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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제조업이 흔들리고 있다. 중국산 제품에 저가 공세는 물론 기술력까지 따라잡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전방위적 관세를 부과하며 미국으로 공장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경험해보지 못한 위기다. 균열은 약한 고리부터 찾아온다. 비정규직·하청업체 노동자의 불안이 더 커지는 이유다. 아직 관세 타격이 직접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는데도 일감이 줄고 월급이 줄었다. 자동차·철강업계의 세 노동자 목소리를 31일 들어 봤다.

“코로나 때보다 불안, 살아보려 자격증 공부·노조 가입”

한국GM 용역업체 비정규직 직원 이모씨가 28일 인천 한국GM 부평공장 내 차 출하장에서 완성차들 사이로 서 있다. 김세훈 기자


한국GM의 비정규직 직원 이모씨(33)는 요즘 전기기사·산업설비기사 자격증 관련 책을 보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지난해까지 일상이었던 잔업 특근이 최근 사라졌기 때문이다. 주말 근무도 손에 꼽을 정도로 줄었다.

그만큼 월급도 쪼그라들었다. 이씨는 “이전에는 수당을 다 합치면 세전 300만~350만원은 받았는데 요즘은 특근이 사라져서 200만원 수준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관세 대통령’을 자임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회사 내에선 불안감이 짙게 깔려 있다. 한국GM이 철수한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자동차 관세 부과 방침 발표가 된 이후 상황은 더 나빠졌다. 사내에 ‘5월부터 당장 물량이 축소된다’ ‘하반기부터 격주로 일하는 원 시프트 제도가 도입된다’는 말이 돌았다.

2교대로 격주로 일하는 방식인 원 시프트제가 도입되면 월급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씨는 코로나 대유행 때를 떠올렸다. 그는 “원시프트가 시행된 코로나 펜데믹 당시 월수입이 150만원 수준으로 급감했다”면서 “쿠팡 등 아르바이트를 하며 버텼고, 주변에서도 배달라이더를 병행하거나 아예 퇴사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회고했다.

한국GM 용역업체 비정규직 직원 이모씨가 28일 인천 한국GM 부평공장에서 마무리 청소작업을 기다리는 완성차를 바라보고 있다. 김세훈 기자.


한국GM ‘철수설’이 불거지자 ‘플랜 B’를 준비하는 직원들이 슬슬 생겨나고 있다. 이씨는 “이미 차 생산량이 3000대 이상 줄었고 올해 생산량이 반토막 날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린다”면서 “내색하지 않지만 불안감이 상당하다”고 했다. 그는 “코로나 때는 ‘이 시기만 극복하면 된다’는 공감대가 있었지만 지금 철수설은 일시적인 문제가 아닌 게 더 큰 문제”라고 했다.

특히 이씨와 같은 비정규직의 불안감은 더 크다. 본사나 정부 당국의 구제 대상에서 빠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씨는 “군산 철수 때도 정규직은 순환 배치되는 식으로 구제받았지만 비정규직은 그대로 해고됐다고 들었다”면서 “현장에서는 결국 비정규직만 피해 보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많다”고 불안감을 드러냈다.

이씨는 지난달에 처음으로 노조에 가입했다. 그는 “퇴직이 남의 일만은 아닌 것 같았다. 주변을 보면 40대 가장들이 많다 보니 ‘내가 잘리면 가족은 어떻게 하나’하냐는 말을 많이 하더라”면서 “뭉치기 위해 노조에 들어오고 싶지만 재계약에서 불이익을 받을까봐 망설이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한국GM 용역업체 비정규직 직원 이모씨가 28일 인천 한국GM 부평공장에서 지게차 점검 업무를 하고 있다. 김세훈 기자


“‘200명 무더기 계약해지’ 군산 철수 악몽 떠올라”

25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열린 한국지엠 비정규직 불법파견 대법원 선고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금속노조 한국지엠비정규직회 소속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4.7.25. 정지윤 선임기자


완성차 업체에 부품을 납품하는 회사 직원들도 술렁이는 건 마찬가지다.

