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부과와 미국의 경기 침체, 한국의 공매도 재개에 대한 경계심 등 악재가 겹치며 31일 코스피가 2500선 아래로 하락했다. 달러 대비 원화가치도 약 16년 만에 최저치로 하락했다(환율은 상승). 이날 서울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의 ‘수퍼 관세데이(4월 2일)’를 앞두고 시장의 불안감이 최고조에 이르면서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주요 증시가 ‘블랙 먼데이’를 맞았다. 달러당 원화 가치도 1470원대로 내려앉으면서(환율은 상승)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6년 만에 최저치를 찍었다.
31일 한국거래소와 주요 외신에 따르면 이날 코스피는 전일 대비 3% 내린 2481.12에 마감했다. 종가 기준 2500선을 밑돈 건 지난달 4일 이후 두 달여 만이다. 일본 닛케이225지수도 4.05% 내린 3만5617.56에 장을 마감했다. 3거래일 연속 하락하며 지난해 8월 초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대만 자취안지수는 4.2%, 홍콩 항셍지수는 1.6% 내렸다.
특히 관세 부과를 예고한 반도체와 자동차 관련주가 각국의 주가를 끌어내렸다. 삼성전자(-3.99%)와 SK하이닉스(-4.32%)를 비롯해 일본 도쿄일렉트론(-6.57%), 대만 TSMC(-4.41%) 등의 주가가 약세였다. 현대차(-3.80%)와 기아(-3.15%), 일본의 토요타(-3.13%)·혼다(-3.07%)·닛산(-4.03%) 등도 내림세였다.
이는 미국 관세의 칼끝이 아시아 주요국을 겨누고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30일(현지시간) 기자들과 만나 중국·한국·일본·베트남 등 미국에 무역흑자를 낸 아시아 국가를 겨냥해 “아시아와의 무역을 살펴보면 누구도 우리를 공정하거나 좋게 대했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여기에 관세 인상에 따른 미국 물가 상승 및 경기 침체 우려가 재점화하면서 투자자들의 위험 회피 심리도 커졌다.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미국의 2월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물가 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2.8% 상승해 시장 예상치(2.7%)를 넘어섰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목표치 2%를 상회한 것은 물론, 전월(2.6%)보다 상승폭이 커졌다. 반면에 실질 개인소비지출은 전달 대비 0.1% 증가하는 데 그쳤다. 물가는 오르고, 소비는 위축하는 모습이다.
골드만삭스는 미국 경기 침체 확률을 20%에서 35%로, JP모건은 30%에서 40%로 상향 조정했다. 무디스 애널리틱스의 카트리나 엘은 “트럼프 행정부의 급격한 정책 변화가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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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외풍에 원화값 휘청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0일(현지시간) 에어포스 원에서 내려오고 있다. [AP=연합뉴스]
직전 거래일인 지난달 28일 미 증시 3대 지수가 모두 하락한 것도 아시아 증시에 하방 압력으로 작용했다. 특히 한국은 지난 1년5개월간 금지한 공매도가 이날 재개된 것이 부담을 줬다. 31일 오후 10시 현재 유럽 주요 증시도 2% 가까이 내림세다.
반면에 전통적인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금 가격은 고공비행 중이다. 31일 뉴욕상품거래소에서 금 선물은 트로이온스당 3149달러에 거래가 이뤄졌다. 올해 들어서만 약 18% 급등하면서 사상 최고치를 고쳐 썼다. 트럼프 대통령이 예고한 상호관세 발효(4월 2일)로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을 키웠고, 이에 금에 수요가 몰린 것으로 풀이된다.
김경진 기자
연일 불어오는 외풍에 원화값은 추풍낙엽이다. 이날 미국 달러 대비 원화값은 주간 종가 기준 전 거래일 대비 6.4원 하락한(환율은 상승) 1472.9원을 기록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3월 13일(1483.5원) 이후 최저치다. 이날 달러당 원화값은 전 거래일 대비 4.1원 하락한 1470.6원으로 출발했는데, 개장가가 1470원을 넘은 것 역시 지난 1월 13일(1473.2원) 이후 두 달 반 만이다.
김지윤 기자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인 달러인덱스는 전거래일보다 0.44% 내린 103.874를 나타냈다. 전 세계적으로 달러가 약세를 나타내는 가운데 원화 가치는 더 떨어졌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구조가 미국의 관세 위협에 더 취약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정치 불확실성과 내수 부진에 국내 경기의 하방 압력이 증가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상호관세 발표를 금융시장이 대형 악재로 인식할지, 혹은 불확실성 해소로 판단할지에 따라 달러화 흐름도 큰 폭의 변동성을 보일 것”이라며 “1500원까지 하락할 가능성도 열어둬야 한다”고 말했다. 백석현 신한은행 이코노미스트도 “상호관세 발표 내용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시장의 긴장감이 높아지는 단계라 달러당 원화값이 더 하락할 수 있다”고 했다.