재주가 숨어 있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하나님께 갈 뻔했는데, 재능을 나타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다”며 “하나님은 우리 속을 잘 알고 계시다는 것을 새롭게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이어 “평생 예수님만을 믿고 살았다는 삶의 흔적을 증손주들에게 꼭 남기고 싶어 책을 준비했는데 나 자신과 이웃을 위로하는 선물이 됐다”고 설명했다.

태어나서 미술의 ‘미’ 자가 무엇인지도 몰랐다고 밝힌 박 권사는 “낙서처럼 그린 게 그림이 됐고, 하나의 책이 됐다”면서 “손에 연필 쥘 힘만 있으면 누구나 그릴 수 있다. 저도 이렇게 책을 냈는데, 여러분은 무엇을 도전할 때 하나님과 함께한다는 마음을 붙잡고 겁 없이 도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책의 수익금은 모두 선교비로 전달된다. 당초 책을 발간할 때부터 모든 비용을 박 권사가 직접 부담했다. 사실상 전액을 기부하는 셈이다. 그는 “항상 마음 한편에는 직접 선교를 못 다닌 게 항상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면서 “가난한 선교지에 뭐라도 하고 하나님께 가고 싶어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신한준 토론토한인장로교회 목사는 “한 주도 빼놓지 않고 매주 기쁨을 말씀하시는 박 권사님의 신앙과 사랑과 겸손이 이 책자 한 장 한 장에 녹아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귀하고 감사하다”고 밝혔다.

박옥진 권사가 30일(현지시간) 캐나다 토론토한인교회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교회 제공

국민일보

김동규 기자([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