한국GM에 자동차 시트를 납품하는 업체 직원 김상겸씨(56)는 31년차 베테랑이다. 1990년대 씨에로·에스페로·티코 등 자동차의 시트는 모두 김씨가 다니는 회사에서 납품했다. 90년대 중반 미국 자동차 회사 크라이슬러에 시트 부품을 수출한 경험은 김씨에게 자부심이 됐다. 그는 “당시에는 제품이 잘 나가니 밤낮없이 일했다”며 “잡생각 안 하고 몰입하는 시간이 즐거웠다”고 했다.

김씨는 요즘 2018년의 악몽을 떠올다. 김씨가 소속된 회사는 약 400억원을 들여 군산에 자동차 시트 공장을 지었다가 2018년 GM이 군산공장을 철수하면서 고스란히 손해를 봤다. 계약직 직원 200여명도 순차적으로 계약이 종료되거나, 희망퇴직 대상이 됐다. 노조 조합원이었던 김씨도 당시 집회에 나가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철수를 막지 못했다. 겨우 회사에 남아있을 수 있었을 뿐이다.

김씨 회사가 만드는 시트는 한국GM이 전체 매출에 80~90%를 차지한다. 현대·기아차 등 다른 자동차 업체에는 이미 대형 납품업체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작은 회사들은 대체 판로를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김씨는 “관세가 부과되면 회사의 납품 물량이 최소 50~70%는 줄어들 것”이라면서 “GM만 납품하는 회사들은 대부분 영세한 업체들이라 GM이 정말 철수한다면 문 닫을 걱정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권도 대응에 나섰지만 김씨의 기대는 크지 않다. 금속노조는 지난 17일 부평공장에서 국회의원 등을 초청해 해법을 찾는 간담회를 열었다. 회사 측에서도 ‘당장 뚜렷하게 대책을 세울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하고 있다.

김씨는 “정국 혼란으로 우리는 미국과 관세 협상도 못하고 앉아서 당하고만 있는 것 아닌가”라고 불안해했다.

“공장이 멈췄다···노동자 소모품으로만 보는 회사 아쉬워”

10일 경북 포항시 남구 장흥동 현대제철 포항2공장 앞에 현대제철 자회사 현대IMC 노조의 고용불안을 호소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현대제철 포항공장 축소운영은 국내 제조업 쇠락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중국산 저가 철강 제품은 파상 공세를 벌여왔다. 국내 건설경기 부진도 겹쳤다. 철강을 쓰려는 곳이 확연히 줄였다. 공장을 돌릴수록 적자가 났다. 결국 공장이 멈췄다. 지난해 말부터 포항공장 내 1·2공장 중 2공장 가동이 일부 중단됐다. 현대제철은 최근 포항공장 내 기술직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고 있다.

현대제철 노조 관계자 박우명씨(가명·49)는 “희망퇴직은 사무직 위주로 받아왔는데 이번에는 기술직도 포함됐다”며 “그만큼 위기감이 커졌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그는 “2016~2017년 건설경기가 좋지 않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사실상 역대 최악”이라며 “2021년에는 우리가 중국보다 확실히 기술적 우위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결국 공장 가동률은 70% 이하로 뚝 떨어졌다. 평소엔 80~90% 수준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 12일부터는 트럼프 대통령 예고한 관세 25% 추가 부과도 시행됐다. 박씨는 “관세가 부과되면 수출이 줄어들 수 밖에 없고, 상호 관세 부과 등 불확실성이 크다는 점에서 걱정이 크다”고 우려했다.

인력 감축이 눈 앞으로 다가왔다. 지금까지 희망퇴직에는 10여명 이상이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은퇴한 이들의 재고용도 무산됐다. 기존 인력들은 공장 가동 중단에 따라 충남 당진 등 타 지역으로 재배치될 예정이다. 박씨는 “재고용을 하지 않고 그 업무를 기존 인력으로 채우겠다는 것”이라며 “포항이 잘 나갈 때는 노동자가 1400명 정도였는데 당진 공장으로 인원이 빠져나가면서 지금은 1200명 수준으로 줄었다”고 했다.

박씨는 “노동자는 회사가 힘들어도 같이 버티면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회사는 우리를 상황에 따라 뗐다 붙였다 할 수 있는 ‘부품’ 정도로 여기는 것 같아 힘들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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